2화

"아싸! 석식시간이다!!"

"...그렇게 좋냐"

"당연한거 아니야? 밥이야 말로 학교에 오는 유일한 이유잖아!"

1교시 윤리부터 시작해서 수학은 두시간 연강에 영어에 국어까지. 지루한데 중요하기는 더럽게 중요한 주요 과목들로 범벅이 되어있던 7시간의 힘든 시간표를 지나 가까스로 맞이한 석식시간에 잔뜩 신이난 라윤이를 보며, 역시 같은 시간표에 지쳤던 탓인지 아침보다 살짝 기운 빠진 목소리로 물어보는 현진이다.

"그러면서 막상 공부는 잘하면서"

"그러게? 너 이새끼, 좀 맞자!"

"으아악! 사람살려!!"

말로는 공부와는 인연을 끊은 것 처럼 말하면서, 사실 라윤이는 이 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수재이다. 물론, 아직까지 그 성적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라윤을 약간 부러운 듯한 눈빛으로 보며 그녀가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을 민성이가 넌지시 알려주자, 옆에 있던 현진이 금새 정신을 차리곤 이런 괘씸한 놈- 이라는 눈빛으로 라윤을 보며 때릴 듯이 쫓아가자, 라윤은 살려달라는 말과는 상반되게 아치 모양으로 눈을 예쁘게 휘곤 저 앞으로 달려간다.

"어휴, 정말.."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와중에도 민성의 눈은 뛰어가는 한 인영을 쫓고있다.



"잘~ 먹었다!"

"참, 빨리도 드신다"

그럼 니는 얼마나 빨리먹었는데! 라고 라윤은 대꾸하고 싶지만, 현진이 밥은 제일 빨리 먹는다는 것을 알기에 말을 삼키곤 얇은 윗 입술로 살짝 도톰한 아랫 입술을 지긋이 누르며 샐쭉하게 현진을 쳐다본다.

"아서라, 얘가 한 두번 늦게 먹었냐"

"..민성아 그게 더 나빠"

쌤통이다, 요놈! 이라면서 막 웃는 현진을 라윤이가 다시한번 쏘아보곤,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이라도 난 듯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말문을 턴다.

"아, 근데 있잖아. 너네 그거 알아?"

"그거?"

"그게 뭔데?"

"나, 역극에 가입했어!"

쿵. 무엇인가가 내려 앉는다. 갑자기 웃고 있던 현진이 웃는걸 멈춘다. 역극, 역극이라면.. 미묘하게 굳는 현진의 표정. 하지만,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말문이 트인 라윤은 신이나서 말들을 쏟아낸다.

"너네 역극이 뭔지 알아?"

"아니"

"역할극 같은건데, 그 내가 좋아하는 만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중 한명을 내가 맡아서 연기하는거야! 이름도 캐릭터 이름으로 쓰고. 그리고 오너방이란게 있는데-"

"-거기서 이름은 캐릭터꺼로 쓰는데 연기는 안해도 되는거지?"

"어? 뭐야. 이현진. 너 이거 알아?"

"뭐.. 비슷한걸 해보긴 했지"

"아무튼, 내가 여기를 만화에서 주인공에 친한 형의 쌍둥이 동생으로 가입했는데 말이야, 이름은-"

재잘재잘. 뭐가 그리 신난건지 제 이야기를 쏟아내는 라윤과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민성.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야기를 듣는 듯 하지만, 현진은 제 생각 속에 빠져있다. 역극이라. 거기 사람들과 친해지면 재밌지. 관심사도 같으니 이야기도 더 잘통하고. 그래. 설마 그런일이 일어나기야 하겠어? 설마 라윤이가.. 그들과..

"야! 이현진!"

"....어어?"

"내가 거기서 캐릭터 성격하고 되게 잘 맞았다고 칭찬 받았다는게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얘기야?"

"아, 아니.."

"근데 니 성격이 그 캐릭터랑 잘 어울리기는 하지."

"그지? 이따가 반에가면 바로 카톡 들어갈꺼야!"

내가 너 도와줬다? 라고 작게 속삭이며 현진의 옆을 지나가는 민성. 자주빛 안경 너머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고양이 같이 앙칼진 눈이 살짝 웃으며 지나간다. 라윤이와 초등학교 동창으로써 라윤이와 중학교 동창인 나와 만나게 된 민성. 라윤이가 좋아하니까 같이 놀긴 하지만... 솔직히 좀..

"이현진, 빨리와!"

"알았어"

성큼성큼. 넓은 걸음으로 빠르게 걸어가는 그림자가 급식실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저 멀리서 이리저리 얽힌 세 그림자 주위에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딩동댕동- 그 모습을 시기라도 하는 듯, 셋이 만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석식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린다. 탁탁탁탁. 계단과 신발의 마찰 소리가 복도에 울린다. 교실 창문 너머로 급하게 야자때 공부할 책들을 챙기는 학생들이 보인다.

"야! 너 뭐 공부할꺼야??"

"몰라, 걍 아무거나 챙겨!!"

"헐, 야 1분 남았어! 이번에 감독 쌤 완전 무섭다고!! 늦으면 걍 죽어!!"

라윤이 책상 서랍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책을 꺼낸 뒤 교실 앞문 쪽으로 뛰어가자, 그걸 보고 앞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현진과 민성도 같이 뛰기 시작한다. 라윤은 3층에 심화실 쪽으로, 민성과 현진은 2층에 자습실 쪽으로 갈라져 들어간다. 아슬아슬하게 그들이 들어가고 야자 시작 종이 친다.

"와씨.. 죽겠다..."

아슬아슬하게 자습실에 세이프한 그둘과 심화실에 세이프한 라윤이 동시에 중얼거렸다. 그렇게 언제 끝날지 모르겠는 긴긴 야자가 시작했다.


2화.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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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1-01 22:22 | 조회 : 1,148 목록
작가의 말
진찡

보러와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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