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동족사냥

"어이, 만도. 태사님이 오라신다."

교대시간이 되어 막 올라온 동료의 말에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던 명월은 순간 기분나쁜 얼굴이 되어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말고도 만도라 불리는 사람이 또 있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성곽 위에는 자신과 막 교대하러 온 동료. 이렇게 두사람뿐이다.

"뭐, 너무 그러지 마라. 네가 실력있다는 증거 아니냐. 이러다간 곧 승진할지도 모르겠는데? "

아무것도 모른채 실없는 소리만 늘어놓은 동료는 명월의 등을 탁탁 때리며 웃었다. 명월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하면서도 그저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쩐지 비웃음 같기도 한 웃음이였지만 눈치없는 명월의 동료가 그걸 알리가 있나.

"근무나 잘해라."

"에라, 이 융통성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놈."

동료의 가벼운 웃음과 함께 날아들어온 주먹에 명월은 별로 아프지 않아도 일부러 윽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약간 물러났다. 동료가 엄살은 하고 중얼거리더니 명월에게서 ¹홍패를 받아들고 어서 가보라며 등을 떠밀었다.

알았다며 대꾸하고 몸을 돌린 명월은 천천히 걷다가 점점 빠르게 움직이더니 이내 적어도 이 성에서는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보법을 밟으며 어지간한 기마병과 다름없는 속도로 근무지에서 멀어져갔다.

성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관청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눈에 띌만큼 크지는 앟지만 그렇다고 작지만도 않은 한 저택이 있다. 그 앞에는 버엇이 서있는 문지기를 무시하기라도 하듯 대문을 서성이던 소년의 모습은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난달이난 아이같기도 하다.

"명월!"

초조하게 발까지 구르며 길을 힐끔이던 소년은 길 끄트머리에서 명월이 보이자 반색을 하며 손을 크게 휘휘 내휘둘렀다. 그 풀에 옆에 있던 문지기가 흠칫 했고, 명월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너 말이야. 요즘 자꾸 쓸데 없는 일로 날 부른다고 생각하던 참이였는데 이번에도 그런 것이면 가만 안둘줄 알아라."

어쩐지 범의 으르렁 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마저 이는 명월의 말에 소년은 멋쩍게 웃어넘기고는 명월의 어깨를 툭 툭 쳤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 이번엔 그런거 아니야."

명월은 거기서 무어라 더 쏘아붙이려다 멈칫 하고는 칫 하며 고개를 돌렸다. 소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하고는 발걸음을 돌려 집쪽으로 향했다.

"일단 들어가서 예기하자."

명월은 아직도 영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자꾸만 자신을 힐끔이는 문지기에게 명패를 내보였다. 관군의 신분이 확인되자 문지기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심하던 태도를 돌변하여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까지 했다. 조금 웃기는 모습이였지만 어쩌랴. 그게 그의 직업인걸.

"그래, 뭐그리 중하기에 너네집 문지기도 못듣는 일이냐?"

끼익 하는 ²경첩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기 무섭게 명월이 마당을 가로지르며 물었다. 소년은 그저 장난스럽게 웃고는 ³대청위로 뛰어올라 바닥에 놓여있던 서신을 명월에게 보이도록 들어올렸다.

서신의 겉에 먹으로 세겨진 문장이 명월의 눈에 들어왔다. 결코 잊을 리가 없는 그 문장은 명월의, 소년의, 그리고 같은 주인을 모시는 자들이 눈을 뜰때면 손등을 따라 떠오른 것과 같은 문장이다.

"읽어봐."

글을 모르는 명월의 말에 소년은 에에~ 하며 김빠지는 듯한 소리를 냈지만 순순히 종이를 꺼내들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 작은 글씨들이 종이 한장을 빼곡히 체워나가고 있었다. 소년은 이미 읽었던 내용이라 제 멋대로 요약해가며 읽어내렸다.

"얼마전에 작은 전쟁이 있어서 한놈을 지방으로 보내놨더니 일처리를 제대로 못해서 아이 하나가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데 그놈이 처벌을 두려워 하여 되려 그 아이와 명령이 안듣는 곳까지 도망쳐 버렸다. 이것은 배신행위로 간주하고 원인이 된 아이와 배신해버린 그녀석. 둘 다 죽여버리래."

명월은 가만히 눈을 내리깔며 소년의 말이 다 끝날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다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처마 끝에 매를 닮은 기와가 보였다. ⁴치미와도 비슷해 보이지만 그것과는 분명 다른 기와다.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가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날 지목해서 온 서신이냐?"

소년은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명월정도 되는 사람에게 거짓말따위 금방 들킬게 분명했고, 굳이 거짓말을 해서 사이를 껄끄럽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소년의 눈이 제빠르게 명월의 안색을 살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숨기는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

"그럼 왜 날 부른거야?"

"그야 네가 이 일에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했으니까지."

소년은 대체 왜 그런걸 궁금해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서신을 도로 접어 넣으며 말했다. 명월은 초조한듯 제 허리에 찬 칼의 끈목을 만지작 거렸다. 눈을 꼭 감았다가 뜨자 담담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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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홍패: 말 그대로 붉은 패다. 여기서는 관군의 증명서와 같은 역할이다.
²경첩: 여닫이 문을 고정시키며 열고 닫을 수 있게 하는 쇠.
³대청: 그냥 방의 중간에 있는 큰 마루라고 생각하면 된다.
⁴치미: 기와 끄트머리에 얹는 장식. 주로 절이나 궁 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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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01 23:04 | 조회 : 1,198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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