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동족 사냥

"나는 가지 않아. 나보다는 공묵이나 청유가 이런 일엔 더 맞을텐데."

상당히 날이선채 소년을 겨냥하는 말이였지만 소년은 마치 자신은 둔해서 그런것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다는 듯 태연히 하늘에 떠가는 구름만 올려다 보았다. 명월의 축 늘어져 있던 왼손이 꽉 말아쥐어지다가 소년과 눈이 마주치자 저절로 풀어져 버렸다.

"뭐, 어쩔수 없나. 네가 싫다면야 강제로 시킬수는 없지. 난 주인이 아니니까."

소년의 말에 명월은 어쩐지 불안함을 느끼며 소년을 계속 노려보았다.

"이건 서화한테 시켜야겠네. 넌 이만 돌아가봐."

소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저쪽에서 걸어가는 하인을 향해 한 손을 들어보였다. 막 어딘가로 외출하려는 듯 대문쪽으로 가던 하인이 이쪽으로 달려오자 명월은 잠시 입술을 곽 깨물고 있다가 하인이 막 이쪽으로 도착하기 직전에 입을 열었다.

"내가 간다.

소년의 입꼬리가 아무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

"서고에 가면 그림이 그려진채 펼쳐진 책이 보일것이다. 가져오너라."

제법 양반답게 하인에게 명령을 내린 소년은 다시 명월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도망친 주제에 본명을 쓸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름은 유연, 자는 비익이야. 본래 오에 지정받은 녀석인데 탈주는 상산이야. 어딘지 알지?"

소년의 말에 명월은 잠시 그대로 서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서화의 이야기는 함정이였던 것이 분명하다. 다만 분한것은 알면서도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 명월이란 자의 한계란 것이다.

"허가증이나 내줘."

"응. 내일 아침 보내줄게."

명월은 소년의 말을 잠자코 듣고난 뒤 살짝 고개를 내저으며 관모를 벗어내렸다. 잘 갈무리 되어있던 머리가 확 풀어졌다. 어깨 아래로 살짝 내려오는 검은머리는 힘없이 아래로 축 늘어져 내렸다.

"내일까지 갈 것 없어. 지금 내줘."

그렇게 말한 명월은 허리끈을 풀어 머리에 띠며 관복마저 벗어냈다. 헐렁하던 관복 아래에 겹쳐입고 있던 황갈색의 도복이 드러났다.

"아참, 교대근무 빼놓지 말고 있어라. 반드시 이레안에 돌아와서 이번엔 꼭 개근이다."

관복에 매고있던 칼을 도복의 허리로 고쳐매며 한다는 소리가 그거다.

"왜 그렇게 개근에 연연하는건데. 돈 팔요하면 나한테 말하면 되잖아."

소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알겠다며 명월이 벗어낸 관복을 한쪽으로 밀어넣었다. 막 책을 가져온 하인은 이번엔 필기구를 가져오라는 말에 조금 울쌍을 지으며 다시 서고로 향했다.

"나갈때 소란은 피우지 마."

"녀석들과 괜한 마찰을 빛는건 나도 사절이다."

칼이 제대로 뽑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칼집을 잡고 손잡이를 살짝 튕겼다 내리며 명월이 대꾸하자 소년은 그래, 하고 웃고는 하인이 가져다준 종이에 붓으로 간단한 날자와 사유를 적은 뒤 수결을 해서 명월에게 주었다.

"네 말대로 안빼놓을테니 이레안에 꼭 돌아와라. 내가 빼놓으면 개근 놓치는 걸로 땡이지만 사전 연락도 없이 안나오면 탈영이다."

"내가 누구같은 머저리인줄 아나."

명월은 일부러. 라고 하는 듯 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이제서야 대문을 빠져나가 자신의 볼일을 볼 수 있게된 하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바로 옆의 담장을 밟고 넘어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외성의 성곽에 도착하기 무섭게 울리는 인경소리에 명월은 칫 하고 가볍게 혀를 찼다. 막 닫히기 시작하는 성문이 보였다.

문지기 들이야 다 제 동료들이니 사정하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금세 소문이 나버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엔 몰래 빠져나가야 겠지.'

이미 정해진 답을 놓고 고민한 제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피식 웃은 명월은 마음을 굳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높이 떠오른 초승달이 보였다. 조금은 운이 별로일지도 모르겠다.

명월의 검은 왼눈이 점점 빛을 잃더니 그 빈자리를 붉을 빛이 체워나가며 왼쪽눈이 붉게 변했다. 하늘에 뜬 달에서 번쩍 하고 붉은빛이 일었다. 눈을 뜬 명월이 힘을 활용하는 방법중 하나인 시선왜곡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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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15 22:09 | 조회 : 1,23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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