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자작극(1).

“시발! 그 새끼, 어디로 갔어!”


약간은 몽롱한 상태에서 머리에 열이 받은 내가 사납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길은 인적이 드문 골목이라서 조금만 소리를 내면 쉽게 눈에 띌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늦었고, 어두웠기 때문에 반대로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실질적인 외관 보다는 사소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였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 정도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머리를 지배하는 생각이라고는 ‘그 자식을 반드시 잡는다.’는 것, 그 사실 하나뿐이었다. 씩씩거리면서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나는 한 곳에서 금발의 여인을 보고 제자리에 우뚝 섰다.


“미, 미영아?”

[내가 죽었는데, 벌써 잊으려고 했어?]

“틀려, 미영아. 나는….”


나는 다급히 변명하면서 피를 흘리고 있는 그녀에게로 성큼, 한 발자국 다가섰다. 죽었을 당시의 복장, 머리, 그 모두가 그대로였다. 여전히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양 팔을 벌렸다. 마치 이리로 와서 안기라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적당히 피곤하고, 적당히 우울하고, 또 적당히 취해있는 상태였다. 제대로 사고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애초에 소중한 약혼자의 물건을 땅바닥에 내팽겨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착각하는 추태를 부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환영을 껴안았을 때, 나는 그것이 그녀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것은 가녀린 여자의 몸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체격이 있었다. ‘그 여자 따위 잊으면 좋을 텐데.’라고 하는 중얼거림이 똑똑히 귓가에 들렸다.

흠칫─.


“자…잠깐…, 당신 누구…!”

“축하선물은 잘 확인했나요?”


푸욱, 들릴 리가 없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어라?’하고 배를 내려다보니 주방에나 있어야할 물건이 자신의 배를 찌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전혀 아프지가 않다.

그저 본능적으로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너무 늦은 상태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을까, 술을 마셨을 때부터?

아니면 그자와 부딪혔던 그때, 나는 그곳에서 봉투를 열어보지 말았어야했나? 혹은 그 장소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재빨리 사람이 많은 곳으로 이동해야했나?

만약 내가 건물의 후문이 아니라 정문으로 나왔다면, 멀리 있는 편의점을 가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그자와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다 못해서 내가 그자의 뒤를 쫓지 않았다면, 상황이 조금은 바뀔 수 있었을까?


“당신이 쫓아오지 않았다면, 내가 당신을 쫓아갔을 겁니다. 기다리는 일은 정말로 힘들더라고요.”

“…지랄…하…네…!”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알맞은 대답을 하는 상대방의 얼굴에 나는 욕설을 내뱉어주면서 비웃음을 지었다. 당장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지만, 점점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제정신을 차리고 있기가 힘에 부쳤다.


“시…이발…!…개새…끼…죽…여…ㅂ…ㅓ…ㄹ….”

“예, 기다리겠습니다.”


상대방의 눈이 웃으면서 곱게 휘어지는데, 짧은 순간이지만 소름이 돋았다. 그것이 기억에 남아있는 그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윽고 나는 정신을 잃었고, 그러자 그자는 ‘꼭 저를 찾아주세요.’이라고 말하면서 정신을 잃은 한민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한민의 아랫배에 찔렀던 식칼을 다시 뽑으면서, 그를 조심스럽게 길바닥에 눕혔다. 그자는 박한민의 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이윽고 [119]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세 번 정도 연결 음이 울리고,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여기 길바닥에 사람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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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1-03 22:49 | 조회 : 1,127 목록
작가의 말
탄과/신또

풋풋한 대학교 사랑물이 아니게 되었ㅅ(철썩) 딱히 밝은 분위기는 아닐 것 같ㅇ(철썩2) 사실은 납치할려다가 참은 건데, 하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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