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찝찝한 추억(3).

밖으로 내려오자 아닌 밤에 함박눈이 길거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쌀쌀한 공기로 인해서 새하얀 입김이 나오고, 본능적으로 어깨가 잘게 떨렸다. 기분전환으로 담배를 한 대 피우려니, 그 마저도 다 떨어져서 여의치 않았다.


"아, 존나 짜증나네."


꾸깃─.

빈 담배갑을 구겨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홀로 돌아가면 담배가 있을테지만, 별로 다시 찾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담배를 사러 가자니, 가장 가까운 편의점까지 걸어서 15분은 걸리는 거리였다.


"후우…. 미영아. 역시나 이 엿 같은 사회는 네가 없어도 멸망하지는 않나보다. 그런데 어떡하지? 내 세상은 무너지기 직전이라고, 씨발."


짧게 욕설을 읊조리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평소에는 매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별이 오늘따라 더럽게도 잘 보인다. 높은 빌딩에서는 돈지랄하는 사람들의 파티가 열리고 있고, 길거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커플들이 첫눈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나는 혼자서 담배조차 피우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김미영, 내가 처음으로 절실히 사랑했던 약혼자.

그녀가 죽은지도 오늘로써 정확하게 2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죽고 못 살 것 같았던 그 사랑도 2년이 지나니까 조금씩 무뎌 디고 있었다. 절대로 잊지 말자고 다짐했으면서, 잊지는 않아도 적응은 하고 있나 보다.


"쯧! 꼴불견이네, 진짜로."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웃음이 넘치는 거리로 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일부러 발걸음을 빨리해서, 거의 뛰다시피 편의점으로 향했다. 담배나 사야겠다.

그런데 너무 서두른다고 뛰었던 탓인지, 반대편에서 마찬가지로 뛰어오는 사람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당연히 나와 그 사람은 강하게 부딪혔고, 상대적으로 체구가 약한 쪽이었던 내가 힘없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었다.

콰당─!


"…아오…."

"아, 죄송합니다."


상대방의 사과의 말도 무시한 나는 일으켜주려는 손을 뿌리치면서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막바지인데 일진이 사납다. 하필 넘어진 장소에 흙탕물이 있어서 입고있던 양복도 더러워졌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건 세탁비로 쓰세요."

"아니, 필요없ㄴ…."


나는 짜증스럽게 그의 성의를 거절했다. 그냥 모든 것이 짜증나서 혼자있고 싶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굳이 나에게 돈 봉투를 쥐어주더니 황급히 그곳에서 사라졌다. 얼떨결에 봉투를 받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그것을 흔들었다.

달그락─.

'뭐지?'라고 중얼거린 내가 의문의 그 봉투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표정을 굳히면서, 끝내는 그것을 바닥에 집어던지며 속으로 생각나는 수천가지의 욕설을 내뱉었다. 거칠게 바닥에 떨어진 그 봉투 속에서 죽은 약혼자의 4번째 손가락과 피에 굳은 약혼반지가 함께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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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2-23 22:56 | 조회 : 1,071 목록
작가의 말
탄과/신또

고어물 아닙니다. 풋풋한 학교 로맨스 입니다.(웃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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