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엇갈림 (월하 : 달빛 아래)


"하-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답답함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깟 도서관이라니, 도서관이 얼마나 좋은 덴데.

"알았어요. 끊죠."

하아아,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힘든 삶. 자연스럽게 얀의 얼굴이 떠올랐다.

"짜증 나... 얀이 보고 싶다."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이 울리길 바랐다. 그 예쁜 얼굴로 웃으며 내게 같이 밥 먹자고 했으면 좋겠다.

손을 털던 원우는 거울을 보다가 문득 화장실 칸에 익숙한 운동화가 보였다.

....저거 얀이 맨날 신고 다니는 운동환데.

이런 데서도 얀이 생각이냐,며 스스로를 다그치고는 뒤돌아 나왔다.


-


"밥 뭐 먹을까요?"
"오늘은.,."

황급히 도망가는 뒤태가 익숙했다.

"얀아!"
"흐익!"

뒤돌아본 얀이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충격을 지울 수 없었다면... 내가 오만할 걸까.


-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 직접 물어봐야겠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고 나는 확신했다.

띵동-

"누구세요?"
"문 열어줘."


-


띵동-

씻고 나온 뒤, 행복한 마음으로 맥주를 막 딴 참이었다.

"누구지...?"

9시 반. 늦다면 늦고, 이르다면 이른 시간이었다.

"누구세요?"
"문 열어줘."

흠칫-

문에 가까이 다가가려던 행동이 멈칫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원우 형이었다.

"대체 왜 피하는 건지, 나는 알아야겠어."

그러니까 문 열어.


-


끼익, 문이 살짝 열리자 원우는 기다렸다는 듯 박차고 들어갔다. 마주한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눈빛을 주고받다가, 얀이 먼저 자리에 앉음으로써 끝났다.

"왜 피하는데?"

직격으로 질문해 오는 원우의 눈을 못 마주치면서, 얀이 대답했다.

"피... 피한 거 아니에요."
"오늘 나보고 도망갔잖아."
"그러는 형이야말로 왜 이렇게 화내요?"

순간, 원망스러운 눈빛이 얀에게 돌아왔다.

진짜로 몰라서 이러냐고.

".... 미안하다. 내가 도를 넘었네."

원우가 큰 한숨을 내쉬며 뒤돌았다.

"갈게."

그 뒷모습을 보고서는, 잡아야 하는데 잡아야 하는데 되뇌면서도 결국 잡지는 못했다.

...늘 그랬듯이.


-


그 후로 며칠이 흘렀다. 꾸준히 도서관에 들렀지만, 형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왜 안 보이지..."

내가 먼저 밀어내놓고, 이러는 것도 우스웠다.

"하아..."

아마 찾지 못할 것 같다. 책도, 형도.

그 책은 이미 없어져버린 것 같고, 형도 보이지조차 않으니.

"이런 짓도 그만둘까..."


-


피폐해진 얼굴에 거뭇거뭇 자라난 수염, 부스스한 머리 탓에 폐인처럼 보였다.

정성스레 수염을 깎고, 머리를 감았다.

이제는 접힌 마음에 대한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 누가 와도 흔들리지 않을 정리.

가슴이 아려왔으나, 개의치 않은 척했다. 나는 그런 '척'을 잘했으니까.

그렇게 믿으며 스스로를 정리했다. 이 정리가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


"여! 원우 씨 왔네?"
"아... 하건 씨. 안녕하세요."
"아팠다며. 괜찮아?"
"그럼요. 많이 빠져서 일이 밀렸겠네요.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뒤돌아 뛰어가는 원우의 모습을 보며 하건이 갸우뚱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


"읏차!"

마지막 책을 가져다 놓고는 크게 한숨지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이 힘들었다. 겨우겨우 버티고 서있지만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힐링이, 절실했다.

원우는 자신의 자리 밑 숨겨뒀던 박스에서 동화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빛바랜 동화책에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하건씨"

점심시간, 하건을 먼저 찾아간 원우는 점심은 혼자 드시라며 양해를 구하고는 도서관 뒤뜰 아무도 찾지 않는 벤치에 앉았다.

같이 들고 온 동화책을 한 장 넘겼다. 어린아이들이 마구 낙서해놓은 그 책을 원우는 아련한 눈길로 쓰다듬었다. 늘 삶이 벅찰 때마다 원우는 도서관 뒤뜰 벤치에 앉아 이 책을 꺼내보고는 했다.

'외로운 여우의 친구가 되어줘!'

다분히 유아틱한 제목에 알록달록한 삽화가 인상적인 책... 이기도 하지만, 여기저기 되어있는 낙서 때문에 더더욱 눈이 가는 책.

푸흐, 하고 실소를 터뜨린 원우가 책의 첫 장을 넘겼다. 여우의 눈이며 귀며 까맣게 색칠되어있고, 글자 중간중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체가 어렴풋이나마 알아볼 수 있게 써져있었다.

원우의 첫사랑이 주고 간 책이었다. 짧은 숏컷 머리에 예쁘장한 얼굴을 가진 어떤 여자아이. 기억 속에서도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는 아이였다.

"다시 만나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사랑으로 힘겨운 나날이면 여지없이 그녀가 떠올랐다. 순수하디 순수했던 사랑을 기억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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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04 19:54 | 조회 : 1,380 목록
작가의 말
뀨루욱

호빗이 자꾸 소설을 포기하려고하는데 월하님이 혼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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