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술에 취해서 (월하 : 달빛 아래)


"엇, 원우 씨!! 오늘 한 잔?"

하건 씨가 술 마시는 제스처를 취하며 물어봤다.

"오늘 선약이 있어서요..."

내가 난감하다는 듯 웃어 보이자, 하건 씨의 웃음이 묘해졌다.

"설마!! 애인 생겼어?"
"에엑?? 아니요??"
"아닌데? 얼굴이 완전 핑크빛 기류인데? 그래, 원우 씨 얼굴에 애인이 없을 리가 없잖아."
"아이 참, 아니라니까요!!"

하건 씨는 은근 짓궂은 면이 있으시다니까.

오늘 선약 있는 건 얀이와였다. 평소 보고 싶던 영화가 재개봉했는데, 혼자 가기는 뭣해서 미뤄두고만 있었다.

"형! 형도 이 영화 좋아해?"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그 영화감독을 좋아해."
"아! 극장에 재개봉했던데, 같이 보러 갈래?"
"앗, 정말?"

얀이랑은 몇 개월 새 부쩍 친해져 서로 집도 놀러 오고 가며 나름 잘 지내고 있다.

"형!"
"미안, 좀 늦었다."

스프라이트 티에 청바지를 입은 얀은, 살짝 귀여웠다. 아니, 솔직히 좀 많이.

"아니, 괜찮아! 팝콘 먹을래?"
"좋지. 내가 살게! 무슨 맛 좋아해?"
"으음, 역시 캐러멜?"
"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사 올게"


-


왜 이렇게 안 오지...

오늘 형은 검정 바지에 깔끔한 셔츠를 입고서는 짠하고 나타났다. 진짜,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못하는 것도 없다니까... 저런데 왜 여친이 없는지.

팝콘 사러 간대놓고는 한참을 오지 않았다. 줄이 좀 길긴 하던데.,.라며 애써 자기 자신과 타협할 때였다.

"왔다!!"

들뜬 마음에 의자에서 일어서려는데, 형 옆에는 못 보던 여자 한 분이 서계셨다. 그러니까, 아주 예쁜.

그 순간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걸 느꼈다. 조금 웃기긴 한데, 나는 그때야 알았던 것 같다.

나는, 형을 좋아한다고.


-


"야, 신 원우!"
"....니가 여기 왜 있어."
"누나한테 너라니, 많이 컸다?"

원우의 표정에 짜증과 귀찮음이 드리웠다.

"왜 여기 계신데요, 누님."
"데이트하러 왔나 보네? 웬일로 깔끔해?"
"시끄럽고."
"맞선 보러 왔어."
"그래, 웬일로 호박에 줄 그었나 했다."
"쯧... 밖이다. 자제하자."
"지가 먼저 해놓고."

신 원주. 신 원우 누나. 아직 시집 못 간 29살 노처녀,라고 소개했다가는 맞겠지.

"나 간다. 바빠."
"가끔 본가도 놀러 와. 어머니 적적해하셔."
"... 알잖아. 내가 왜 독립했는지."
"하아, 그래 알았다."

괜히 저런 얘길 들으면 또 양심이 찔린다.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버지한테 제 발로 찾아가는 멍청한 짓은 자제하고 싶은지라.

"형...."

몇 걸음 걷자 일어서있는 얀이 어색하게 날 불렀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방금 그 사람 누구야?"

미안한 마음으로 한 발짝 다가서자, 얀이 물었다.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지금 질투해주는 건가. 싶어서.

"누구인 것 같아?"
"이익....여친도 있으면서... 왜 나 같은 애랑 영화 보러 온 거야..."

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보는 눈이 많아 무작정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울지 마. 왜 또 울어.... 저 사람 여친 아니야. 내 친누나야."
"쿨쩍, 누나?"

얀이 원우를 올려다본다. 진짜, 귀엽다고.

"그래. 으이구. 얼굴 빨개진 것 봐."

원우가 장난스럽게 얀의 눈을 부비적거렸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살결이 묘했다.

"자, 이제 영화 보러 가자."


-


"그러어니이까~"

눈이 반쯤 풀린 원우 형을 난감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대체 맥주 한 병에 왜 이렇게 나가떨어진 건지.

"형, 솔직히 말해봐. 주량 몇 잔이야?"
"으응, 맥주 한 캔?"
"미쳤어..."

이제 어쩌지...? 그냥 우리 집에서 재워야 하나?

같이 영화 보고 우리 집에 와 술을 딴 것 까지는 좋았다. 다만 원우 형 주량이 이렇게 약할지는 몰라서 그렇지. 어쩌지, 하고 있는데.

"하야나아..?"

혀도 제대로 못 굴릴 정도로 취해버린 원우 형.

"응, 형."
"나아... 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너는....?"

...잘못 들었을 거야.

"왜 대답을 안 해줘어! 너어는?!!"

그 질문을 못 들었으니까, 안 들었으니까. 그러니까, 대답 안 해.

"치, 그렇다면...."

원우 형이 한 발짝 몸을 바싹 당겨 앉았다. 훅 가까워진 거리가, 낯설었다.

풀썩, 뭔가를 말하려던 형이 뒤로 넘어졌다. 다행히 침대 매트리스에 기대져, 다치지는 않았다.

자는 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는, 그에게 더 다가가지 못하게 될 거라고. 이 인연마저 끊게 될 거라고.

긴 밤이 찾아와 고개를 내밀었지만, 그 공허한 어둠을 홀로 지켜보기엔 버거운 밤.

그날은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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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26 17:18 | 조회 : 1,519 목록
작가의 말
뀨루욱

뀨룩은 일이 있어서 더 귀엽고 예쁜 제가 올립니다.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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