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손만 잡고 잤을걸 (월하 : 달빛 아래)


오늘도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조심스레 향했다. 저번에 들킨 이후로 모자도 눌러쓰고 좀 더 늦은 시간에 들락거리기로 했다.

"후우, 시작해볼까?"

기지개를 쭉 한번 펴고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벌써 1년째, 여전히 못 찾고 있는 책에 우울해졌다.

"오늘은 원고도 보내야 하니까... 2시간만 가볍게 찾고 갈까나..."

저번까지는 2000년대 전후로 살펴봤으니, 이제는 1990년 대 버려진 책들을 찾아봐야 한다. 그 어마어마한 양을 살피기엔 2시간은 짧지만...

"그래도 해야 돼."

결의마저 느껴지는 한마디를 조용히 읊조리고는, 그쪽으로 향했다.

"어...?"

툭, 치고 지나간 의자 옆 탁자에는 사탕 몇 개와 쪽지가 놓여있었다.

[옆집 사람입니다. 사탕 드세요! -신 원우]

푸흐, 뭐야. 하다가 사탕 한 알을 까서 입에 넣었다. 포도의 싱그러운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조금은 우울했던 마음이 점차 나아졌다.

"꼭, 고맙다고 해야겠다."

시작해볼까,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


"아, 진짜... 어떻게 냉장고에 물 한 통이 없지..."

바쁜 일상 탓에 텅 빈 냉장고를 보며 스스로도 한숨을 내쉬었다.

"원고 오늘까진데..."

하아, 하고 한숨 쉰 얀은 주섬주섬 외투를 챙기고는 문을 열었다.

"아"

원우 씨였다. 날 보자 살짝 웃으며 인사한다.

"아, 안녕하세요."

서로 꾸벅 인사하고는, 원우 씨는 그냥 들어가려고 했다.

"워...원우 씨"

다급한 마음에 생각보다 행동이 앞섰다.

"네?"

그가 뒤돌아보자, 무슨 행동을 했는지 자각한 나는 우물쭈물거리다 조그맣게 감사하다고 했다.
떨리는 목소리가 들킬까 부러 웃으며.

"사탕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내 인사에 원우 씨는 멈칫거렸다. 부끄러움이 몰려와 또 보자며 인사하고 허둥지둥 집을 떠났다.

"으으, 어떡하지....완전 이상했을거야....어떡해..."

바보 바보, 중얼거리며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


"다...했다!!"

'오늘'이 5분 남은 시각, 아슬아슬하게 원고를 마친 나는 기지개를 쭉 한 번 펴주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세상에...이게 내가 한거라고...?"

생각이 말이 되어 흘러나오자, 상황의 심각성이 더 돋보였다.

엉망으로 쓰레기가 널려있는 책상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빨래, 무엇보다 한숨도 안 자 모든 게 흐릿하게 보이는 몸 상태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하아, 한숨 쉬며 일어나려는데 몸이 비틀거렸다.

"어어...?"

진짜 엉망이긴 한가보다, 그러면서 다시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

"답답해..."

베란다 창문을 열어 시원한 공기를 한껏 머금고 싶었다. 어질러진 책상 위 머그잔에 남아있는 물을 단숨에 마셔버리고는 힘을 내 의자에서 일어났다.

"으힛!"

...꽤나 이상한 기합소리였지만, 여차저차 일어난 그가 베란다 쪽으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공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가 피곤함이 옅어졌다.

"하..얀씨?"

깜짝 놀라 옆을 보니 맥주캔을 들고 베란다에 서 있는 원우 씨가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아직도 안 잤어요?"

살짝 취한 듯 빨개진 볼로 원우 씨가 물었다. 어, 어떻게 답해야 하지... 눈을 살짝 굴리다가 싱긋 웃었다.

"아직 원고를 못 끝내서.... 이제 다했어요! 집 좀 치우고 자려구요."
"으흥, 그렇구나."

헤실헤실 웃으며 원우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좀 도와줄까요?"
"에, 아니예요!!"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 도와드리려고... 안될까요?"

시무룩한 강아지 한 마리가 보이는 기분이란.

"내일 출근하시잖아요."
"내일 월요일이라 도서관 문 안열어요."
"아...."
"도와도 될까요?"

그래,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부탁드릴게요."


-


"집이 많이 더러워서..."
"흠,"

집을 살피던 원우 씨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얀 씨는...어, 얀 씨 몇 살이죠?"

얀 씨, 라니.... 간질간질한 호칭이 낯설었다.

"24살...이요"
"제가 형이네요. 형이라고 불러요."
"예에??"
"저 27살이에요. 3살 형이죠. 형이라고 불러요."
"네, 형..."

그 어색한 말에 오소소 소름 돋는 기분이랄까.

"반말할까요, 우리?"
"좋..좋긴 한데...."

좀 불안해졌다. 술..,되게 약하시구나.

"얀아. 일단 너는 책상 정리할래? 책상은 네 공간이니까"
"네....아니 , 응 형!"

으으, 어색해, 어색해!


-


"하아암..."

새벽 2시를 가르키는 시간. 옅어졌던 피곤함이 다시 짙게 드리웠다.

"잘래?"

원우...형이 침대를 눈짓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졸려도, 난 이 방주인ㅇ...


-


침대에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던 얀은 오후가 되어서야 깼다. 개운한 몸에 움직이기 싫은 따뜻함에 깼음에도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침대가 지나치게 좁은 거 같은데.

"깼어?"

아무도 없어야 할 침대 옆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원우....형?"
"미안....여기서 자버렸네."

헤헤, 하고 형이 웃었다....가 아니잖아??

"대체...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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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19 21:37 | 조회 : 1,494 목록
작가의 말
뀨루욱

손만 잡긴 그래서 몸 좀 문대봤어. (능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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