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겨울의 끝
8살. 매우 어린 나이.
난 태어날 때부터 8살의 모습이었고, 내 왼쪽 눈에는 한자 청(靑)자 주위로 물방울이 떠있는 문양이 있다.
난 내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같이 놀이공원으로 놀러나갔다.
나는 입양아. 1살 때 부모님이 데리고 오셨다한다.
내가 그때 8살 어린아이의 모습이라 나를 싫어하시기도 한다.
내가 봐도 난 이상하다.
어릴 때의 기억을 다 가지고 있고, 왼쪽 눈의 이상한 문양과, 비정상적인 성장.
하지만 그래도 내 언니, 지인만은 날 잘 대해주었다.
"언니!"
"왜?"
"회전목마 타자!"
"그래."
조금 기다리고 탄 회전목마. 엄마와 아빠는 같이 롤러코스터를 타러 가셨다.
그리고 하필 타는 동안.
빠직-
불행히도 내가 타고 있는 말이 부서지고, 내 밑의 바닥도 꺼졌다.
'뭐지?'
나는 순간적으로 손을 뻗었고, 그 손을 잡아준 건 내 옆의 지인 언니.
"언니..."
"현아!"
불행히도 언니는 날 끌어올릴만한 힘이 없었다.
언니와 나는 같이 떨어졌다.
* * *
번쩍-
눈을 뜨니 나는 한 철창 안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남자와 내 언니.
"언...니?"
".....네 언니냐?"
내 언니 옆의 남자가 말했다.
어두워서인지 그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네... 제 언니에요..."
"네 이름은?"
"이현이요....당신은요?"
"....늑환."
왠지 모르게 그 남자에게 마음이 갔다.
아련해보이고...처량해보이고... 보듬어주고 싶었다.
"늑환...이요?"
"....그래."
"...어디 아파요?"
"....?"
"아, 아니에요."
왠지 힘들어보였다. 철창안에 갇혀있었으니. 그나저나...
"여긴 어디죠?"
"빨리도 물어본다."
"....."
"여긴 백귀야행 본가. 그 지하감옥."
"백귀...야행?"
"....? 너 몰라? 청화(靑花)인 것 같은데."
"청화...요?"
내 말에 그는 내 왼쪽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증표. 여깄네. 호위무사랑 반려는?"
"호위무사랑 반려? 그게 뭐예요?"
"......그러고보니.....청화? 너 리크샤 알아?"
"리크샤요?"
"모르나보네..."
덜컹-
그때, 그 철창의 문이 열렸다.
".....무슨일이야."
그 남자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들어온 남자는 웃고있었다.
"그대로 있어. 아이 둘은 보내고."
"애들은 왜?"
"그 사이에 정이라도 들었어?"
"....글쎄."
".....얘기할 시간이라도 줄까? 네가 해칠 것 같진 않고, 얘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아서. 너한테도 가끔은 기분 좋은 시간이 있어야지."
그의 말대로 내 표정은 아주 불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몸이 8살이지만 이래뵈도 머리는 꽤 좋다.
"꺼져!"
"......"
"......."
내 말에 그 두 남자는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들어온 남자는 그런 표정을 지었고 늑환은 아마 그럴것이다.
어두워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파란 두 눈동자 빼고는...
"하하. 8살인데 말이 상당히 거칠네."
"정신연령은 16살이거든? 태어날 때부터 8살, 지금까지 8살. 16살이다."
".......베짱도 대단하네."
"허... 저리 가. 흠... 그런데 익숙한 기운이 나네."
"....?"
"....."
내 말에 늑환은 무슨 말이냔 표정을 하고 들어온 남자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류인."
"....?"
"아까 말했잖아. 시간 준다고. 애도 싫어하는 것 같은데 가지?"
".....그럼 2시간 뒤에 올께. 나도 억지로 뭐 시키는 건 싫다고. 특히 어린애한텐."
"...그거 다행이네."
"그나저나, 네 옆에 엎드린 여자애 좀."
언니는 왜 부르는 거지? 난 냅두면서.
"내 언니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언니? 네 언니?"
"그런데."
"흠....그럼 걔도 이따가 데려갈께. 같이 올 줄은 몰랐는데...."
그가 나가면서 조용히 말하는 것을 난 들었다.
내가 올 껄 알고 있었나? 아니면....
날 여기로 보낸게 너야?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류인이란 남자는 나갔다.
남은 나와 늑환. 그리고 쓰러진 언니.
"....너 말 꽤나 심하게 하더라?"
"......내숭 떠는거지, 뭐. 할 말은 하고 사는 타입이라."
"......어린애가 아니라 욕설하는 미친 여자 같은데."
"대놓고 말하지 마."
그리고 2시간 동안, 나와 그는 꽤 친해졌다.
류인이란 자가 오기 얼마전,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글쎄. 보다시피 묶여있어서."
그는 자신의 양팔에 묶여있는 족쇄를 보여주며 말했다.
"어차피 다시 만나도 못 알아볼 것 같네. 모습이 안 보여. 눈 빼고."
"눈까지 보이는 거면 엄청난 건데. 아무튼, 다시 만나긴 힘들거야. 언제 나갈지 모르거든."
"......만날 수 있으면 만나자."
"된다면. 네가 늙어 죽은 후에나 보려나..."
나는 그의 말에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처음으로 날 허물없이 대해준 남자.
핏줄도 아니다. 처음보는 사람이다. 은근 까칠하면서도 친절하다.
[다시 보자, 꼭.]
곧 류인이 들어오며, 나와 내 언니는 어딘가로 끌려갔다.
내가 류인이 갑자기 한 공격으로 기절당한 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언니와 함께 집에 있었다.
* *
이게 내가 10년 전에 일어났던 일.
늑환은 그 이후로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하지만 달라진 건 한 가지 있었다.
그 일이 있는 이후로, 언니마저 나에게 화를 냈다.
손찌검하는 것도 이젠 자주 일어나는 일.
모두 그 일을 중심으로 변했다.
겨우겨우 버티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곧 있으면 수능.
야간 자율학습, 즉 야자를 하면서 집에 별로 가지 않고 있다.
기숙사가 있는 학교라 다행이지.
나는 3학년 4반.
공부도 어느 정도는 한다.
그리고 수업 시간 중 선생님이 교무실에 일이 있다고 나가시자, 친구인 세현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세현이가 날 건드린 뒤에야 교실의 풍경을 보았는데, 그야말로 텅텅 빈 교실.
"....다들 어디 간거야?"
"1반에 온 전학생 보러."
"고등학생이 전학을 오다니, 공부는 관심대상에서 제외인 애인가 보네."
"흠... 그건 잘 모르겠고. 구경가자!"
"수능이 코앞이야, 세현아. 미친짓은 그만하고 너라도 공부해."
난 나름 내 친구의 앞날을 걱정하고 한 말이었다.
세현이도 그 뜻을 알고 결국 포기하고 앉았고.
"칫."
그리고 그때 나갔던 애들이 왔다.
여자애들 몇몇은 모여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 전학생 봤어? 진짜 잘생겼더라~"
"맞아. 염색이나 렌즈인지, 외국인인지 머리색이랑 눈 색도 특이하더라~"
"우리 반에도 비슷한 애가 있긴 하지~"
"하긴, 현이 눈도 특이하긴 하지. 혹시 아는 사인가?"
그들은 나에게 다가와서는 말했다.
"너 전학생 알아?"
"...얼굴을 못 봐서 아는 사람인지도 몰라."
"하긴, 우리도 잠시만 보고 선생님한테 쫓겨났는걸."
딩동댕동-
마침 울린 쉬는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그들은 나를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니까 보러 가자! 아는 사이면 나한테 소개도 좀 시켜주고~"
"모르는 사이면!"
애들은 나를 밀면서 앞으로 갔다. 1반을 향해.
복도를 가로질러 가며 이미 포기하여 고개를 푹 숙인 나의 앞에 발자국 소리가 여러 개가 났다.
저벅저벅저벅-
상당히 많은 발소리.
한 사람이 아니다.
뚝-
그 발소리가 내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나를 보는 시선.
"......?"
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 사람이 누군지 보았다.
새파란 눈동자. 그리고 은근 파란색이 섞여있는 백발. 그리고 왠지 익숙한 기분...
"너 나 알아?"
게다가 익숙한 시선이었다. 하지만 처음보는 얼굴.
그리고 하필 내 앞에 멈췄다. 나를 아는건가?
"모르는데. 알긴 알아. 이름도 모르는데 무슨."
"아. 그럼 갈길이나 가."
"딱 이름만 모른다고. 본 적도 있어. 넌 날 못 알아보겠지만."
"....? 내가 본 적도 있고.... 난 널 못 알아본다고? 내가 아는 그런 사람은..."
늑환밖에 없는데. 그러고보니... 눈동자 색도 그렇고, 날 아는것도 그렇고.
"너 이름이 뭐야?"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이 사실은 그 류인이란 사람도 알고 있지만.
"...이하. 한이하."
"이름 겁나 특이하네. 난 이현. 그럼 이름만 서로 알고 갈길 가자고. 왜 하필 내 앞에 멈춘거야?"
"부탁이 있어서."
"난 들어줄 맘이 없는데. 게다가..."
시선이 많다.
참 많은 사람들이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다.
나를 밀던 애들, 이하의 뒤를 따라오는 애들 외 복도를 걸어다니던 애들 모두가.
"시선이라면 상관없는데. 내가 말하려는 건 너랑 관련된 거니까."
이 애, 뭔가 수상하다.
그리고 무언가 꺼림칙한 게...
"부탁이란 게 뭔데?"
"아. 어느새 얘기가 딴 데로 흘렀네."
"....말이나 해."
"부탁... 하하."
"....?"
갑자기 이상하게 웃는 그를 나는 이상하게 바라봤다.
"아니다. 어차피 나중에 안 말해도 될 것 같은데."
이하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선 나를 지나쳐갔다.
"쟤 뭐야?"
기껏 들어주려했더니 무시하고 그냥 가는 그를 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부디, 다신 나타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