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에 취하다, 기당(3)

“고생을 많이 했구려. 혹시 꼬마 도령이 나요?”

향월은 병훈의 빈 술잔에다가 술을 따라주면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고난을 경험할 땜마다 나으리와 만날 이 순간을 떠올리며 버텨왔습니다.”

병훈은 술을 단 숨에 마셨다.

“미안하오. 그대 마음을 받아줄 수 없소. 나에게는 사모하는 임이 있소.”

향월의 눈가에 눈물이 조금씩 맺혔다.

“나으리의 마음이 제게로 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내 마음은 그대로 일거이오. 나보다 좋은 사내를 만날 길 바라오.”

이 말을 하고 나서 병훈은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향월은 병훈의 등을 보면서 “다른 사내들은 저를 천한 기생이라며 무시했습니다. 나으리만 저를 존중해주었습니다. 어디서 나으리보다 좋은 사내를 어떻게 만납니까?”라고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기당 문을 나서려했을 때 눈처럼 하얀 도포를 입은 윤길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병훈이 윤길을 끌어안았다. 윤길은 깜짝 놀라 병훈을 띄어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않았다. 윤길한테 은은하고 달큰한 체취가 나 그 향기에 취할 것만 같았다. 병훈은 윤길 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당에는 오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소? 혹시 나를 보려고 왔소.”

“어서 놓으시오. 많이 취했소.”

병훈은 윤길이 이렇게 말해도 놓아주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이유를 말할 때까지 안 풀겠소.”

윤길은 한숨을 쉬며 마지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번처럼 술에 취해 바깥에서 잘까봐 걱정돼서 왔소. 멀쩡한 거 같으니 가보갰소.”

병훈은 쑥스러운 얼굴로 수줍게 말했다.

“이대로 함께 있으면 아니 되오?”

윤길은 병훈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소.”

그 말을 듣자 병훈은 품에서 윤길을풀어주었다. 뒤를 쳐다보지 않은 채 윤길은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윤길이 말한 말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며 슬픈 마음을 가득안고 집으로 향했다. 불이 꺼진 마을은 조용하며 고요했다. 병훈의 비틀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고요함을 깨뜨렸다. 발자국에는 외로움과 슬픔이 곁들여졌다. 방으로 들어가 무거웠던 흑립을 벗어두고 거추장스러운 도포대신편한 오으로 갈아입었다. 이부자리에 누워 윤길을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병훈은 일어나 서당에 갈 준비를 했다. 어머니가 아침상을 들고 오셨다.

“병훈아, 아버지는 급한 볼일이 있으셔서 아침 일찍 떠나셨구나.”

이병훈은 수저를 들지 않은 채 어머니의 말씀에 대답했다.

“예, 어머니. 제가 연회를 연 것에 대해서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은 없으신가요?”

어머니는 목청을 가담으신 후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 ‘벌써부터 정치를 생각하고 연회를 베풀다니 기특하구나. 인연을 맺어 필요할 때 사용해라.’라고 그러셨구나.”

병훈은 ‘어제 내가 연회를 베푼 것은 정치를 위해서가 아닌 윤길을 위해서였다. 사람을 이용하다니 사람을 도구로 취급하는 게 아닌가?’ 라며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가 나가고 병훈은 아침상을 먹었다. 서당으로 가 자리에 앉았는데 향월에게 집적거리던 양반이 나타나 병훈이 있는 곳으로 왔다.

“어제는 내가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소. 실례를 범해 미안했소.”

병훈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괜찮소. 잘못을 알고 있다니 다행이오. 다시는 그러지 마오.”

스승님이 나타나 성악설과 성선설에 대해 설명하셨다.

“맹자의 성선설은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는 학설이고 순자의 성악설은 사람은 본디 악하다는 학설이다. 예전부터 나는 인간이 선한 지 악한 지에 대해 고민했구나. 인간의 추잡하고 더러운 범죄나 이기심 때문에 사람은 인간은 본디 악하다고 생각되지만 인간이 남을 돕는 행위나 선행을 베푸는 것을 보면 본디 선하다고 느꼈다.”

이병훈은 스승님의 말씀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스승님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으셨나요?”

스승님은 언짢은 기색도 없이 대답하였다.

“그래, 고자가 주장한 성무선악설이 해답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도 없고 악도 없다고 주장하더구나. 이것을 보고 나서 인간에게는 선을 행하는 의지도 있으며 악을 행하는 의지도 있다고 동시에 느꼈다. 인간은 순수한 욕구와 칠정에 의해 남들에게 선을 베풀거나 악을 행한다. 선과 악 사이에서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으며 선택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진다. 선비로서 칠정과 욕구를 절제하고 악을 행하지 말며 남들에게 먼저 선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한다.”

양반 자제들은 스승님의 설명에 감탄하며 “에, 명심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수업이 끝나자 이병훈은 스승님께 찾아가 물었다.

“스승님은 왜 그렇게 학식이 높으십니까?”

스승님은 수염을 쓰담으며 대답했다.

“병훈아, 너도 나를 뛰어넘을 수가 있단다. 나보다 학식이 높은 사람들은 얼마든 지 있으며 그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 구나. 단지 많은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 했다.”

“아까 예의 없이 스승님 말씀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질문에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은 병훈을 쳐다보며 그의 마음깊이를 알고 싶어졌다.

"아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와서 물어보아라.“

“예, 저는 가보겠습니다.”

이병훈은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병훈이 사라진 것을 보고 윤길은 스승님께 나타났다.

“스승님.”

“윤길이구나,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느냐?”

윤길은 차분하게 물었다.

“스승님은 저희를 가르치시는 동안에 다른 사람은 일절 가르치지 않겠다고 그러셨습니다. 어찌 병훈 이라는 자는 받아들이셨습니까?”

“병훈의 눈에서 끊임없이 학문을 갈구하는 눈빛을 읽었구나. 그 열정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그때 어린 저를 받아들이셨습니까?”

스승님은 별들이 쏟아지는 밤하늘 보시고는 대답했다.

“밤이 깊어졌으니 너도 집에 가거라. 나중에 말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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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3-22 12:37 | 조회 : 66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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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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