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모든 것을 갈망하다(4)- 과거

윤길은 점차 차분해지면서 동생의 사고가 자신때문이 아니라고 느꼈다. 사고 당시에 비가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쏟아졌고 물쌀이 깊어져 어른이라도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용기를 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억울해요. 재앙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사고였을 뿐이예요. 제가 미래에 이 댁 아드님께 안 좋은 영향을 미치다니요. 제가 어떻게 될 지 모르시잖아요. 사고 당시에 비가 많이 내려 냇가는 흘러 넘쳤고 어른이라도 잠길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병훈의 부모님이 악을 쓰며 윤길에게 소리쳤다.

"감히 어른에게 대들다니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누구의 자식인데 예의범절을 모르느냐. 어른이 말씀하시면 묵묵히 들어야된다. 윗사람이 무엇을 말하면 알겠습니다라고 해야지 어디서 말대꾸를 하느냐,"

윤길은 소리가 너무 커 귀를 막았다.

"말대꾸가 아니라 제가 느낀 대로 설명했을 뿐이예요. 그렇게 안좋은 의도로 받아들이시면 어쩌십니까?"

"어른이 말씀하고 계시는데 귀를 막고 있다니 정녕 제정신이냐. 너같은 녀석은 우리 아들에게 필요없다. 무당집에서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불길한 일에 휘말리지않았을 텐데 말이다. 거기 누구 없느냐? 당장 이 아이를 바깥으로 쫒아내거라."

몸종이 나타나 윤길을 바깥으로 내몰았다. 그 자리에 있으려고 애를 쓰며 버텼지만 힘에 밀려 소용이 없었다. 도포를 입은 남자아이의 부모님에게 한 모든 말이 말대꾸라고 생각되지않았다. 그들의 물음에 정당한 대답이라고 느꼈다. 쫒겨난 이 상황이 억울했고 항상 함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여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슬프고 안 좋은 감정들이 몰려와 마음 속에서 씨를 뿌렸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과 그 아이를 휘말리게 했다는 죄책감때문에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은 점점 자라 윤길을 뒤흔들었다. 윤길은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겨우 도착했다. 축축하게 젖은 두루마리를 벗고 눈물과 새카매진 감정이 결합된 슬픔을 상징하는 듯한 회색 빚깔의 두루마기로 갈아입었다. 부모님들이 행사에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아버지가 윤길을 차디찬 시선으로 바라봤다.

"내가 분명 이맘때쯤 비가 많이 와 나가지 말고 집안에 있으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왜 대체 말을 듣지 않았느냐. 어서 말해보거라."

윤길은 아버지의 기에 눌려 말투가 딱딱해진 채로 말했다.

"말씀을 안 들어서 죄송합니다. 윤희가 집에 있는게 심심하다며 바깥에 나가자고 투정부렸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화로 인해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너가 하는 모든 말들이 핑계로 들리는 구나. 윤희를 제대로 돌봤다면 냇가에서 죽지않았을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윤희를 챙길 정신이 없었습니다. 동생을 구하려고 어떤 아이와 함께 목숨 걸고 뛰어들었습니다."

"너의 잘못을 인정하며 죄송하다고 그러면 너를 용서해주려고 그래었다, 핑계만 말하는 구나.더 이상 너를 보기 싫다."

아버지는 이 말을 하며 사랑채 중에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윤길과 어머니만 남아있었다. 윤길은 어머니를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머니, 아버지께 그렇게 잘못했나요? 제가 윤희대신 죽었어야하나요?"

"아니다. 소중한 딸을 잃어서 예민해지셨구나.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마음 속 깊숙이 담아두지 말거라."

"너무 고통스러우니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면 안되나요?"

어머니는 단호하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너도 내년이면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인이다. 이럴 때일 수록 강해져아하고 마음을 잡아야한다. 이 어미와 아비를 의지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는 길만 생각해라."

윤길은 어머니를 붙잡으려했지만 어머니는 뿌리치며 자리를 떠났다.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님이 서운하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여동생과 함께 죽어어야되는지 아니면 자신이 살아있는 것조차 잘못되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삶이 왜 이리 고통스럽고 비참해 울부짖었다. 윤길은 자신의 슬픔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위로해주었던 그 아이 품에 다시 안기고 싶어졌다. 그 후로 윤길은 과거 공부에 관심을 가지지않게 되었다. 열심히 해봤자 노력을 격려해주며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공부 대신 서책과 소설책을 통해 고통스러운 인생을 잊으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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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18 23:52 | 조회 : 82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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