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만나는 곳, 서당(4)-과거

윤길은 자기 자신이 나중에는 재앙으로 불리우게 된다는 소리에 충격을 받아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무당이 인기척도 없이 윤길에게 다가왔다. 깜짝 놀라 주저앉을 뻔 했다. 무당은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안에 계신 분들의 아드님이신가요?"

" 네, 누구이신가요?"

"여기를 운영하는 무당이옵니다."

윤길은 무당을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소문난 무당이 여기까지 행차하셨네요. 나에게 한 예언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살아남지 못할 거요. 두고 보겠어요. 과연 이루어질 지."

무당은 하늘을 높이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한 예언들은 모두 하늘의 신들이 제게 알려준 것입니다. 절대로 틀린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는게 오히려 좋을 것입니다."

"나와 이것으로 내기하죠. 내가 이기면 어머니의 증표를 돌려받을 거예요. 자네가 이기면 원하는 것은 뭐든 지 들어주겠네요."

"도련님만 손해보실 것입니다. 후회 안하십니까?"

윤길은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내 대장부라면 한 두마디한다는 것은 아니죠. 내기하죠."

"좋습니다. 그 의견 받아들이겠습니다."

무당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윤길은 무당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자 나무위로 올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부모님께 혼날 때면 나무 위로 올라가는 버릇이 있었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살락살락하는 소리가 마음을 진정시켜주었고 향긋한 향내가 보듬어주었다. 무당의 앞이라 더욱 배짱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솔직히 무서웠다. 겁을 먹고 두려움에 떤다는 것을 무당에게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럴 때 일수록 무당을 똑바로 보려고 했다.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운명을 마음대로 주무르는게 너무 싫었지만 인생이 조금이라도 살만하게 해달라고 빌고 싶어졌다. 인생을 잘 살게 될거라는 믿음이 산산조각 부서져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파랑색의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아이가 나타났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슬프게 울고 있어?"

윤길은 혼자 생각에 잠겨 울고 싶었지만 방해를 하는 아이에게 짜증이 났다.

"신경 끄고 갈길이나 가. 어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란 말야."

"위로해주고 싶어. 마음이 아픈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기분이 조금 나아진대. 말해서 풀렸으면 좋겠어
."

"내버려두라고! 나하고 관련없으면서 대체 왜그래."

"아무도 방해 안해. 말 안하고 다 울 때까지 기다려줄게."

그 말대로 윤길을 기다려주었다. 나무 밑으로 내려왔을 때 남자아이는 "너무 걱정하지마. 지금 이렇게 힘들어도 다 괜찮아질거야."라며 윤길을 안아주었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랐지만 따스한 속삭임에 얼었던 마음이 녹아졌다. 아이는 어디론가로 사라졌고 모습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두루마기를 입은 소년과 나중에라도 재회하고 싶어졌다. 그 바램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긴 시간 끝에 부모님이 나오셨는데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윤길은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티를 안내려고 그랬다. 부모님의 힘없는 걸음걸이를 지켜보고 있던 윤길은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었다.

*

회상이 끝나자 윤길은 호롱불을 껐다. 캄캄한 어둠이 주위를 둘러쌌다. 예전에는 소년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지금에서야 그 아이가 이병훈이라는 알게 되었다 이병훈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 같았다. 기억 못해도 괜찮았다. 두 사람의 기억중 한사람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한편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언젠가는 병훈에게 우리는 벚꽃이 폈을 때 정자에서 처음 만난게 아니며 과거에도 만난 적이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지금도 병훈이 너무나도 보고 싶고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도 항상 그리웠다.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하며 너밖에 없다는 달콤한 소리를 속삭여주고 싶었다. 이내 그런 마음을 접으려 했다. 병훈이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멸어린 시선을 같이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며 곤란에 빠지게 하고 싶지않았다. 자신과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눈물이 나 이불을 덮고 흐느껴 울었다. 어느 순간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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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20 22:55 | 조회 : 76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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