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만나는곳, 서당(2)

병훈은 정자에서 일어나 주막을 향해 걸어갔다. 좋아하는 자신의 진심을 몰라준다는게 속상해졌다. 술로 통해 윤길을 조금이라도 잊어버리고 싶었다. 주모에게 막걸리 한되를 달라고 했다. 술병을 집어 잔에 따라 마시지 않은 채 병 나발을 불었다. 주모는 안주와 함께 마시라며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술이 몸 속으로 들어가자 마음이 즐거워져 노래자락을 흥얼거렸다. 계속 마셔대자 술병들은 점점 늘어났다. 그때 서당에서 같이 배우는 양반 자제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이병훈을 보자 "귀한 도련님께서 여기는 어인 일로 행차하셨소?"라며 놀려대기 시작했다. 이병훈을 본체만체 술만 기울여서 먹을 뿐이었다. 양반 자제 중 한명이 이병훈의 손에서 술잔을 낚아채어 바닥에 던졌다. 술잔이 바닥에거 쨍그랑 소리가 나며 깨졌다. 이병훈은 그 일이 없다는 듯 주모를 불러 다른 술잔을 내오라고 했다. 양반들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져 술병을 빼앗아 바닥에 부었다. 병훈은 그들을 상대로 호통을 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양반이라는 자가 이런 행위를 하면 부끄럽지 않소? 자네들은 지금 양반이라는 이름을 먹칠하는 거요. 서민들이 우리를 보고 뭐라 하겠소? 양반이라는 자가 이리도 막돼먹고 예의없게 구는데 서민들이 무엇을 배우겠소?"

그들은 아무말 못한체 가만히 서 있었다. 이병훈은 자리에 일어나 깨진 술잔과 다른 값들을 치루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장돌빼기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토끼의 털로 만든 붓, 사슴의 가죽으로 만든 붓 등을 파는 붓장사꾼과 알록달록한 노래개를 파는 장똘배기가 있었다. 병훈은 시장이 자기와 상관없다는 듯이 지나가려는 찰나 부채파는 좌판이 눈길을 끌었다. 바람에 벚꽃나무가 휘날리는 부채에 손길이 갔다. 벚꽃나무를 보니 윤길과 처음으로 만났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값을 치른 뒤 윤길을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집에 도착해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은 펴져 있었고 그런 마음을 진정하려 잠에 빠져들려고 노력했다. 정신은 더욱 더 말똥해지고 자신을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도포를 걸치며 보름달이 띈 시장 골목을 술기운에 비틀거리며 배회하였다. 어느 순간 서당 쪽으로 향했다. 정자 쪽에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자세히 보니 윤길이 서책을 읽고 있었다. 달과 미세한 등잔이 어울러진 모습이 신비하고 고요해보였다. 그 고요함 속에 병훈은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바닥에 떨어져있던 나뭇가지를 밟고 말았다. 윤길은 책에 눈길을 돌려 안보이는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 누구시오? 정체를 밝히시구러."

병훈은 웃음을 띠며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

"나요. 늦은 시간까지 여기서 뭐하는 거오?"

"잠이 안와서 서책을 읽는다오. 여긴 어인 일로 찾아왔소? 자세히 보니 술이 거하게 취한 거 같소만 빨리 집에나 가소. 그 상태로 있다가는 술 기운이 올라와 고생스럽겠소."

"괜찮소. 방금 한 말은 나를 걱정해주는 거요? 걱정해주다니 감동받았소. 그대가 있는 것만으로 힘이 나는 구려."

윤길은 자신의 붉어지는 얼굴을 숨기려 했으나 병훈이 제지했다.

"실 없는 소리 마소. 같은 곳에 다니는 동기로서 걱정하는게 당연하지 않소."

병훈은 윤길을 뚫어지게 보며 윤길의 손을 잡았다.

"정말 나에게 학우 이상의 감정이 없는 것이오? 나는 그대를 보면 심장이 이리도 아프게 뛰는 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는 구려."


"여인에게 품어야 될 것을 어찌 사내에게 품는 단 말이오. 하늘의 이치에도 맞지 않소. 하늘에서 남자는 여자와 짝을 이루는 게 맞소. 헛된 생각을 버리시오. 나는 이만 가겠소."

윤길이 가고 이병훈이 쓸쓸히 정자를 지켰다. 그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떨어졌다. 연모하는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가버렸지만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윤길이가 이병훈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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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04 07:47 | 조회 : 82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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