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만나는 곳, 서당(1)

바람이 살랑이는 봄날에 윤길은 서당에 있는 정자 위에서 책을 읽으려 했다. 그때 바다처럼 진한 푸른 색의 도포를 입은 남자아이가 나타났다. 윤길은 그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남자어이는 윤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응시했다. 정자와 가까이 있던 벚꽃잎이 사분사분 흘러내렸다. 몇 초 사이로 둘 사이에서 긴장감이 흘렀다. 윤길이 말을 걸러던 찰나 남자아이는 사라졌다. 꿈인 듯 눈을 깜박거렸다. 윤길이의 머릿속에서 이름을 모르는 남자아이가 인상깊게 남아있었다. 벚꽃잋이 흘러내리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때 그 장소로 돌아가고 마음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시 그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은 10년 후 였다. 어렸을 때와 똑같이 파랑색 도포를 입고 입었으나 얼굴 생김새는 달라지지않았다.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심장에서 방망이로 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서당에서 수업이 시작되자 사내들은 윤길과 멀리 떨어져서 앉아있었다. 스승님은 누군가 소개시켜준다면서 바깥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그 사람은 예전에 만났던 아이였고 이름은 이병훈이었다. 사내들에 비해 윤길은 너무나도 쓸쓸하고 외로워보였다. 간단한 소개를 마친 후 이병훈은 사내들이 많은 자리로 갔다. 사내들은 짓궂게 이병훈에게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여기는 무슨 일로 왔소."

"마음에 둔 여인이라도 품으려고 왔나? 딴데 알아보소. 자네같은 사내들은 좋아하지않소."

"오히려 사내들에게 인기가 좋겠구려. 구석진 곳에 있는 윤길도 넘어갈 것이오."

이병훈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여기눈 시답지 않은 것으로 트집을 잡는 구려. 하하하. 자네들의 그런 소리들이 나의 외모를 부러워해 시샘하는 것처럼 들릴 뿐이오. 내가 여기로 온 이우도 윤길이라는 사내를 만날려고 왔소."

사내들은 놀란 얼굴을 하며 말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자신의 여동생을 죽음까지 몰고 간 녀석이오. 우리마을 사람들릉 저녀석을 재수없다고 여기고 혐오한다오."

"사건의 진실을 모르지 않소. 자네가 직접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는 가?"

"저자는 언젠가 우리 마을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오. 유능한 무당이 그리 예언했소. 무당이 예언한 예언들은 모두 이루어졌구려. 죽음을 예언한 자에게 산다고 한 자는 꼭 살아있소. 이래도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이와 함께 하고 싶은가?"

이병훈은 노기가 띈 눈으로 책상을 쾅쾅쳤다.
"그딴 미신이 무슨 상관이오. 여기 사람들은 미신 하나 때문에 겁먹은 사슴같구려. 그 무당은 신도 아닌 인간이오. 내 운명을 남이 점치는 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잖소."

서당에서의 일과가 끝나자 윤길은 이병훈을 처음으로 만났던 그 장소로 불러냈다. 정자로 올라가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끝내 윤길이 입을 열었다

"괜히 나와 엮이지 마소. 그대만 오히려 힘들어질뿐이오."

"괜찮소. 언제 한번 여기서 자네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소. 벚꽃잎이 흐드러지게 휘날렸을 때 흰 비단옷을 걸친 남자아이가 있었소. 그 남자아이는 계집아이같이 얼굴이 고왔소. 하지만 책을 탐닉하는 눈빛에 마음을 뺏겨 반하고 말았소."

윤길은 아무런 표정을 지으지 않은 채 말했다.

"그 아이와 나는 다른 사람이오. 여기서 말고 다른 곳에서 찾아보구려. 더 이상 한 말이 없으면 그만 일어나겠소."

병훈은 일어나 윤길의 손목을 잡아 앉히려 했다. 윤길은 손길을 뿌리치면서 밖으로 나갔다. 하염없이 떠나는 등을 고요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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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2-28 20:53 | 조회 : 1,007 목록
작가의 말
기향

조선시대 배경이라 말투가 이상한 점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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