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루나시아 스쿨 합격

1장-루나시아 스쿨 합격


뜨겁게 내리 쬐는 햇살과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땀방울들은 귀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었다. 본디 귀족이란, 휘황찬란한 저택에서 시종들의 대접을 받으며 우아하게 티타임을 즐기는 자들이 아니던가. 그런 귀족들이 지금 굳게 닫혀 있는 거대한 문 앞에 모여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바로 루나시아 스쿨의 합격 통보.

원래 드래곤 테이머 양성 스쿨은 신분 상관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타의 여러 테이머 양성 스쿨의 경우, 학생들의 대부분이 귀족이거나 그의 자제들인 것을 고려해 그들의 가문으로 합격과 불합격의 통보서를 전달했다. 당연히 가문이 없는 평민들은 그들이 직접 받으러 와야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루나시아 스쿨은 귀족이든 평민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이 ‘통보서’ 하나만을 받기 위해 루나시아로 와야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대로 귀족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곧 루나시아 스쿨의 권력에 조금씩 밀려 잊혀지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루나시아에 입학을 신청하면 통보서를 직접 받으러 오는 것은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통보서를 받기 위해선 최소 3시간씩은 기다려야 하는 것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좋다는건 절대로 아니었다. 매 년 루나시아 측에서는 통보서 발급 시간에 늦어왔었다 고의인지, 아니면 통보서를 나눠줄 시간조차 없을만큼 바쁜건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말없이 선자에 투표를 던지고 있다. 지금도 그들은 이 땡볕에서 4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하인들과 시종들은 그들에게 시원한 음료를 갖다 바쳤고 부채를 부쳤다. 귀족들의 옆에는 하나같이 그들의 드래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간은 매 해마다 바뀌었다. 루나시아의 지각에 적응이 된 사람들은 원래 통보 시간에 2~3시간정도 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루나시아는 오히려 3시간을 늘려버리는 행태를 보였다. 최고 기록이 8시간이라는 것 같다. 현재 이 귀족들은 4시간의 기다림을 고수하는 중 이었다.

“젠장!!”

너무 더운 나머지 지쳐서 말 할 힘도 없는 귀족들은. 정확히는 귀족의 영애들은 한 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 사나운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그는 칠흑같은 흑발에 흑요석마냥 빛나고 몽롱한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꽤 큰 키에 넓은 어깨. 길쭉한 다리의 소유자였다.

그는 멈출 줄을 모르는 땀을 닦으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 모습마저 멋있게 보였는지 그가 무슨 행동을 할 때마다 어머 라던가 아 라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영애들의 시선 절반은 검은 머리의 사내가 아닌 바로 옆에서 땀조차 흘리지 않고 묵묵히 서있는 또 다른 미남을 향하고 있었다. 이 남자 또한 은발에 은안으로 차가운 기류를 풍기는 일명. 냉미남이었다.

옆에 있는 흑발의 사내가 까칠한 느낌의 나쁜 남자라면 이 남자는 분위기는 차가워도 자기 여자한테만큼은 일부러 져줄 것 같은 그런 남자였다. 사방에서 찔러오는 따가운 시선에 둘 모두 불편했는지 미간에 주름이 진다. 그런 모습도 잘생겼다며 조용히 서로 이야기를 하지만 곧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그녀들이다. 아마 그녀들 모두 알고 있는거겠지.

“.....내가 다시 이 루나시아에서 이딴 짓을 하면 드래곤이 아니다. 드래곤도 체면이 있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너 이전 테이머한테도 그 말 했지?”
“닥쳐.”
“너나 많이 닥쳐라, 시란.”

그랬다. 그들의 말대로 시란이라 불리는 흑발의 남성과 은발의 남성은 드래곤이었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생활하는 드래곤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특유의 드래곤의 기운이 있지만 도시에 돌아다니는 드래곤들은 대부분 ‘아룬’ 이고, 가끔가다 ‘슈리’가 보이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아룬급의 드래곤들은 인간으로 변하지 못한다.

가장 낮은 급의 드래곤인만큼 크기도 작고 공격력도 떨어지며 인간으로 변신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귀족들은 절대 아룬을 자신의 드래곤으로 삼지 않는다.

드래곤 테이머 양성 스쿨이 아무리 넓고 아룬급이 비교적 작다지만 인간으로 변신 할 수 없는 이상 그들이 생활 할 수 있는 장소가 극히 한정되기 때문이다. 공격력도 현저히 떨어져서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황실과 왕국에서도 아룬급의 드래곤은 전쟁에 잘 참전시키지 않는다.

그렇게 평소 쉽게 접할 수 있는 드래곤은 아룬급 정도가 최선인 보통 사람들은 인간의 형태인 드래곤들을 쉽사리 알아채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드래곤 테이머에겐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그들은 평소에도 자신의 드래곤과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기운에 적응을 한다. 그러니 알아채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루나시아 앞의 사람들은 모두 드래곤 테이머였다.
귀족의 영애들은 안타까움에 눈물까지 흘렸다.

“야 개털머리. 내가 왜 이 지긋지긋한 루나시아 앞에서 네 시간째 버티고 있어야 하는지 설명해 봐.”
“일찍이 알고는 있었지만 머리가 상당히 나쁘군. 아까 엘이 말한 걸 잊은건가?”
“그 자식이 말한거라고는 합격 여부 뿐이잖아!!”
“그래 그거다. 멍청하긴.”
“이런 미친. 한판 떠봐?”

소리를 지르며 누군가의 욕을 열렬히 하던 시란은 휘스트의 무감정한 시비에 열을 냈다. 바짝 붙어서 그의 눈을 노려보았지만 시란은 그를 조금 올려다 봐야 했다.

절대 시란이 작다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형의 키는 본체의 크기에 비례하지만 한계치는 모두 달랐다. 소형 드래곤이 사람의 평균 키보다 조금 클 수도 있고 대형 드래곤이 오히려 그보다 더 작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란의 키는 185cm였고 휘스트의 키는 188cm였다. 본체도 시란이 더 작았던 터라 그는 항상 휘스트에게 신체 크기에 대한 질투심을 느꼈다. 자기는 죽어도 아니라고 하지만 말이다.

휘스트는 무표정을 고수하다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몇 번 털렸지 아마?”
“하, 겨우 한번 더 이긴거 갖고 으스대긴. 그 때는 내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거든? 제대로 상대한거 아니었거든?”
“그럼 한번 더 뜨던... 잠깐.”

말을 이어가던 휘스트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자 시란은 오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왜. 갑자기 쫄리냐?”
“조용히 하고 저거나 봐라. 집에 가자.”

휘스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루나시아의 거대한 출입문을 둘러싸고 있던 귀족들이 크게 웅성거렸다.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하얗고 긴 망토를 두른 남자가 두루마리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그가 단상에 서자 입학자들은 하나 둘 그를 발견하며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푸른 장발의 남성을 안경을 손끝으로 살짝 올리고는 두루마리를 펼쳤다. 두루마리에는 입학 시험 통과자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모두 합쳐 백 여명이었다.

“흠,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태연하게 사과하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순간 울컥했지만 어쨌든 지금 나오긴 나왔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불같이 노려볼 뿐 이었다. 흰 망토를 살짝 발로 치운 남성은 마법의 도움을 받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까지 목소리가 전달 될 수 있게끔 했다.

“우선 수석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옆 사람이 침을 꼴깍이는 소리마저 들릴만큼 조용해졌다.

“수석 엘피스 세란.”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세란? 세란 가문이 어디야?”
“어느 듣보잡 가문인데 수석을 차지해?”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 친우분이 브란델 세란 자작이라던데.”
“뭐? 자작?”

어디 듣도보도 못한 가문이 감히 수석을 차지하냐며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귀족도 있었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귀족도 있었다. 엘피스 세란에게 은근한 궁금증과 호감을 보이는 귀족들도 있었다.

그리고 시란과 휘스트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는 인파를 뚫고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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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2-11 22:04 | 조회 : 479 목록
작가의 말
nic12326111

자유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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