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타고 날아서 (2)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도록 해요. 아니, 어쩌면 당분간이 아닐 수도 있어요."

"당분간이라니요, 다시 저의 세계로 돌아가는 건 안된다는 말인가요?"

"그런 쪽이죠, 때가 되면 인간은 운명을 마주하는 법. 당신도 때가 되면 세계로 귀환하는 방법을 깨닫게 될것입니다.

그런말을 하곤 가버리는 저 사람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데려다 준 방을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온통 하얀색이었다. 정신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창문사이로 깃든 햇빛에 눈을 한번 찡그리곤 창문 가까이에 섰다. 내가 살던 세계와 다를게 없었다. 푸르른 숲, 뛰노는 아이들. 맑은 햇살과 적당히 끼여진 구름 모두. 이곳이 내가 살던 세계의 위인지 아래인지도 모르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어쩌면 인간의 욕심으로 더럽혀진 나의 세계보단 나을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이라니. 정말....어, 이게 뭐지?"

자그마한 책이었다. 줄로 꽁꽁 묶여있는 책에 읽어보기엔 글렀다 생각하며 줄을 한번 풀수 있으련지 하고 만져본 그 순간,

시잉-

줄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함부로 건드렸다고 혼나고 추방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넓고 넓은 천상세계에 책 하나 잃어버린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책 제목은 Dreamer이네. 여긴 정말 꿈을 관리하는 곳인가 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책을 한장 슥 하고 넘겼다. 목차는 많았다. 그중 눈에 들어오는 건 다름아닌 '드리머, 그리고 귀환' 이라는 대목이었다. 그래, 이거라면, 분명 지상세계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야. 차락- 촤라락- 책장을 계속 넘겨짚으며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던 그때,

'똑똑똑-'

"..누, 누구세요?"

"접니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당황한 마음에 책을 소매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쏙 들어가는 것이 들킬일은 없을 것 같았다.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그녀에 당황한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책은, 아니 책을 숨기는 것은, 못봤을거야. 그녀가 문을 열기도 전, 숨겼으니까..

"무언가 당황해 하고 있는 듯 합니다만,"

"..아니에요. 무슨일로 오신거죠?"

"잘 있나 확인 차 들러보았습니다. 저에겐 더군다나 소중하신 드리머니까요."

"..천상세계에서 인간은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지 않나요? 지상세계에서의 '소설'에선 신에게 있어 인간은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는데."

"틀린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곳은 '신'이라는 존재를 뛰어 넘은 곳입니다. 인간들의 꿈은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은 '신'을 뛰어넘을 만큼의 힘이죠. 인간 존재만으론 하찮을 지 몰라도 인간이 가진 힘은, 누구보다 소중합니다."

"...겉보단 속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요, 인간의 몸체는 필요없고 안에 잠재된 힘만이 필요하단 건가요."

"어느쪽으로 보는 것은 여길 관리하는 신들의 마음이겠지만, 저는 후자보단 전자가 더 낫군요."

"..신이요?"

"'인간들의 힘이 신을 뛰어넘었다 해도 그 힘을 인간들 자신들이 관리하는 것은 꽤나 어렵습니다. 인간은 그만한 자제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요."

"...아"

"그렇기때문에...'신'이라고 칭하는 또 다른 신들이 관리하는 겁니다, 인간들의 꿈을. 차차 알게 될거에요."

"..알겠습니다, 쉬고 싶으니 나가주세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구둣소리를 내며 나가는 백발의 여인이었다. 저 여자, 분명 어디서 많이 본 것같은데, 그건 착각이라는 생각밖에 들었다. 아 맞다, 책. 다시 책을 펼쳐 귀환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드리머, 그리고 귀환.'

다른 글들에 비해 정말 한쪽의 반도 안되는 분량이었다. 그렇게도 귀환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들이 많았던 건가?

"꿈으로 천상세계에 온 것은, 초자연적인 힘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 책으로 세 번,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책을 사용해서 돌아갈 경우에는, 지상세계에서의 악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이게 끝이라고? 책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도 나오지 않았다. 책을 씹어 먹으라는 거야 뭐야. 책을 입에 갖다 대려는 순간, 잡고 있던 페이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나의 단잠을 방해한것은?'

깜짝놀라 책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뭐, 뭐야. 책에서는 아무런 표식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붉은 빛을 띄며 검은 책 하나가 붕 떠올랐을 뿐이다.

"..뭐, 뭐야 진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에 당황하는 건 인간뿐이지.'

"...당신은 누구죠?"

'나는 꿈의 정령. 책에 깃든 정령일 뿐이다. 혼체가 없어 이렇게 있을 뿐이나, 나의 힘은 온전히 내게 있지.'

"몸이 없어 책에 깃들어 있다는 소리군요."

'맞다, 너는 인간이군. 책으로 돌아가고 싶나?'

"책으로 돌아가는 기회는 세 번이라고 들었습니다. 책으로 돌아간 뒤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기회를 많이 주는 이유가 무엇이죠?"

'인간은 역시 어리석군.'

"그게 무슨 말이죠?"

'인간의 꿈은 거대한 힘을 발휘해. 그게 '신'을 뛰어넘을 정도로. 그리고 그 꿈은 인간이 자제 할 수 없어. 꾸고 싶지 않다고 안 꿀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자네가 말했던 그 책으로 귀한 하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 변환될수 없어.'

꿈의 정령은 한번 붉은 빛을 내뿜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쉽게 말하지. 자네가 이 책으로 돌아간 그날, 그리고 그다음날에도 자네는 꿈이란걸 꾸게 되지. 그리고 꿈을 꿀떄마다 이곳으로 올테고. 그때마다 책을 이용해서 돌아갈 것인가?'

"그게 무슨말이죠, 꿈을 꿀대마다 이곳으로 온다니. 그동안 꿈을 꿔 왔지만 이 곳으로 온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럼 넌 이곳으로 온 오늘 부터 '드리머'가 된것이다. 드리머가 된이상 꿈을 꾸면 이곳으로 오게되지.'

"..드리머가 되는건 무작위로 날짜가 정해져 오는 건가요?"

'인간에겐 꿈도 중요하지만 운명도 중요해. 그건 한층 밑에서 관리하지만. 그건 운명이야. 때가 되면 다가오는 것이다. 무작위란건 세상에 없어. 모든것이 운명이고 그것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꿈의 정령은 더 이상 할말이 없으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명심하라고 했다. 내가 책을 써서 귀환한다고 해도, 지상세계에서의 행복한일은 없을 거라고. 기회는 세번이라고도. 그것을 명심하고도 돌아가겠다는 결심이 서냐고도 물어보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 지상세계로 돌아가도 난 행복한 삶을 산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아니, 적어도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삶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쪽이 됬든 이런 이상한, 조잡한 세계보단 지상세계로 돌아가는게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갑니다, 지상세계로. 드리머, 그리고 귀환."

밑에 결계가 쳐지면서 몽환한 빛이 뿜어져나왔다. 내 주위를 둘러쌌다. 눈을 감으려고 한 찰나, 누군가 내 방 문을 열고 급히 들어오는 바람에 감지는 못했다.

"...당신..!!"

"....저는, 돌아갈거에요."

"그 방법을 어떻게..?! 아니, 당신은 아직 돌아가서는..!!"

백발의 그 여자였다. 그녀는 내가 돌아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굳은 결심을 바꿀수는 없었다. 이미 결계가 쳐진 상태였고, 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알고 있다. 꿈을 꾸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거란걸. 그래, 차라리 그럴거라면, 인간세계의 정리라도 하고 오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
.
.





그리고 그렇게 꿈의 정령이 깃든 책과 함께, 눈을 떠보니 지상세계의 내 침대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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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2-13 23:43 | 조회 : 724 목록
작가의 말
한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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