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오늘은 꼭 누군가와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 그리고 내일 모래 사이에 난 '죽은 아이'가 될테니까. 오늘 만큼은, 어떻게든, 말을 걸어서 빠트려야 한다.
그게 내 절친인 서라나 세은이 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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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문을 열고 들어서봤자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볼뿐 아무도 내게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그래, 다른 아이들이 땅구멍에 빠졌을때도 난, 이렇게 인사하지 않았으니까, 바라는 것도 없다. 그런데 내게 남아있는 의문은, 땅구멍에 빠져있던 서라 대신에, 도대체 왜, 갑자기 내가 이렇게 여기에 빠지게 된것이냐는, 의문이었다.
누굴까, 서라? 세은이? 그래, 세은이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와 서라가 몰래 연락을 주고 받는 것을 아는건 어쩌면 세은이 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싫었다. 이렇게 내 가까운 사람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이 놀이를 관두고 싶었다. 그만 하고 싶다고 말하고, 안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중독 된 우리반, 그리고 친구들이 '죽었을 때'의 그 재미에 이미 중독되어 버린것이다. 이 놀이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열어서는 안될 상자였다. 해서는 안될, 그런 놀이였다. 나만 빠지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뿐이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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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무와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한층 밝으신 목소리로 종례를 하셨지만, 난 그렇게 밝을 수 없었다. 만약 내일도,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으면, 김도혜처럼, 박아영처럼, 전새림처럼 될것이다. 그렇게 '죽은 아이'가 될것이다.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 놀이를 그만하고 싶다.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왜 했던 건지 모르겠다.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끝낸 그 놀이를 친구들의 눈치에 휩싸여 계속 하고 있다. 왜 시작한거야, 나. 왜 하겠다고 한거야. 왜, 친구들을 그렇게 밀어서 빠트린거야, 진짜 나란 사람.
이렇게 후회 해봤자 되는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땅을 치며 후회하는 내가 싫다. 땅구멍에서 나가고 싶다.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다. 말해서도 안된다. 내가 말했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정말 우리반에서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이런 놀이가 아닌, 정말 왕따 말이다.
아니 근데, 지금 이 놀이랑
왕따랑 다를게 뭐야?
별반 다를 거 없는데, 말해봤자 더 크게 일어날 뿐일꺼야. 내가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내가 사라지면 될일 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