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수정이와 선생님

#9. 수정이와 선생님



그 뒤로 페르는 계속 날 따라다녔다.

학교에선 엄청 따라다녀서 여자애들의 따가운 시선과, 페르에게 쏠리는 남자애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었다.

아마 학교에선 날 모르는 사람은 없을거라 생각한다.


"저, 저기. 태민아?"


페르는 여기서만큼은 인간.

난 그의 뜻을 존중해줘야 한다.

페르도 거절한 내 뜻을 존중해줬으니까. 결과적으로 포기하진 않았지만.


"응?"

"민혜랑 수정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자리 좀 비켜줘."


새로 사귄 친구, 수정이.

친구끼리와의 비밀 공유는 서로의 우정을 돈독하게 하는 법.

난 새 친구들과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다 들려. 넌 특히. 난 언제나 너에게 신경이 쏠려있으니까."


싸아악-

내 머리의 핏기 가시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내게 항상 신경이 쏠려있단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내 사생활이 침해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줄이야.



―― #8. 수정이와 선생님 ――



우리 셋은 옥상으로 왔다.

왜냐고? 예전 페르의 말대로 옥상만큼 얘기하기 좋은 데가 없는데다가, 경비 아저씨도 포기했는지 옥상에 자물쇠가 없었지 때문이다.

자물쇠가 잠겨있어도 페르에게 풀어, 아니 부셔달라고 했을텐데. 상관은 없지.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온 질문.


"채현아. 너 태민이랑 무슨 사이야?"


수정이가 페르가 저러는 건 처음 보는지 궁금해하며 물었다.

하긴, 나도 신기하다.

강한 뱀파이어가 부탁 들어달라고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닐 줄이야.

난 지금 그걸 불편해하는게 아니라, 즐기고 있으니까.

은근 재밌어서, 차마 대답이 안 나온다.

'싫다'라고.

그와 난 남이고, 도와줘야할 이유도 없다.


"채현아?"


날 부르는 수정이의 목소리에 정신이 그제야 들었다.


"어, 어?"

"무슨 사이냐니까?"

"그냥 아는사이야. 친한 것 빼고 특별한 건 없어."

"그렇구나..."


'이태민'이란 주제를 가진 대화는 끝이 날 줄을 몰랐다.

수정이는 나에게 계속 페르와 나에 대해 물었고, 난 그저 얼버무렸다.


"야, 야. 왜 얘기가 거기로 빠져?"


민혜가 중재해주지 않았다면, 얘기는 끝없이 지속되었을 것이다.


"자. 그럼 민혜 너부터!"

"또박또박 말해주지. 나, 실은 남친 있더?"

"뭐?"


민혜 같은 불같은 성격에게도 그게 취향이 별난 남자가 있은 줄이야.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민혜는 내 표정을 보곤 약간 쑥스러워 하며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삼 개월....됬어. 우리 반에 그 태민이랑 친하게 지내는 주안이."

"그, 그래?"


페르랑 친하게 지내면 정체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는데.

그래도, 페르가 친하게 지내는 걸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자. 이젠 채현이 네가 털어!"


수정이는 왜 비밀을 꼭 나부터 불라 하는거야! 자기가 먼저 하기 싫으니까 그러는거지!!


"왜 나부터야!!"

"어차피 다 불거야. 어차피 불거 순순히 대답해."

"....그래."


포기다, 포기.


"정확히 궁금한게 뭔데? 딱 세 개만."

"썸 타는 남자 있어?"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동시에 질문하는 내 친구들.

이걸 일심동체라 하는건가?

보나마나 내 연애담을 듣고 싶었겠지만, 난 너희의 기대에 부응할 줄 몰라서.


"없어."

"에이....."


정말 아쉬워보이는구나.


"그럼..... 태민이는 뭐라고 느끼고 있어?"


수정아. 난 네가 이렇게 페르에게 관심이 많은지 몰랐다.


"그냥.....아는 애?"


그는 그저 '아는 애'다. 친구도 아니고, 연인 사이는 더더욱 아닌.


"그래? 그럼 전학은 왜 왔어?"


가장 꺼린 질문. 그래, 이 질문이 안 나올리가 없지.


"사고가....있었어."

"아....미안."


민혜는 내 어두워진 표정을 보고 미안해했다.


"자, 이제 수정이!"


난 애써 어두워진 분위기를 밝히려고 밝게 말했다.

게다가, 이렇게 얼렁뚱땅 수정이가 비밀 털기 말하는거 안 하면 어떡해.


"어, 어?"

"불어, 빨리!"

"나.....사귀는 사람....있어."


쿵-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다. 나 빼고 다 남친이 있다니!!


"누, 누군데?"


아니야. 나쁜 사람이면 없느니만 못해. 이런 생각하는 내가 나빠 보이지만 정당하고 당연한거야.

당연히 남친있는 애가 부럽지!


"우리 반....담임 선생님."


.......어?

휙-

누군가 날 뒤에서 가로채가더니 분노에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너......그 ㄴ....아니, 선생님에 대해 아는게 있냐?"


.....페르. 왜, 왜 갑자기... 나타나가지고는...

게다가 애들이 오해한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너와 나의 관계를 계속 물어보겠니?


"아까부터 들렸어. 사제지간 사이에 사랑이라....거짓되지 않았을까?"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이는 페르. 아, 괜히 간지럽다.


"......아직은 어떨지 몰라. 좀더 지켜보고....그렇다고 수정이가 아파하는걸 원하는건 아니야."

"....그럼?"

"지켜보고,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면 말려야지. 넌 그 뱀파이어랑 얘기해봐."


휙-!

난 말을 끝내자마자 그를 밀쳐냈다.

온힘을 다해 밀어냈으나 그리 멀리 나가진 않았다.

뭐, 꿈쩍도 안한거에 비하면 나은가.


"태, 태민이는 왜?"

"아.... 옥상에 바람 좀 쐬게... 그런데 존경스런 담임 선생님과 사귄다니, 힘내봐."


난 보았다. '존경스런 담임 선생님'이라 할때 그의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페르는 그 말만 한채 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 태민아...!"


그의 발을 멈춘 수정이의 목소리.


"선생님이...채현이한테 너에대해 물어보시라던데, 혹시 무슨 일 있어...?"

"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어."


그리고 난 예상한다.

그 뱀파이어는 오늘 죽지 않으면 엄청 다행이다.

....말려야...하나...

그래도 수정이 남친인데.

하지만, 그의 대답에 따라 내 마음은 바뀌겠지.

0
이번 화 신고 2015-09-05 15:14 | 조회 : 1,455 목록
작가의 말
히나렌

오랜만이에요! 제가 요즘 삽화 너 보려고 그림 그리는 중이라;;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