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유성시점>

"하아, 하아."

챙겨 나온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모텔을 벗어났다.
혹여 따라 나올까봐 추위도 모른 채 집까지 뛰었다.

집에 돌아와 긴장이 풀려서 인지 다리가 후들거려 현관문에 기대어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가 주저앉았다.

"..목도리.."

이제서야 느껴지는 목의 허전함에 한숨을 쉬었다.

"하아..괜히 했나..."

집안의 정적에 몰려오는 건 후회와 계속해서 쿵쾅거리며 떨리는 몸이다.
가만히 있으니 방금 전까지 몸을 섞었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그의 손길이 나의 몸을 만지듯 오싹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무릎을 세워 몸 쪽으로 당겨 팔로 감싸서 진정 될 때까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좀 괜찮아 지는 듯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에서 무언가 흘러내리는 기분에
얼른 옷을 벗어 욕실로 들어가 구석구석 씻어냈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났다.
자꾸만 그 남자가 생각나 떨쳐버리려고 일에 더 집중했다.
3일 동안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고 일을 했고, 오늘도 평범하게 출근했다.

"안녕하세요."
"앗, 하대리님 좋은 아침입니다."
"상우씨 일찍 오셨네요."

우리 팀 막내인 상우씨는 언제나 씩씩해서 기분 좋은 사람이다.
항상 내 부탁을 잘 들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자리에 앉아 겉옷을 벗고 있는데 옆자리의 친한 동료가 말을 걸어왔다.

"유성대리님~"
"왜..왜 그래 평소엔 붙이지도 않는 호칭 붙여가면서."
"아니~우리 유성대리님 혹시 오늘 일 좀 널널 하신가해서."
"아..급한 일은 없긴 한데..."

말하는 순간 아영이의 눈이 반짝이며 나의 손을 잡아 올려 꽉 쥔다.
무리한 부탁하기 직전의 모습에 불안감이 몰려왔다.

"오..왜, 이번엔 뭔데?"
"사실 오늘 거래처 만나러 영업부에서 두 명이 가기로 했는데.."
"했는데?"
"그 중 한 분이 펑크가 나서 혹시 도와 줄 수 있냐고 해서 된다고 했는데"
"그랬는데?"
"오늘까지 끝내야하는 일이 있었는데, 전화 끝나고 생각났지 뭐야."
"그거 영업부에 지한이가 부탁한 거지."
"아..하하..."

아영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나의 눈을 피했다.
아영이는 영업부 지한이의 부탁이면 무슨 일이든 다 들어준다.

"네가 좋아하는 거 때문에 나한테 피해주지 말라구."
"아니 그게 아니고..힘들면 서로서로 도와야지."
"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났어."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잠깐. 내가 나중에 뭐든 들어 줄게. 소원하나."
"흠~"
"그리고 우리 팀에서도 작업했던 일이라서 괜찮을 거야."

해주려고 했었지만 먼저 소원하나 들어 주기를 제안한 한 아영이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약속시간이 점심쯤이라니까, 나갔다가 바로 퇴근해, 퇴근!"
"그래도 돼?"
"괜찮아. 팀장님하고는 얘기 다 끝났어."

이미 미리 다 정해놓고 의견 묻는 척한게 가증스러워서
아까부터 계속 잡고 있던 손을 꼬집으며 놓았다.

"하대리님 오늘 외근가시는 거예요?"
"응, 그렇게 됐네."
"우리 대리님 없이 이 우중충한 사무실에서 일이라니."
"뭐가 우중충이야. 꽃같이 예쁜 내가 있잖아."
"으휴...."

두 손을 모아 꽃받침 하듯이 턱에 대고는 눈을 깜빡이는 아영이를 보곤 고개를 가로 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뭐야, 그 한숨."
"아니에요."

상우씨는 해탈했다는 듯이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보다 한참 덩치 큰 애가 한숨 쉬니 꼭 시무룩해하는 대형견 같아 의자 바퀴를 굴려 다가가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헤헤, 우리 내일 보자. 그럼 나 바로 영업부 간다."
"역시 우리 유성이는 천사야. 너뿐이야."

잔뜩 아부하며 손을 흔드는 아영이를 뒤로 한 채 그리 멀지 않은 영업부로 향했다.
지한이를 만나 미팅에 대해서 숙지 한 뒤 만나기기로 한 장소로 이동했다.

"유성선배는 끝나고 바로 퇴근이라면서요?"
"응! 넌 아니야?"
"네..전 복귀에요."

지한이는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며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근데 제가 차타고 돌아가면 선배는 집에 어떻게 가요?"
"아, 여기에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 있어."
"그거 다행이네요. 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약속장소로 향했다.

"오늘 거래처 사장님이 나오시는데 그분 엄청 젊은 분이에요."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27살인가 그래요. 저보다도 한 살이 어리다고 했으니까."
"우와 진짜 어리네."
"듣기로는 아버지 회사 중에서 자회사 하나 물려받았나 봐요."
"그래도 능력이 있으니까 사장자리 앉아 있는 거겠지."
"뭐, 오늘 만나보면 알겠죠."

먼저 도착해 거래처 사장을 기다리는 동안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듣는 중에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어디선가 본 얼굴이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늦었죠."
"아, 아닙니다. 저희도 도착한지 얼마 안됐습니다."

하고 그 사람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고, 고개를 드는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얼마 전 원나잇 했던 그 사람이다.

"일단 먼저 앉으시죠."

지한이가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고,
이 사람은 나에게 시선이 고정 된 채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씨익 웃으며 인사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임채혁 입니다."
"아, 저는 영업부의 송지한 입니다."

그 남자는 소개하며 악수를 청했고 지한이가 먼저 손을 잡으며 소개를 했다.
뒤따라 나도 인사하며 악수했다.

"아..전 마케팅부의 하유성입니다."

6
이번 화 신고 2017-11-21 19:37 | 조회 : 5,453 목록
작가의 말
반하나55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