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하을아?"

"어? 어어."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아무것도."

나는 어릴적의 기억이 없다.

내가 눈을 떴을때 난 부모없는 고아가 되어 있었고,

친척 손에 이끌려 도망치듯 내가 살던 곳을 빠져온 기억밖에는.

그리고..날 찾아와 울었던 그 남자아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따뜻한 온기가 나를 감싸왔다.

나를 내려다 보며 웃는 지웅이와 나를 보고 울었던 그 남자아이가 겹쳐보였다.

"..너.. 나 알고 있었지?"

"그게 무슨 소리야?"

지웅이가 나를 더 꽉 껴안았다.

"숨막혀..바보야."

"미안해."

하지만 지웅이는 나를 껴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지웅이가 잠에 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눈을 떴다.

"...."

나를 절대 못 들어가게 했던 작은 다락방.

그곳에서 나의 과거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웅이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으니까.

열쇠는 지웅이의 외투 속에 들어 있었다.

내가 다락방에 별 관심을 갖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따로 숨겨두지 않는 듯 했다.

열쇠로 조심조심 다락방 문을 열었다.

달칵, 하는 소리가 났고 난 몸을 굳혔다.

아직 안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락방 안은 항상 누군가 청소를 하는듯 깨끗했다.

벽에는 사진들이 가득했다. 지금의 내사진들과, 우리가 같이 찍었던 사진, 어린아이가 브이하고 있는 사진, 두 아이가 어깨 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 같이 퍼즐을 맞추는 사진..학생이 된 아이가 교복을 입고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찍은 사진.

사진속의 아이는 나와 꼭 닮아 있었다.

아니, 사진속 교복은 내가 졸업한 중학교 교복이 분명했다.

가슴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 수많은 사진 옆에는 구겨진 종이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종이를 펴보려다 손가락을 베였다.

"...아야."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져왔다.

뒤를 돌아보자 지웅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화가 났다기 보다는, 상처 받은 표정이였다.

"내가.. 들어오지 말랬잖아."

"..지웅아.. 그게 아니야."

"왜!! 왜 들어왔어!!!!"

지웅이가 내 손목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이정도로 지웅이가 흥분한건 처음이였다.

지웅이는 내 옆의 벽을 주먹으로 쳤다.

내 눈을 쳐다보고, 수차례 벽을 쳤다.

지웅이 손에선 피가 흘렀다.

"그만해!!!!!!"

"..다 봤어? 다 봤냐고!!!!!"

"그래!! 다 봤어!!! 네가 날 어릴때부터 스토킹한것까지, 전부 다!!!"

지웅이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다, 봤구나."

"왜 나한테 말 안했어!!!! 대체 왜!!!!!"

"네가 날 기억을 못하니까.. 이렇게라도 널 가지고 싶었어."

"...하. 너 그럼.. 그사람이랑 내가 사귀었던 것도.. 이미 알고 있던거야?"

"그래. 다 알고 있었어."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너.. 정말.."

"그땐 정말, 너 납치해서 같이 도망갈 생각도 했어. 근데.. 넌 정말 행복해 보이더라. 그래서 한동안 널 쫓아다니지 않았어. 난 네가 행복한게 우선이었으니까."

"...지웅아."

"그래. 그 입원실 남자애, 나 맞아. 우리 어릴때부터 엄청 친했어. 맨날 손잡고 놀이터에 놀러가고, 부모님들끼린 우리끼리 너무 잘 노니까 둘이 크면 결혼하라고도 할 정도였어. 근데.. 네가 나 기억 못하는거 보니까 그 어린 마음엔 배신감 엄청나더라."

"..."

담담한척 말하는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웅아, 우리 치료부터 하자."

지웅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휴, 손이 이게 뭐야."

"하을아. 너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 사랑하잖아."

지웅이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았다.

"..."

"너 어차피, 나 도망도 못가게 할거잖아."

지웅이는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계속 웃음이 나왔다.

"하을아, 너 손가락."

"어? 아까 베였어."

지웅이는 상자에서 밴드를 꺼내 내 손가락에 서툴게 붙였다.

자기 손이 까진건 생각 못하고, 그깟 베인것 때문에 아픈 표정을 지었다.

"벌써 세시다. 얼른 자자."

나는 웃음을 참고 지웅이에게 말했다.

"..그래."

그날 지웅이는 나를 숨을 못 쉴 정도로 꽉 껴안고 잤다. 이젠 지웅이의 비뚤어진 집착에 점차 익숙해지는 내 자신조차 무섭다.

20
이번 화 신고 2018-02-24 18:09 | 조회 : 2,664 목록
작가의 말
nic37775304

.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