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왜 말이 없어. 많이 놀랬나봐?]
"..- 유진?"
[...좋았어?]
"......"
[너 거기서는 참 많이 웃더라.]
"......"
"유진, 대답좀 해 줘요."


리타드가 부엌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간단한 생각조차도. 그건 내 원초적인 두려움이었으니까.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은 금방이라도 수화기를 떨어뜨릴 것 같았다.


[빨리 돌아와.]
"유진..?"
[니가 있을곳은 여기가 유일하잖아?]


전화가 끊겼다. 리타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앞에 다가왔다. 나는 수화기를 그대로 떨어뜨리고 리타드의 품에 안겼다. 당황스러워하는 리타드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리타드가 나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는 나를 안아들더니 부엌으로 가 식탁에 앉혔다. 맛있어보이는 요리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먹어요. 배고프다~"
"... 응.."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계속 알렉스의 말이 생각났다.


<니가 있을 곳은 여기가 유일하잖아?>


아니야, 아니야. 난 이제 거기로 안돌아가. 이젠 리타드가 있어. 리타드는 날 버리지 않아. 나는 막 씻고 들어온 리타드에게 쪼르르 달려가 안겼다. 그리고는 발 뒷꿈치를 있는힘껏 들어 그의 입에 입술을 맞추었다.


"리타드.."
"유진."
".. 넌 나 버리지 말아줘. 제발.. 나한텐 이제 너밖에 없어.."


그가 나를 안았다. 우리는 깊게 입을 맞추었다.




*




세리나는 전학을 갔지만, 난 여전히 알렉스의 옆에 붙어있었다. 물론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대우였지만. 모두들 내가 세리나와 함께 가출을 했었다고 수군거렸고, 알렉스의 무리의 사람들은 날 괴롭히기 바빴다.


"쨘~ 시원하지?"


술을 뒤집어 쓴 것 같았다. 아, 얼마없는 옷들 중에서도 그나마 입을만 한, 알렉스가 준 옷이었는데.


"... 응..."
"그럼 다 할까?"


그들에게 괴롭힘을 받으면서 배운 건, 절대 빌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른놈들과는 다르게 몇번이고 빌어대면 그게 짜증난다며 그 날은 정말 죽을 것 같이 괴롭혔으니까. 그냥 이렇게 아무런 반응 없이 하면, 그나마 반응이 없어서 싫다는 식으로 나왔으니까.


"...-적당히 해. 술 아까워."


그는 신경쓰지 않는 척 하면서 은근히 잘 막아주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알렉스를 잘 따랐다. 그가 나오라고 하면 즉각 나왔고, 뭘 하라고 하면 망설임없이 바로 하려고 했다. 덕분에 놈들은 나를 똥개라며 놀려댔지만 상관없었다. 어쩌다 신경에 거슬려 그날 처럼 그렇게 되는 것 보단 나았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알렉스가 내게 마약을 건냈다. 세리나의 경고를 생각했지만, 여기서 알렉스를 거부하면 안된다는 압박에 나는 그가 주는 마약을 먹었다.

흔들리는 시야사이로 알렉스가 보였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손을 밀었다. 눈 앞이 어지러웠고, 알렉스의 모습이 점점 나누어졌다. 이상하다, 알렉스는 분명 한명인데. 두명이 되고, 네명이 되고, 여덟명이 되고.. 그리고 그들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무의식중에 나를 가장 먼저 지배한 감정은 공포였다. 여태까지의 감정이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나는 그 손을 뿌리치기 위해 크게 손을 휘둘렀다.


"으아아-!"


얼른 도망쳐야 했다. 너무 무서웠으니까. 저 괴물에게서 도망쳐야만 했다.


"어딜 가려고.."
"싫어, 싫어, 싫어."


나는 내게 오는 무한한 공포의 나뭇가지들을 뿌리쳤다. 하지만 뿌리칠수록 그들은 점점 더 단단하게 나를 옭아매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싫어, 제발.. 여기 싫어, 놔줘... 흐윽..."
"... 싫다고..?"
"놔... 나 갈래... 으흐으.."


갑자기 눈 앞이 아찔해졌다. 마약으로 어지러웠던 것이 이제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흐려졌던 초점이 맞추어졌고, 눈 앞에는 나를 무섭게 내려다보는 알렉스가 보였다. 이상하게, 맞은 곳이 아프지는 않았다. 코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았는데.. 정말 아프지 않았다. 이상했다.


"내가 싫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내 왼팔이 잡혀있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게 잡은 것 같았다. 알렉스는 나를 데리고 침실로 올라갔다. 여전히 시야가 흐렸다. 알렉스는 나를 침대에 던지듯 놨다. 그는 나를 내리누르고는 내 위에 올라탔다.


"내가 지금부터 뭘 할 것 같아?"
"......"


결국 한대 더 맞았다. 나는 고개가 돌아간 채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알렉스의 한숨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그는 내 옷을 벗기고 여기저기 만졌다. 애무는 간단했고, 그는 곧바로 삽입했다. 첫경험이어서 그런지 많이 아팠다. 정말 아팠다. 그렇게 강간같던 내 첫 섹스는 끝을 맞이했다.




*




"...-유진."


나는 이 이야기를 리타드에게 털어놨다. 리타드의 표정이 슬퍼보였다. 리타드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왜, 왜 니가 울어.?"
".. 당신이 많이 아팠을 테니까."


나는 리타드의 얼굴에 손을 가져가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리타드는 그런 내 손을 잡았다. 세삼스레 손크기에서 차이가 났다. 그는 내 손에다 자신의 뺨을 몇번 부비적 거렸다. 꼭 강아지 같았다.


"난 당신 안버려요."
"응.."
"그러니까 가지 마요. 여기 있어."
"... 그래."


환희에 찬 입맞춤은 모든 걱정을 씻어내릴 것 같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태초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서로를 갈구하고 있었다. 얼마 뒤, 리타드는 병원으로 갔다. 나와 함께있기 위해 모든 휴가를 다 써버려서 이제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자 그가 자신이 원했던 것이니 상관없다고 말했다.

나는 나가기 전의 그를 꼭 껴안았다. 애틋한 감정이 타고 올라왔고, 짧은 입맞춤을 끝으로 그는 출근했다. 리타드의 말을 따라 나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혹시라도 나가면 알렉스가 날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갈 것 같았다.

이곳은 정말 좋았다. 모든 곳에서 리타드의 채취가 느껴졌다. 그것에 나는 안정을 느꼈다. 바깥에서는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나는 나른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사이로 이상한게 보였다.

저건 알렉스였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는 위를 올려다보았고, 그의 시선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향했다. 알렉스는 손으로 총모양을 만들더니 노는 아이들에게 쏘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는 그의 입모양이 보였다.


'내려와'


여기서 안내려가면 저 아이들을 다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또, 나때문에, 내가, 아이들이 죽는다.


"아, 아.."


잊고 있었던, 잊어버리고 싶었던 공포가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재빨리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느낀 한기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적어도 리타드에게는 말을 해야만했다. 나는 펜과 종이를 찾아 급하게 적었다.


'알렉스가 날 찾아왔어. 내가 가지 않으면 모두를 죽인데. 미안해.'


나는 잠시 망설이다 글을 덧붙였다.


'사랑해.'


싱크대위에 편지를 두고 나는 급하게 내려갔다. 알렉스에게로 달려가자 알렉스가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서늘하게 말했다.


"이렇게 돌아올거면서 왜 도망친거지?"
"......"
"결국 너한텐 나밖에 안남아."
"......"
"명심해."


리타드가 보고싶었다.

2
이번 화 신고 2017-09-23 23:56 | 조회 : 2,563 목록
작가의 말
류화령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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