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질투


버스로 5분 걸어서 15분, 학교에서 학원까지 가는 시간이 었다.
야자가 끝나는 늦은 시간이더라도 학원이 위치한 곳은 번화가와 가까워 어둡고 위험하지 않았다.

위험한걸로 치면 오히려 유지원과 함께 있는 지금이 더 위험하게 느끼져서 불안했다.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럽고, 거리도 가깝고, 기사님이라는 타인까지 있으니 달리는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불편했다.

자칫하다간 식은땀으로 엉덩이에 땀띠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이 상황은 편하지 않았다.



"...저기, 유지원. 불만이 있으면 우리 대화로 해결해 볼까?"



유지원이 어떤 폭탄발언을 할지 몰라 먼저 선수쳐 입을 열었다.

제발, 정상적인 말이 나오길 간절히 빌며.



"우리. 그래, 너랑 나는 우리지. 서로 좋아하니까."



아아아!! 저 놈 자식이 진짜!!

태연자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유지원을 대신해 소리치고 싶었다. 제발, 그런 말은 우리 둘만 있을때 하자고.

내가 너무 남의 눈치를 보는걸까 아니면 유지원이 주변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걸까! 후자겠지!!

저 녀석은 정말로, 진심으로 주변에 누가있든 본인이 우선시 되는 찐으로 자기중심적인 놈이니까!!

울분 가득한 말들을 꾸욱 눌러 삼켜내고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끌어다 미소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



"조, 좋아하지. 좋아한다는 말에는 여러뜻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유지원 제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은 자제해 주겠어?

진지한 대화를 원하면 우.리. 차에서 내린 뒤에 해도 늦지 않을것 같은데."



지금 이 차안에서 더 이상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면 죽여버리겠다. 라는 심정으로 최대한 돌려 말했다. 똑똑한 유지원이니 알아 들었겠지.

그러나 유지원은 그만 할 생각이 없다는 듯 수상하기 짝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성큼 거리를 좁혀 다가왔다.

그것에 놀라 있는 힘껏 문쪽으로 몸을 붙였지만 막혀있는 공간에서 유지원을 피할 틈같은건 존재하지 않았다.

툭, 유지원의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에 닿았다. 바짝 다가온 온기가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에 열이 오르는게 느껴졌다.

이건, 이건 다른 의미로 위험했다.



"자, 잠깐! 유지원. 이거, 계속하면 괴롭히는거다? 어? 알아? 포, 폭력이라고. 포, 폭력 멈춰!"



"풉, 폭력이라니? 나는 좋아하는 만큼 가까이 간것 뿐인데."



"제발..."



그 빌어먹을 좋아한다는 말 좀 그만하면 안될까? 내 반응이 재밌는지 큭큭거리는 유지원이 얄미웠지만 이곳에서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았다.

평소처럼 욕을 하자니 기사님이라는 어른이 있었고, 무엇보다 유지원 행동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게 가장 큰 문제였다.

예전같았으면 꺼지라고, 만지지말라고 소리지르며 개X랄을 떨었을텐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유지원과 같이 있는게 좋다는 생각이 잠깐씩 들정도이니 큰일이었다.

피식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유지원은 내 왼손을 멋대로 가져다 빈틈없이 손가락 사이를 교차해 잡았다. 처음과 달리 편한 미소였다.

이제서야 유지원이 제대로 보였다.



"너,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라니, 전혀?"



전혀가 아닌것 같은데.

뭔가, 유지원이 이상하게 보이는게 이상했다. 항상 오만 방자하던 눈이 이상하게 맥이 없었다.

교문 앞에서 차 문을 여는 유지원이 어떤 눈을 하고 있었더라?

차 안에 기사님이 있는데도 좋아한다고 거침없이 말하던 유지원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

유지원 보다 내가 당황한게 먼저라서. 그게 미안해서 유지원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음, 뭐라고 말해야 되지? 평소같은데 평소와는 달라. 뭔가 불안해 보인다? 쓰읍, 그것보다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가 있는것 같은데."



"불안하다니, 전혀..."



"초조? 그래, 초조해 보인다! 그런 것 같은데. 무슨 일이야."



"..."



정답이었는지 유지원은 말을 끝맺이 않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조용해지는 유지원때문에 차안은 적막으로 가득해졌다. 거의 붙잡혀 있다 싶은 손에 땀이 날것 같았다.



"유지원..."



"하아."



"끕?!"



짧게 한숨을 내쉰 유지원이 고개를 숙여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어깨에 닿는 무게와 온기때문에 이번에는 내 말문이 막혔다.

진짜 무슨 일이있는건가.



"전부터 생각한거지만 나를 다루는 법을 아는 것 같아, 너."



...제가요?

당황스러운 말이었지만 유지원에게 무슨 일이 있는건 분명한듯했다. 우효준이 한 경고도 유지원에게 일이 생겨서 그런것 같고.



"음, 큰일이야?"



"응, 큰일이야."



큰일이라고 하는 애한테 이것저것 물어도 될까? 묻는 것에 대답 하는 것이 더 스트레스이지 않을까.

나는 그런 편이었다. 큰일이나 감당 못할 일이 일어나면 혼자 동굴로 들어가 생각을 정리한 뒤에 입을 열었다.

내게 일어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었고, 내가 스트레스라고 느끼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부담으로 느낄 수 있으니.

그래서 묻는 것보다 힘없이 기대고 있는 유지원의 머리위에 손을 올렸다. 색이 옅은 머리칼이 부드럽게 쓸려내려갔다.

유지원은 머랏결도 좋네.



"네가 괜찮아지면 좋겠네."



"..."



잠깐 움찔거릴뿐 별다른 말도 반응도 보이지 않는 유지원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힘들다는 애한테 힘내라고 하면 더 힘들잖아. 그러니까 네가 괜찮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 알아둬."



"...고요한."



"응."



불쑥 고개를 든 유지원과 얼굴이 가까웠다. 숨결이 맞닿는 거리였지만 이번 만큼은 유지원을 피하지 않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괴로워하는 애를 피할만큼 정없는 사람도 아닐뿐더라 좋아하는 애가 힘들다는데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주하는 유지원의 얼굴이 빨간것 같았다. 미묘하게 열기가 오른 눈은 더더욱 그렇게 보였다.



"뽀뽀하고 싶어."



"...어?"



"사실은 키스..."



더 이상은 유지원이 멋대로 입을 놀리게 둘 수 없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녀석의 입을 막았다. 이 녀석은 조금만 걱정을 해주면 진짜!



"한마디만 더 하면 이 차에서 뛰어내려 버릴거야."



최선을 다해 싸늘한 얼굴을 했는데 유지원에게는 소용이 없었는지 녀석의 눈매가 사르르 녹아 내리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막고 있는 내 손을 본인 머리에 올려 놓고는 안기듯 몸을 끌어 안았다.

유지원에게 안겨있는데 반대로 내 품에 안겨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집어 던지고 날아가려는 이성의 끈을 부여잡았다.

나까지 동조하면 안돼. 이곳에는 둘만 있는게 아니다. 그렇게 되뇌이며 유지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이제 저 기사님 얼굴 못 봐. 증말.

애써 백미러에 비치는 기사님의 얼굴을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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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6-10 03:12 | 조회 : 1,186 목록
작가의 말
gena

제가 다시 돌아오면 반겨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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