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중 - 고요한, 고여울

매애앰-! 매애앰-!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이제는 익숙해질 8월의 끝자락. 이틀 뒤면 다시 학교를 가야된다는 생각에 한껏 불행함을 느끼고있는 중이었다.
방학이라고 해봤자 집, 학원, 가끔 최현우와 피씨방을 가는 것 정도였는데 일주일전 가족여행으로 호주로간 최현우덕에 남은 이틀을 심심하게 보내야했다.

뭘해야 덜 심심할까?

멍하니 침대에 누워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는데 무서운 기세로 윙윙거리는 폰을 더 이상 무시하고 있을 없어 신경질 적으로 들어 확인했다.


"하아... 그만 좀 보내라 새끼야."


시간당 못해도 세번의 톡은 꼭 보내는 유지원의 집요함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벌써 한 달 전, 유지원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 뒤로 만날일이 없어 흐지부지 넘어갔었다.
가끔, 아주 가끔 그 날의 입맞춤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때마다 돌뿌리를 밟고 휘청거리는 다리 마냥 덜컹거리는 심장때문에 상당히 곤란했다.
입술을 때고 예쁘게 웃던 유지원이 잊혀지지 않아서 뇌를 꺼내 좋아힌다는 마음을 자각한 그 상황을 깨끗히 털어내고 싶었다.

들키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면 똑바로 해야되는데 유지원만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심장이 반응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지금도 자기는 뭘 하고있다, 너는 뭘 하고 있냐, 보고싶다, 같은 문자를 보내면 어떤 식으로 답장을 해야할지 감도 안 잡혀서 미치겠다.
뭘하고있는지 일일이 보내는 것도 이상하고 나도 보고싶다 같은 건 상상도 못하겠고 그래서 답장을 안 하면 알아서 그만보내겠지했는데 의지의 유지원은 그만둘 생각이 없는지 방학의 끝자락까지 나를 가만히 나두질 않았다.

그래, 이러니까 내가 계속 신경쓰는거지.
이러다 말겠지 싶어서 무시해도 죽지도 않고 또 오고 화를 내도 묵묵히 고백을 해대니 내가 마음이 안 쓰이겠냐고!!


"으아아악! 진짜 그만해 유지원!!!"


니 생각좀 안 나게 해달라고!!


"뭐야? 왜그래?"


한참 이불을 발로차고 있는데 노크도 없이 불쑥 방문을 열고 고여울이 들어왔다.
이불과 얽혀있는 나를 보는 고여울의 눈빛은 싸가지없게도 한심해하는 눈이었다.


"돌았냐? 왜 맘대로 문 열어?"


"형이 이불이랑 씨름하고 있을줄은 몰랐지."


"...봤으면 나가."


곱게 문을 닫고 나가려는 여울이를 보고 잡고있던 이불을 놓았다.
이 상태로 유지원을 만나면 단박에 들킨다. 그 놈 눈치하난 드렇게 빠르니까.


"혹시 여친생겼어?"


"뭐?"


나가지않고 문뒤로 얼굴만 내밀고있는 여울이에게 기겁하며 되물었다.


"아닌가? 아닌데, 지금 형 얼굴이 딱 연애문제로 고민하는 얼굴인데."


의심가득한 얼굴로 빤히 쳐는 보는 여울이의 말에 숨기고있는 것을 들킨것마냥 심장이 쪼그라 들었다.

왜 내 주변사람들은 눈치가 빠르냐 X벌탱. 이럴거면 숨기고 뭐고 아무것도 안하는게 낫겠다 젠장.


"그런거 아니..."


그런거 아니야라고 말을 맺으려다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지난 기억에 여울이를 돌아봤다.


"너, 여친있다고 했던가?"


"응."


그랬다. 언제 스쳐지나가듯 여친이 생겼다는 밀을 했던게 기억이났다.
조금 다른 케이스긴하지만 어쨌든 좋아한다는 마음은 같은거니까 여울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친이랑 사귄지 얼마나 됐어?"


"육개월 됐지"


육개월? 중학생이 길게도 사귀네.


"어떻게 사귀게 됐는데? 누가 고백했어?"


"그냥 친한 친구였는데 자연스럽게 감정이 생겨서 누가 뭐랄것없이 사귀게 됐지. 그건 왜? 갑자기 내 연애상황이 왜 궁금해? 사귄다고 말했을때는 관심도 없더니."


"관, 관심도 없진 않았어. 그때는 물을 이유가 없었던거지."


"오- 그럼 이제는 묻는 이유가 생겼다는거네. 뭔데? 형 좋아하는 사람생겼어? 아님, 벌써 사겨??"


두 눈을 반짝이면 부담스러운 기대를 보내는 시선을 피해 이불을 끌어안았다.


"...좋아하긴 하는데 사귀는것 까진 별로."


"헐 왜?! 좋아하면 고백하고 마음의 교류를 해야지 무슨 혼자만 좋아하고 말래라는 개똥같은 말을 하는거야?!"


흥분해서 버럭소리지르는 여울이는 평소 내가 보던 여울이가 아니었다.


"왜, 왜 깁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러냐?"


"말하는게 쭈구리 같아서 그런다. 으이그 꼭 연애 처음해보는 티를 내요. "


"뭐 임마?! 야! 누가 연애를 처음한다고 그래? 어? 이래뵈도 고백만 다섯번이나 받았던 사람이야 내가!"


"흥, 받으면 뭐해 사귄적이 없는데."


콧방귀를 뀌며 명확하게 무시를 하는 여울이의 반응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씨이, 그때는 일방적으로 고백받은거고, 지금은 서로 좋아하는거라고! 라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뱉는 순간 그럼 사귀면되잖아. 라는 말이 나올까봐 힘써 심켰다.


"어휴 됐다.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한다니까 하는말인데 형이 진짜 좋아하면 놓치지마. 짝사랑만하다가 고백도 못해보고 놓치면 형만 손해다?"


놓쳐?


"대충 감잡은 얼굴이네. 형 연애가 행복하길 기도해 줄게. 난 이미 행복해서."


사랑의 위대함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같은 얼굴로 방을 나가버린 고여울에게 패배감이 들었다. 이... X벌, 연애문제로 자존심이 상하게 될거라곤 생각한적 없는데.


"하아, 놓친다라..."


혼자 방방거리는게 힘들어 다시 침대에 누웠다.
여울이가 한 말중 틀린말은 없었다. 혼자만 좋아한다고 해결되는 것 없고 이미 유지원의 마음을 알고있는데 이런 애매한 상태로 친구인 척 옆에 있게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따지고보면 친구도 아니고.

그런데 사귀는건 진짜... 모르겠다고!
사귀면 막 그때 처럼 키스도 할거고 막... 막...!
아, 혼자 이런 상상하는것도 지친다. 진짜 쭈구리가 된 기분이야.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좋기만 할줄 알았는데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일줄 누가 알았나.
...그래도 놓친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유지원과 아는 척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그 보다 더 슬퍼질 것 같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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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4-27 11:00 | 조회 : 1,79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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