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인정

"전명준 뭐해? 안 따라와?"


멍한 얼굴로 서있는 전명준을 부르자 깜짝놀랐는지 주춤거리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왜그래? 혹시 너도 맞았...?"


머뭇거리는 폼이 답지 않아 상태를 확인하려 전명준쪽으로 움직이려는데 꽉 움켜잡는 힘에 한걸음도 땔 수없었다.


"전명준은 멀쩡해. 여기서 다친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다른 사람 걱정하지마."


싸늘한 목소리와 잡아먹을 듯한 얼굴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느낌이 지금나댔다간 뭣된다라는 신호를 보내고있었다. 그래도 전명준을 혼자 둘 수 없어 다시한번 녀석을 불렀다.


"같이가. 그렇게 서있지말고."


"저, 저는... 알아서 할게요."


겁에 질린 듯한 목소리로 존대를 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갑자기 존대? 자세히보니 얼굴도 하얗게 질려있고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고 있었다.


"...괜찮냐?"


"네, 네! 신경쓰지마세요."


"그래, 신경쓰지말라니까 안 쓸게. 알아서 잘 추스리고 추후에 저기 있는 녀석 이름, 반, 전회번호 넘겨."


어떻게 신경을 안 쓸수있냐고 말하려는 타이밍에 유지원이 끼어들었다


"네, 네. 회장님!"


잔뜩 기합이 들어가있는 대답을 듣고서야 유지원은 나를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알아서 하겠다고 하지만 습격당할뻔한 애를 혼자두는게 마음에 걸려 전명준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보지마. 신경꺼."


화가난 듯 차갑게 말하는 유지원때문에 전명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야했다. 부축받고있어서 뭐라 할말은 없는데 왜 화가나있는지 알고싶어졌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유지원이 향한곳은 뷔페건물 옆 편의점이었다. 야외 의자에 나를 앉힌 유지원은 이리저리 상태를 살피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화보를 찍는 모델같은 포스에 잠시 넋고 녀석을 보다 정신을 차렸다.
뭐, 뭘보는거야 고요한! 정신차려!


"크흠! 아까는 어떻게 알고 온거야?"


"그게 먼저야?"


"...아니면 도와줘서 고맙다?"


"고요한, 너 연하좋아해?"


"뭐?"


유지원 눈치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뜬금없는 물음때문에 고민하고있던 것들이 단박에 사라졌다.


"갑자기 뭔."


"신수현도 그렇고 전명준도 그렇고 걔네가 뭔데 몸 상하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돕는건지 모르겠거든."


"아니, 그럼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데 모르는 척해?"


"...너 성격에 그럴 수 없다는건 이해하겠는데, 니가 다치면 내가 빡친단 말이야. 그것도 다른 사람때문에 다치는거라면 더더욱."


뭐때문에 화가났는지 이유를 알게되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이렇게 될거라곤 생각 못했어."


"안 했겠지. 니가 다치더라도 상황만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했을테니까."


뭘 그렇게 나를 잘 안다고 아는 척 말하는지 조금 울컥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유지원을 쳐다봤다.


"그렇게까지 생각한 적 없거든? 내가 그렇게 착한 사람으로 보였다면 잘못본거다!"


"그래? 그럼 다음부터 안그런다 약속해."


"뭐? 내가 왜 너랑? 해도 여울이나 아버지랑."


"널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예고없이 훅들어온 고백에 말문이 막혔다. 아니, 여기 대로변인데, 미쳤나봐!


"니가 다치면 수십배로 아프고 아픈만큼 화가나니까."


두근-

두, 두근?? 방금 내 심장소리였냐??
이상하게 날뛰는 심장때문에 정신이 없어졌다. 자, 잘못들은거야. 내 심장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릴리 없어.


"아니면 허락만 해줘. 너 건든새끼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릴 수 있게."


"야... 농담도 니가 하면 진담같거든?"


"농담같아?"


싸늘한 시선으로 옅에 미소짓고 있는 얼굴이 장난같아 보이지않았다. 백프로 진심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약, 약속까진 할 필요없잖아. 알았으니까 그렇게까지는..."


"그래, 그럼 알아들었다고 생각할게."


다음에... 이런 일에 연류됐다가는 큰일나겠구나. 아니지 다치지만 않으면 되는거 아닌가?
마른 침을 삼키고 욱씬거리는 배를 감싸 안았다.
다행히 말할때 아프지 않고 움직이는 것에도 크게 이상없는걸로 보아 노래를 못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간간히 울리는 통증이 신경쓰였다.


"괜찮아?"


"아, 어 괜찮아. 부딪히는 소리만 좀 컸지 그렇게 심하진 않은...?!"


말을 다 끝내기 전에 길고 곧은 손이 배위를 덮었다. 무릎의 반을 접어 내 앞에 앉은 유지원은 누구보다 쓰린 얼굴을 하고있었다. 누군가에게 이런식으로 만져진적이 없어서 어떻게 할지 몰라 눈만 꿈뻑거렸다.


"제발, 다치지마."


다친건 난데 본인이 더 아픈얼굴을 하고서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안 된다고 생각했고 내 미래와 내가 지켜야할 친구와 가족을 위해 끝까지 모르는 척 하고 싶었다. 어쩌면 유지원말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유지원을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니 근데 좋아할지도 모른다는거지 한다는게 아니잖아? 그리고 좋아해서 어쩔거냐고! 뭘 할 수 있는데!


"하아..."


"많이 아파? 병원갈까? 움직일 수 있겠어?"


"아니... 그런거 아니야."


속도 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유지원에게 닿지 않길 기도했다. 불확실한건 내 미래만으로 충분하다. 끝이 뻔히 보이는 관계속에서 힘들고 싶지않다.
숨기자. 유지원이 모르게 철저히 숨기자.
내 미래를 걸고 모르게하자.


"진짜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말고 이제 대딥해봐. 내가 거기있는거 어떻게 알았어?"


기가막힌 타이밍에 나타난게 신기하기도하고 이상하기도해서 알고싶었다. 배위을 덮고있는 손을 치우고 유지원의 대답을 기다렸다.

마찬가지로 나를 보던 유지원은 짧게 한숨를 내쉬고 일어나 겉옷을 벗어 내 어깨위에 걸쳐주었다.


"뭐야, 지금 겁나 덥거든?"


"상의 다 더러워졌어."


내 옷이 뭐가... 그제서야 살펴본 나의 상의에는 검은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아까 벽에 부딪히면서 더러워진것 같다.
아, 아끼는 옷이었는데.


"야, 그럼 니 옷도 더러워지잖아. 가져가."


당장 벗어서 주려는데 유지원이 어깨를 내리눌러 그러지 못하게 만들었다.


"상관없으니까 그러고있어. 사람들이 보잖아."


...그렇게 주변을 신경쓰는 사람이 뭐? 좋아하는 사람? 몇 십배로 아파? 그런 소릴 잘도했네.
준다고해봤자 안 받을거고 이걸로 실랑이를 벌이긴 피곤해서 덥지만 참고있기로했다.


"그래서, 어떻게 알았냐니까?"


"...있었어."


"뭐라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쿨럭!"


얼굴을 붉히고서 눈을 피하는 유지원의 모습이 경악스러웠다. 지, 지금 쑥쓰러워하는거야??
그 미친놈 유지원이??


"안 온다고 해도 올 것 같았거든. 도중에 다른 길로 새서 위협을 당할거라곤 생각 못했지만."


언제 얼굴을 붉혔냐는 듯 엄한 얼굴로 면박을 주는 녀석에게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그럴줄 몰랐다니까?"


"그래서?"


"어?"


"안 온다고 했는데 온거면 이유가 있을거아냐. ...아까 강당에서는 내가 너무."


"헐?! 큰일났다! 지금 파티 시작했어?"


"...지금 그게 중요해?"


타이밍이 애매한건 알지만 최현우가 한 부탁이 걸려 멍청하게 있을 수 없었다.


"미안한데 몇시지?"


"...넌 또 어이없게 시간을 묻는구나. 하아- 파티시작한지 한 시간 지났어."


한 시간, 한 시간이나 지난 싱황에서 선배들에게 친한 척 할 수 있을까? 친한 척 하는 것도 계기가 있어야지. 밥을 같이먹는다던가, 공통된 주제라던가.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보니까 나때문에 온건 아니네."


싸늘함과 더불어 서슬퍼렇기까지한 눈빛에 입술을 말아물었다.


「날 팔아서라도 꼭 족보 구해다 줄게.」


왜 그딴말을 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드냐! 두시간 전의 나의 멱살을 잡아다 흔들며 헛소리 말라고 소리치고싶었다.
유지원이라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감히 도와달라고하기 어려웠다. 도와줄지도 모르겠고...


"흐음? 뭘까? 뭔데 안 오겠다고 큰소리치던 니가 안면수심까지 해가며 파티에 온걸까?"


답지않게 가는 목소리를 내며 비꼬는 말이 그대로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윽, 안면수심이라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않나?


"말 안 하고 계속 이렇게 있을까? 나야 좋지. 조금있으면 파티도 끝날거고."


"앗, 벌써?"


"벌써?"


오늘따라 무서운 유지원을 많이 보는 것 같다.
날씨도 덥고 유지원의 추궁에 식은땀까지나서 더이상 겉옷을 덮고있을 수 없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옷을 벗어 팔에 걸었다. 이번 한 번 쪽팔리자.
항상 날 챙겨주는 최현우를 위해 이 정도쯤은 할 수 있잖아. 후우, 심호흡하고.


"학생회선배님들이준다는족보좀얻을수있을까?!"


유지원 얼굴을보고 말하는건 도저히 할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말했다.
다른 의미로 쿵쿵거리는 심장소리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X이댕! 쪽팔리고 분해!


"...그거 때문에 온거야?"


"으응, 얻을 수 있다길래..."


"얻는거야 어렵지 않지. 벌써 내가 가지고있는 것 만해도 여러개니까."


"헐 대박! 진짜?"


"그렇게 웃으면 그냥 주고싶은데, 나도 얻는게 있어야지. 가는게 있으면 오는게 있어야 공평하잖아?"


애초부터 그냥 줄 생각없었으면서 말하고는. 이렇게 나올거라고 예상 못했는줄 아냐?


"뭐어, 말래 봐. 들어줄 수 있는거면 적극 협조할게. 나도 그냥 얻는거 찝찝하니..."


잘 들고있는 옷을 가져가는 유지원을 자연스럽게 올려다 봤다. 그렇게 본 유지원은 달빛처럼 은은하게 미소짓고있었다.
가져간 겉옷을 내 머리에 위에 올려놓는 행동에 의아해하고있는 사이 녀석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무슨..?"


피할틈도 없이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가늘게 뜨고있는 눈과 마주치자 심장이 크게 울렸다. 싫다고 할 수 없을정도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손끝까지 전해졌다.
입술을 맞대고 눈까지 마주치고 있을 수 없어 눈을 김아버렸다.
당장에 뭐하는 짓이냐고 밀어내야하는데 머리로는 그렇게 하라고 하는데 좀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아, 나 큰일났다.
어쩌다 이런 무지막지한 놈을 좋아하게 되버렸지...

6
이번 화 신고 2019-04-22 22:35 | 조회 : 1,706 목록
작가의 말
gena

결국... 지원이한테 넘어가는거야 요하나..?(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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