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직...칙..
"음, 그러니까...제가 갔을 땐 이미 돌아가신 뒤였어요."
-왜 당신이 했다고 한거죠?
"그야..."
우연이를 감옥에 집어넣을 수는 없으니까-요?
-
"서준 씨."
이선이 서준을 부른 건 밤 9시. 우연은 미쳐 날뛰다가 잠이 들었고, 착잡한 심경으로 그런 우연을 지켜보던 이선은 서준을 불러내었다.
"...어째서 저였죠?"
"부탁 좀 하죠."
내 인생을 바꿔 놓은 너니까, 너 대신인거야.
그런 다짐을 하며 교도소에 들어갔었지.
"사랑해, 지 우연"
닿지 못한 고백이 허공을 떠돈다. 미칠 듯한 공허가 몰려와 괴롭힐 때면 나는 너의 웃음을 떠올린다.
"미치도록 아프다."
....보고싶어.
-
출소 후-
쾅쾅-
"누구야?"
"저예요."
서준의 집에 찾아온 이선은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갔다.그러나 그토록 보고싶던 우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어디 갔어요?!!"
"유학."
"...그런 말 없으셨잖아요!!!!"
분노가 담긴 고성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서준은 이선의 고성을 듣다가 부엌으로 향해 차를 한 잔 내왔다.
"진정해. 알려주지 못한 건 우연이의 부탁이었어."
달그락, 소리를 내며 차가 탁자위로 올려지자, 이선이 큰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감싸쥐었다.
자리에 앉은 둘이 차를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주된 얘기는 우연의 정확한 행방이었다.
금방이라도 비행기 탈 듯한 기세에 서준이 속으로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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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 차를 마시지 마.
우연이 문틈 사이로 뻗어지지 않는 팔을 억지로 집어넣었으나, 나오지는 못했다.
이선의 차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을 터였다.
안된다, 서준은 기필코 이선을 죽이려 할 터였다.
"우연은...아직도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하나요?"
이선이 조심스레 묻자 서준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흐으읍!!!"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막힌 입때문에 이상한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어느정도 얘기가 끝난 두 사람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집안을 둘러보던 이선의 눈과 문틈사이로 두사람을 지켜보던 우연의 눈이 마주쳤다.
이선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그 모습에, 우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어느 정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
서...준씨....제..가 잠...들기 전에... 꼭...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들어주지.
"사랑해, 지 우연"
환하게 웃으며, 이선은 죽었다.
천천히 시든 꽃은, 결국 다시 피지 못했다.
무참히 짓밟은 어떠한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