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쇼요 선생님.

긴토키는 시체 위에 앉아 카오루가 건네준 밥덩이를 얌전히 우물우물 씹으며 특유의 무관심한 얼굴로 카오루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체와 피가 가득한 전쟁터에서 시체 위에 앉아 검을 껴안은 채 밥을 먹는 어린아이가 얼마나 될까.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당연하게도 긴토키는 카오루라 생각해 그를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카오루가 아니었다.

"시체를 먹는다는 악귀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와 봤는데, 그게 당신이었나요?"

"......?"

"세상엔 이렇게 귀여운 악귀도 있었군요."

악귀라 부르는 말에 긴토키는 몸을 흠칫하며 거리를 벌리고 검을 뽑았다. 그리고 경계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자신보다 강했던 카오루보다 더 체구가 컸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검을 들었다.

"어린아이가 시체의 짐을 뒤져가며... 자기를 지켜왔던 겁니까? 정말 대단하군요."

그가 떠들건 말건 긴토키는 계속해서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하지만 어쩐지 이때까지 봐온 이들 중에서 가장 틈이 없었다. 게다가 말끔해 보이는 옷에 제대로된 검까지 차고 있었다. 덕분에 더욱 긴장했다.

"이제 그런 검은 필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며... 자신만을 지키기 위해 휘두르는 검은... 이제 그만 버리십시오."

그가 말을 멈추고 자신의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동시에 긴토키는 곧바로 검을 뽑았다.

하지만 그는 검을 뽑는 대신 검을 풀더니 긴토키에게 건네듯이 던졌고, 긴토키는 검을 받으면서도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제 검을 드리지요. 그걸 제대로 쓰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절 따라오십시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고 뒷모습만이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긴토키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부턴 적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신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겁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휘두르는 겁니다."

긴토키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가 말하는 건 어렵고 배워먹은 말은 하나도 쓰이지 않았기에 채 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단 한마디가 귀에 꽃혔다.

"카오루도... 지키라고 했었어.."



* * *



도적들이 물러갔다.

이렇게 금방 물러가 버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대장을 노릴 걸 그랬다.

미련하게도 반 이상을 베어버렸다.

그래도... 죄책감을 느끼기 전에 긴토키의 옆에 있어야했기에, 계속 걸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에 칼을 지팡이 삼아 계속 걸었다.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덕분에 지혈은 긴토키가 보는 옆에서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조금 걱정해 줄려나?

이제 긴토키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얌전히 시체 위에 검을 안은 채 앉아있었다.

그 여전히 얌전하게 앉아있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다행이다."

도적이 긴토키를 노리게 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긴토키는 약하지 않으니 대놓고 당하지는 않겠지만 시비가 붙는다면 분명 부상을 입을 테고, 나 역시 이 몸으론 도움은 커녕 방해가 될 터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긴ㅅ..."

긴토키를 크게 부르며 다가가려는 순간, 누군가 긴토키에게로 다가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이었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두려웠다.
그가 긴토키를 해치려고 하거나 그를 속여서 납치할까봐.

긴토키에게 절대 자신이 올때까지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그가 무력을 행사한다면 지금 내 몸상태로는 그를 막기 힘들었다.

그가 긴토키를 쓰다듬더니 뭐라고 말을 했다.

그러더니 긴토키가 검을 뽑았다.
긴토키에게 무슨 말을 한 걸까.

그가 긴토키에게 검을 건넨다.
긴토키는 그의 검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 자는 미소를 보이며 뒤를 돌아 걸어가자 긴토키가 그를 향해 따라가려고 했다.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따라가는 걸 보면 아마 그 자가 분명 협박을 했을 거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아픈 것도 잊으며 검을 빼들고, 긴토키를 향해 뛰어갔다.

그자가 한 말은 중요치 않았다. 뭐라고 했던 간에, 말은 얼마든지 사람을 꼬시거나 속일 수 있는 수단이었다.

나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무시하고 빠른 속도로 달려가 긴토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 자의 등을 향해 한 손으로 검을 겨눴다. 축 늘어진 왼팔이 꼴사납게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 몸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혹시라도 그가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끌고가려면 어쩌나,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머리를 굴려야했다.

급하게 뛰어오는 바람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로, 일부러 시간을 끌며 천천히 말했다.

"... 후우, 후...... 긴상을... 긴상을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그는 나를 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해맑은 얼굴로 말한다.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군요. 전쟁터를 전전하면서 옮겨다니며 시체 먹는 악귀라 불리는 이를 항상 주변에서 호위하고 있는 미친개...가 있다고. 그게 당신인 겁니까?"

그가 반쯤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의 순해보이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나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을 애써 무시하며 외쳤다.

"대답할 의의는 없습니다. 어째서 긴상을 데려가려는 겁니까."

"어린아이 혼자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는 힘드니까요. 그리고 전 강요를..."

"아뇨, 필요 없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당장 꺼... 돌아가주시죠."

나는 더 들을 것도 없이 곧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숨도 차거니와 온 몸이 너무... 아프다.

"어째서죠?"

그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젠장, 말이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지금까지 저희 둘이서 잘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라간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우릴 속이는 거면 어떡합니까.
오히려 따라가 목숨을 위협 받으면 어떡합니까."

"의심이 많은 분이군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그의 말에 결국 화가 치솟았다. 의심이 쓸데 없다는 듯 말하는 그의 말이, 별것도 아닌 그의 말 한마디 때문에 가슴 한 켠이 아렸다.

"의심이 많았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전 말입니다, 지금까지 절 속이거나 위협하거나 절 죽이려는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방금, 절 죽이려 했던 산적은
실실거리는 미소를 지었고,
제 배에 칼을 꽂았던 이는
어딘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고,
제 어미를 죽였던 이는
어울리지 않게 상냥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화를 내는 것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더 무섭습니다.
미소지으며 검을 휘두를 지 모르는... 당신의 그 미소가 무섭습니다."

"......"

"그러니까 제발, 이대로 돌아가주시죠."

그는 나를 향해 말 없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단순히 그에게만이 아니라, 이 거지같은 세상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는 말이기도 했다.

그동안 계속해서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삼키고 했던 말들이 화가 나니 봇물터지듯 터져나왔다.

"긴상은 말입니다. 제가 지켜야 할 사람입니다. 검을 들고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이유란 말입니다."

그때처럼 소중한 걸 잃고, 복수에 미쳤을 때로 돌아가지 않게끔.

"이 이상 제가 지켜야 할 것을 빼앗아 가지 마십시오."

살아갈 이유를 빼앗아가지 마.

"긴상을 데려가면... 전 무엇이 되는 겁니까. 전 누구를 지키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까."

그저 아무 목표없이, 아무런 가치도 없이, 숨만 쉬며 눈만 뜬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시체처럼 살아가야 됩니다... 긴토키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게 돼. 그저 살인마 일뿐.

어느새 나는 울고 있었다.
그에게 애원하며 아이처럼 흐느꼈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눈물을 털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긴장을 늦출수는 없었다.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저는 당신들을 속이고 데려가 처치할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좀 더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우셔야겠네요. 당신도 가시겠습니까?"

내가 뭐라고 대답할려는 찰나, 머리가 핑 돌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지혈. 깜박하고 있었다.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세상이 돌았다.

긴토키가 다급하게 날 붙잡으려는게 느껴졌고,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자도 급히 다가와 날 받아들었다.

나 아직 대답 안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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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7-29 19:25 | 조회 : 2,084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 원래는 쇼요가 서당을 차리기 전에 긴토키랑 같이 떠돌아다니지만 그냥 여기선 서당을 미리 차리고 있는 걸로 설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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