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취조입니까?

귓가에 바람 소리가 들린다.
문득 발 밑을 살펴보니 아득하게 높은 곳에 서 있었다.

"여기... 회사 건물 위잖아... 내가 뭘하고 있는 거지."

말 그대로 다니던 회사 난간 위에서 위태롭게 서있었다.
바람이 한 번 불때마다 중심을 잃고, 크게 휘청거렸다.

"아... 맞아. 나 자살하려던 중이었지. 근데 지금? 나 별로 자살하고 싶은 생각 없는데... 왜 자살하려했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렇게 의문을 갖는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회사에서의 나는,
... 나는 낙하산으로 들어왔다는 오해를 받았다. 학벌, 능력, 집안. 뭐 하나 좋은 것 없이, 누군가 결번하는 바람에 인원 부족으로 떨어질 뻔 한 내가 붙어버린거다.

아무 능력없이 인맥으로 붙어버린 신입사원. 그게 나였다.

처음부터 위에서 보고를 내렸다고 오해했고, 내가 아무리 운이 좋아 붙은거라 해명해도 믿어주는 이 없이 미운털만 잔뜩박혀버렸다.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어렵게 붙은 직장이다. 겨우 가족들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도중, 커다란 실수를 해버렸다.
그 실수 덕에 더욱더 눈치를 봐야했고, 따돌림이 심해지는 가운데 앓는 소리 한 번 못냈다.

"맞아... 여기까진 내 잘못이었지."

그 커다란 실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실수를 뒤집어 쓴 것이었다. 범인은 내 직장 후배.

나는 계속해서 해명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후배가 한 잘못이라고.

하지만 후배의 긴장한 얼굴을 보자 더 이상 해명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내 얼굴을 보는 것 같아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후배가 나서서 해명해주길 바라는 건 정당한 건가? 나는 끝내 후배를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주위의 시선과 질책 속에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사표를 내게 되었다.

후에 진상이 밝혀졌지만, 후배 관리를 잘못 한 죄라고 복귀시켜주지 않았다.

기대하고 있는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학교 다니는 내리 왕따, 따돌림을 당한 탓에 하소연할 친구도 없었다.

혼자서 모든 걸 끌어앉은 채 회사 난간 위로 올랐다.
마지막까지도 부모님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 여깄구나..."

난간을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발을 턱에 걸치고 있는 나는, 높은 빌딩 건물 위에서 펼쳐지는 경관을 감상했다. 한 발자국만 더 걸어가면 저 밑 도로랑 포옹을 하게 된다.

"근데, 왜이리 오랜만에 느껴지는 걸까..."

기억을 떠올려버린 탓에 가슴이 자꾸 욱씬 거렸다.
오랜만에 떠올린 기억같았다. 눈물이 주륵 흘렀다.

기억의 충격에 몸이 휘청거렸다.

몸의 중심을 잡으려는 찰나, 거센 바람이 불었고, 몸이 추락했다.
잡아주는 이 하나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아냐. 안돼, 가야 돼.... 어? 어딜 가야되는 거지?"

이제 나는 마구 흐느꼈다. 왜 우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무서워서? 겁나서? 도대체 뭐가?

순간 누군가 내 손을 붙잡았다.

"... 긴토키?"

긴토키가 씨익 웃는다.
아저씨였던 내 모습은 어느새 난 아이의 모습이다.
긴토키가 손을 잡아 날 끌어올렸다.

헌데, 그럼에도 계속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무언가에 훅 빨려들어가는 느낌.


* * *


천천히 눈을 떴다.
눈가를 훔쳐보니 눈물이 맺혀있다.

여긴...... 병원이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약품냄새가 코를 찔러온다.

나, 떨어져서 병원에 온 건가? 분명... 나 끌어 올려졌는데, 같이 떨어진 건 아니겠지...

나는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온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어떻게든 반 쯤 상체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손을 짚으려는 순간.

쩔그럭.

오른 손목에 수갑이 차여져있다. 순간 멍해졌다.

뭐야... 이거 자살 방지책? 아니, 잠깐만. 그럴리가.

멍해진 머리를 흔들었다. 아... 방금 꿈이었어. 흐느껴 우느라 잠에서 깼나보네...

맞아. 여기 은혼 세계. 10년 전에 여기로 왔지.
그것도 갓난 아이의 몸을 가로채서.

잠깐 꿈이랑 현실을 혼동했다.

기절하기 전에 뭐했더라... 아, 경찰이랑 싸웠다. 배에 칼빵을 맞은 후, 기억이...

잠깐, 칼빵?
나는 경악하며 내 배를 손으로 훑었다.

"아우으으윽."

절로 신음 소리가 나온다.

"이 빌어먹을 경찰. 어린애 상대로 칼빵이라니..."

나는 끙끙대며 다시 누웠다. 어차피 이 몸으로 도망가는 건 무리다.
거기다 아마 병원 문 앞이나 근처에 경찰들이 돌아다니고 있겠지.

나는 천천히 뭐부터 해야하나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나저나... 그 녀석을 잡으려면 여기서 경찰에게 잡히면 안되는데... 도망 칠 수 있으려나... 아니, 그전에 수갑은 어떻게 풀어?"

일단 포기다. 완치는 못해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은 회복을 해야 도주라도 할 거 아닌가.

아무튼, 나 깼는데... 취조를 하던, 간호를 와서 하던 하라고! 왜 아무도 없는 거야!

..... 이거 설마, 굶겨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게 별의별 생각을 하던 도중.

드르르륵.

누군가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자는 척했다. 시선은 약간 모로, 숨소리는 고르게.

"어라... 소리가 들려서 왔더니 자고 있네... 그럼 밥이나 취조는 다음에..."

벌떡.

"... 헉?!"

"안자고 있었습니다. 그냥 눈만... 흐어어어..."

벌떡 일어나자마자 배가 아파 다시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 와중에도 수갑에 잡힌 손만 뒤로 잡아당겨진다.

"으음... 도와줄까?"

"말로만 말고 도우시죠, 좀."

진선조 대원으로 보이는 그는 조금 멍청해 보이는 웃음을 흘리며 나를 바로 세웠다.

"일단은, 고맙습니다..."

"아, 괜찮아. 그럼 취조부터 할까?"

"밥."

"응?"

"밥부터 달란 말입니다, 최대한 빨리, 밥! 바아아아아압!"

"아, 근데... 밥은 방귀를 뀌기 전 까지는..."

"뀔 겁니다, 먹고!"

"아니, 그러면 안되는데..."

"됩니다. 전 가능합니다!!"

"아... 그, 그래."

그는 나가서 부랴부랴 급식을 받아왔고, 나는 그가 무언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밥부터 먹었다. 그 양이지사를 미행, 잠복하면서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
최소 하루 반은 내리 쫄쫄 굶었다.

그렇게 병원식으로 어느정도 배를 채우고 나자, 남자가 자기소개를 했다.

"아, 난 네 취조 담당인 야마자키 사가루."

"......"

"저, 저기. 네 이름 좀..."

"꼭 밝혀야만 하는 겁니까. 꼭 제 이름이 필요한 겁니까. 어째서 제 이름을 밝혀야 하는 겁니까."

"아, 저기. 일단 이거 취조인데..."

"취조에서 꼭 이름을 밝혀야 하는 법이 있습니까? 왜 그래야 하는 겁니까? 애초에 그건 원래 다 알아오는 거 아닙니까? 범죄자가 정보를 안 밝혀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그, 그건..."

"전 묵비권 행사 할 겁니다. 아, 이거 그쪽에서 미리 안 얘기 해 주셨는데, 제가 이 사실을 밝히면 그 쪽에서 안 좋게 작용할 겁니다."

"아... 그, 그러니까..."

"자아, 그럼 우리 천천히 얘길 해 보죠, 야마자키씨? 일단 직업은 무장 경찰, 진선조 일테고요?"

"아, 응... 일단은 그렇지."

"그럼 직급은 어느정도 되시죠? 잘릴 수도 있을 정도의 말단인가요?"

"마, 말단이라니! 나, 난...!"

야마자키의 점점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며 역취조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와중, 또 다른 이가 한명 더 들어온다.

아, 아는 얼굴이다. 오키타 소고라 했던가.
소고라는 놈은 들어오자 마자 시비를 건다.

"이름을 안 밝히시겠다? 그럼 아무거나 붙여 불러도 되겠지, 사신 꼬맹이~? 그리고 야마자키, 취조하랬더니 취조를 당하고 있는 건가, 꼬맹이한테?"

저건 약올리는건가, 살기를 담은 미소인가?
어느 쪽이든 얄미워 보이는 건 마찬가지.
얼굴을 한 대만 쳐주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며 그를 노려보면서 눈쌀을 살짝 찌푸렸다.

"뭐라 부를까, 사신? 아니면... 사카타 카오루?"

순간 흠칫했다.
뭐야.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있지? 내 생김새 때문에 넘겨짚은 건가?

그럼 이쪽도 우겨주마.

"...... 이노우에 카오루 입니다만."

"헤에~ 그럼 이건 위조? 이거... 위조 죄가 하나 더 늘었는데~?"

소고라는 놈은 우주 여권을 내 눈 앞에서 흔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아버렸다.

아, 내 여권... 여권이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위조라고 대답하든 아니든 복잡해질 것 같다.

소고는 건수를 하나 잡은 듯 슬슬 긁어댄다.
이거... 취조하는 건가... 걸려줄까 보냐. 최대한 해가 가지 않는 대답을 해주지.

"우주로 도망가시려 했나봐? 그런데 어떻게 덫에 걸렸네?"

"닥치시죠."

"그럼 이건 필요 없나~?"

"예, 필요 없습니다. 생각을 바꿨습니다. 제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는데 말이죠."

"... 이봐. 어떤 일인지 예상이 가서 하는 말인데, 잡혀있는 이상 불가능 할거다."

"사람은 원래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죠."

"저기, 그건 그때 쓰는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야마자키씨는 빠지시죠."

"......"

나는 야마자키를 밀어내며 소고를 노려봤다. 소고는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거, 빠져나가는 게 한 층 힘들겠네...

3
이번 화 신고 2017-06-07 00:14 | 조회 : 1,954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