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그.그대로 1화


치아가 약해졌다. 한참 어렸을 그 때부터 친가의 유전 때문인지 유독 치아 쪽이 약했던 저는 다른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딱지치기를 할 동안 아버지의 손을 잡고는 으스스하고도 어두컴컴한 치과로 자주 끌려가는 편이었었다.

생각해보니 그때 그 시절 100원하는 핫도그를 먹으며 뛰어놀던 아이들과는 다르게 저는 항상 집에 돌아와 근처 베이커리 점에서 사온 고소한 쿠키를 바삭거리며 과외를 들었던 걸 생각해보니…꽤 부유한 집 가정이었나 보다. 그때부터 대학을 진학하던 스무 살 즈음 까지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었지만. 구두보다는 뛰어다니는 운동화와 10원 짜리 쥐포를 야금거리는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했었던 자신은 항상 그 때로 돌아가 아이들과 놀고 싶었던 마음이 유독 컸었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막상 돌아가도 자신은 그 곳에서 꽤나 동 떨어져 있지 않았을까.

“그 동안 임플란트 치료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을 텐데 수고하셨어요. 혹시 붓기가 빠지고 나서도 아프거나 흔들리는 느낌이 심하게 있을 때 다시 찾아와 주세요.”
“네, 고마워요.”

물론. 지금도 친구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새삼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어가는 건지 최근 들어 옛 생각이 떠올라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리웠다. 지금처럼 빵빵 거리는 차도들보다는 텅 빈 공터나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유독 많았던 그 때를.

약해진 치아가 빠질 듯이 흔들거리기 시작할 무렵 찾아갈 병원에서는 일부 치아에 임플란트를 씌울 것을 권했다. 비싼 물건을 팔아넘기려 일부로 비싼 종류를 권하는 의사에게 고개를 저으며 그저 평범하고도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걸 선택한 A는 그것도 꽤나 높은 가격이었음에도 아쉬운 눈빛이 스쳐 지나간 의사를 뒤로 한 체 한 동안 치과를 들락거려야 했었다.

40살이 되어 가던 해 모아온 돈을 반쯤은 투자해 만든 카페 관리로도 충분히 바쁜 자신이었음에도 하나에 문제가 생기니 최근 들어 가게를 비우는 일이 많았아졌기에, 6개월의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이 알바생 한 명을 구한 참이었다. 이때까지 손님을 맞이하고 커피를 내드리는 모든 일을 자신이 하고 있던터라, 새 알바생을 구했을 때는 참 걱정도 많고, 이것저것 실수를 많이 하는 바람에 애간장도 많이 탔었다.

물론, 그것과 상반되게 싹싹한 태도와 꼼꼼한 알바생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지만. 벌써 6개월이란 기간 동안 카페 일을 함께 할 수가 있었던 아이는, 최근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취준생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가 않아 취업을 하기 전까지는 알바를 더 해볼까 한다고 웅얼거렸던 아이는 최근엔 손님이 없는 틈틈마다 자격증 공부를 하는 편이었다. 무역 관리사라고. 단순하게 적혀 있는 외관과는 다르게 영어가 가득했던 내부를 보며 끙끙 앓고 있던 아이는. 필히 저가 없는 지금도 공부를 하며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터였다.

“맛있는 거라도 사다줘야 하나.”

맛있는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2000년대에 A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아이가 끙끙 앓고 있을 모습이 생각나 절로 귀여움에 가득한 웃음이 나왔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다 이내 잡고 있는 핸들을 부드럽게 돌리며 아이를 위해 두툼한 패티가 들어 있는 햄버거를 사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햄버거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한동안은 잇몸을 위해 묵직한 것을 피하고 있던 A에게는 독과 다름없는 음식이겠지만. 최근 케이크를 납품 받기 위해 알게 된 작은 베이커리 사장님에게 아이만한 딸이 있다는 걸 들은 이후로 유독 아이가 자신에게 자식 같은 느낌이 없잖아 드는 A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기도 하고.

45살.
내 나이도 벌써 이렇게 흘러 지나가 버렸다.

주변에서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중학생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고등학생 정도가 되는 자식들이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도 없을 만큼 확 늙어져 길가에서 지나쳐도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간혹 있었다.더군다나 나도 친구들처럼 일찍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으면 벌써 공부로 고생하고 있을만한 자식이 있을지 혹여 모를 일이었다.

“싸이버거 세트 2개만 포장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싸이버거 세트 두 개로 포장 맞으시죠? 가격은 10,400원입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예 알겠습니다. 진동이 울리면 찾으러 와주세요.”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신은 아직 쌩쌩하다는 거였다. 망가져 가는 피부로 인해 부려 비싼 화장품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거울을 볼 때마다 늘어가는 검버섯에 한숨을 푹푹 내쉰다거나,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던가.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없다는 거였다.

다만, 최근 들어 한두 개 보이는 검정 머리카락 속 흰머리와 시간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 미소를 짓거나 인상을 찌푸릴 때 눈가의 주름이 생긴다는 것 빼고는. 여전히 아침마다 운동을 하면서 몸매를 관리하였고, 먹기도 싫은 초록 야채들을 갈아 마시며 자기 관리를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셔츠를 입어도 배가 나온다거나 재작년에 산 셔츠가 맞지 않아 타이트하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드르륵’

매장 내에 구비되어진 테이블 위에 올려 진 진동벨이 울리자 몸을 일으켜 햄버거와 갓 튀겨진 듯 따끈한 감자튀김이 들어 있는 포장 팩을 받아든 A는 인사를 하는 알바생에게 수고하라는 맞 인사를 해준 뒤에야 주차 단속이 뜸한 골목 쪽에 세워둔 차에 올라타며 시동을 걸었다.

오늘로 치과를 가는 것도 마지막이었다. 치료를 받고도 사실상 2주가 지나간 참이었지만 그래도 혹여 덧이라도 날까봐 꾸준히 진료를 받으러 갔던 A는 일주일 후 다시 경과를 보자며 예약을 잡으려는 간호사에게 고개를 저으며 오늘로써 치과 방문을 끝낸 참이었다.

돈이 아깝다거나, 가기가 귀찮은 건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왜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게 아까운지. 치과 의자에 앉아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이 사람들 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신나게 즐겨볼 참이었다. 늘 손에 용돈을 쥐어주며 젊었을 때 신나게 즐기라던 아버지의 말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게. 어느 정도의 금전을 얻은 뒤에야 두고두고 후회가 되던 참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원 없이 살아봐야지.
그래야 인생이 즐거울 것 같았다.

여전히 버릇처럼 입고 있는 검정 셔츠의 소매 단이 거슬리는 듯 오른쪽 손목을 빙빙 돌리며 운전을 하던 A는 이내 다시금 핸들을 부여잡으며 익숙한 카페가 보이는 상가 근처 주차장에 차를 주차를 하고서는 입고 있는 셔츠와 커플인 듯 조수석에 놓아진 검정색 코트를 걸친 뒤에야 조수석 아래에 놓아둔 포장지를 들고는 차에서 내려‘탁’차 문을 닫았다.

오늘은 전부 검정색이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어두운 계열의 옷을 좋아하는 편이라 신경 써 본적이 없었는데…오버핏으로 여리한 A의 외형보다 배는 커 보이는 코트를 걸치고는 안에는 검정 셔츠와, 옅은 남색으로 줄무늬가 단가라 마냥 그어져 있는 슬렉스. 그리고 양말 또한 검정색과 겉에 신고 있는 신발은 남녀 공용인 검정 로퍼 구두였다.

뭐…이게 싫다는 건 아니지만. 그러고 보니 어릴 때는 간혹 오해를 받기도 했었지…남자 병이 있는 거 아니냐고 간혹 빈정거리던 사람들도 있는 편이었다.

항상 여성스러운 것보다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선이 있어 보이는 옷들을 선호하였으니까. 물론 지금도.

손에 들려있는 묵직한 햄버거 팩은 A네 카페와 가까운 탓인지 아직도 뜨끈한 열기를 내뱉고 있는 듯 카페 안에 도착할 때까지 하얀 김을 솔솔 내뿜고 있었다.

“어서오세요-어? 사장니임!”

하지만. 그것조차 내부에 들어오는 순간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일은 잘 하고 있었어요?”
“네!! 사장님은 병원 잘 다녀오셨어요?”
“그럼요. 자-이건 선물. 곧 점심시간이라 배고프죠?”

자동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퍽 반가운 듯 예상대로 책에 파묻혀 있었던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쪼르르 달려와 앙탈을 부리는 모습에 괜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손에 있는 햄버거 팩을 들려주니. 이게 뭐냐고 환호성에 찬 소리를 지르며 직원실 안에 위치한 테이블까지 총총총 자신을 손을 붙잡고서는 끌고 가더니 이내 햄버거를 손에 들려준 아이는 같이 먹자며 저에게 방긋방긋 미소를 지어준다. 참…귀엽네.

결국 그런 아이의 행동에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여준 저를 향해 흐헷- 미소를 지어준 아이가 큼직한 햄버거 포장지를 뜯고서는 두툼한 치킨 패티가 들어 있는 햄버거를 참 맛있게도 베어 물었다. 그 작은 얼굴에 비해 입 안 가득 들어가는 음식물은 참 크다.

“오늘은 손님이 너무 없어요-”
“아직 오전이라서 그럴 거예요. 이제 곧 점심시간 이니까. 그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걸?”
“…차라리 바쁜 게 나아요. 조용하면 시간이 안 가는 걸요.”
“그러면 C 학생한테 더 좋은 거 아닌가? 공부한다면서요.”
“으…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입 안에 들어 있는 음식물을 오물거리며 대답을 하는 아이를 보며 바삭한 감자튀김을 우물거리던 A는 이내 울상을 짓는 아이. C에게 이번 달 안에 자격증 시험을 합격하면 시급을 올려준다며 장난 반 진담인 이야기를 내뱉으며 장난을 치다 다시금 감자튀김을 우물거렸다.

지금은 딱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먹기에는 이따 몰려 들어오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려면 무언가를 먹기는 했어야 했다.

그렇기에, 칼로리가 높은 감자튀김을 선택한 A는 두런두런 C과 이야기를 하다 이내 자동문이 열리면 종소리 같은 소리가 울리게 설정을 해둔 소리가 입구 쪽에서 들려오자 C보다 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먹으라 부드럽게 이야기 한 뒤 직원 휴게실을 빠져 나와 손님을 맞이했다.

늘 그랬듯이.

“어서오세요-”

부드럽고도 나긋한 그 음으로.

“…어?”

하지만.
지금은 왜 웃어지지가 않는 건지.

“…너…”

세월이 흘러 다른 사람들은 다 변하였는데.

“A…?”
“…B…”

저 아이는 왜 어릴 적 모습 그대로인지.

“오랜만이네…”
“그러게-오랜만이다.”


19살의 어린 시절.
그 이후 절대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었던 아이를 다시금 만나고 말았다.

그리웠었던 내 첫사랑을.
그리고 다시금 되돌아온 내 두 번 째 사랑을 말이다.


-

“지루해…”
“그러게.”

여고임에도 불구하고 조신함은 집어던진 듯 왁자지껄한 학교 내부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져 냅다 도망쳤던 운동장 구석지 벤치에서 도시락 뚜껑을 열던 B가 내뱉은 말이었다. 이번 일학년들은 교복 입는다고 하던데. 왜 우리 때는 안 입은 걸까.

고기보다는 밀가루로 만들어진. 분홍색이면서도 둥그런 소시지에 계란물을 입혀 노르스름하게 지진 걸 젓가락으로 집어 우물거리던 B은 이내 다시금 ‘그러게’ 라고 대답을 하며 도시락 뚜껑을 여는 A의 도시락에서 제일 비싸 보이는 쇠고기 장조림을 잽싸게 집어 입에
우겨 넣다 이내 기침을 쿨럭거렸다.

“천천히 먹어-얹힌다.”

이제는 그런 모습이 익숙한 듯 보온병에 들어 있는 미적지근한 보리차를 따라 건넨 A가 천천히 먹으라며 오히려 B을 타일렀다.

땅 부잣집 외동 딸 A와 딸만 셋 인 딸부자 중 제일 어중간한 위치인 둘째 B은 3학년에 올라와 처음으로 마주해 신학기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제일 빨리 친해진 서로였다.

유독 까탈스러운 외모와 부자라 소문이 나서일까. 곁에 사람이 적은 A와 항상 가운데에 끼어져‘있는 듯’‘없는 듯’자라 악다구도 강하고 남들에게 주목 받는 걸 좋아하던 B은 3학년이 되자 11개의 반들 중 처음으로 A와 같은 반이 되었고,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1, 2학년 때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기 보다는 그냥 A 한 명과.

하지만 A에게 물질적인 걸 원한다거나 흑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친해진 이유도 참 어이가 없었지만. 사실 3학년에 올라와 만난 첫 만남이 아닌 둘의 진정한 첫 만남은 바로 2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 때였다.

동생이 하도 얄밉게 놀리길래 딱밤을 한 대 멕였을 뿐이었는데 그걸 바로 언니에게 꼰지르고는 엄마 옆에서 울음을 터트려 쪽박이 터진 B가 씩씩 거리며 집을 나와 집 근처 상가에서 20원 짜리 작은 오징어를 구매해 석유가 듬뿍 들어있는 스토브 앞에서 구워 먹으며 화를 잠재우던 그 때.

“…저기 말이야.”
“…어?”
“이것도 먹을래?”


갑작스럽게도 나타나 소보루빵을 건네주었던 아이. 그게 A와의 첫 만남이었다.

물론. 얼떨떨한 표정으로 빵을 받아들었던 B었지만. 교실에서 A를 만나고도 일주일이 지난 후에 물어보니. 배곯는 불쌍한 아이인 줄 알았다고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해주었고, B은 그 때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어느 날 시간이 지났을 때야 뒤 늦게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었다.

“20년 만인가?”
“25년 만이지-”

하지만-지금은 순박하던 예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둥그런 얼굴과 옅은 팔자 주름이 새겨진 아이는 예전에 비해 달라진 건 젊음 하나임에도. 여전히 따뜻한 분위기와 함께 은은한 고급스러움이 새겨져 있었다.

동물 털로 만들어진 모피를 걸치고 비싼 여자인 척을 한다는 게 아닌. 그저 예전 모습 그대로일 거라고 간혹 생각했던 A의 예상과는 달리 많이 달라진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참. 오묘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러버렸나.”

머그컵에 담겨진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뒤에야 안부를 물어오는 B에게 그럭저럭 살고 있다는 대답을 한 A는 이내 생크림이 올려 진 에스프레소 콘파냐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말 궁금했지만. 25년 동안 진하게도 묵혀 왔었던 그 한 마디를.

“그 때 말이야…”
“….”
“왜-아무 말도 안 하고 그렇게 사라져 버린 거야?”

넌 그 때 내 말에도 대답 안 해주고 그냥 가 버렸잖아.

밤마다 하고 싶어서. 그리고 대답을 듣고 싶어서 끙끙 앓았던 그 말을 오래 전부터 연습해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뱉은 A는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냅킨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낸 뒤에야 예전 보온병의 컵의 주둥이 부분을 엄지로 훑어 내리는 버릇을 채 없애지는 못 한 듯 머그컵의 입구 부분을 엄지로 훑는 B을 바라보며 다시금 B의 이름을 불렀다. 25년 전부터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렸던 그 이름을

“B아-”

하고 말이다.

“….”
“….”
“그때는 말이야-”

자신이 없었거든. 네가 그랬잖아. 내가 좋다고. 그런데 그게 친구로서. 우정으로써의 좋아함은 아닌 것 같다고 말이야. 솔직히 말이야-그때는 많이 기뻤어. 나도 같은 감정이었거든. 그래서 그게 무서웠던 거야. 난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아버지는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평범한 가정주부에 부자도 아니었었고, 솔직히 자식 세 명 돌보기에도 많이 벅차하셨어. 그래도 딸들 중학교도 아닌 고등학교까지 다 보내 놓으시는 것까지는 참 멋지게도 해내셨지만 말이야.

다시금 아메리카노를 넘기며 후-길게 숨을 내쉬던 B는 이내 뚫어져라 저를 바라보고 있는 A를 향해 웃음 지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런데…난 한창 취업을 준비할 때 넌 대학교 원서 넣고 공부하느라 많이 바빴었잖아. 난 고작 은행에 들어가서 남들 뒷바라지 하면서 의자에 종일 앉아 있는 고졸이었고 넌 열심히 공부하고 남들이랑 평등한 그런 멋진 아이였고. 그래서 막상 네 고백을 듣고 나서는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았는데…내가 너무 비참한 거야. 더군다나 우린 여자였고, 어렸고 약한 존재였으니까. 물론-지금이 아닌 그때 시절에 이야기야. 지금은 여자든 어리든 남자에 비해 약하지는 않지만.”

“…그게 사라진 이유였어?”
“….”
“고작 그런 이유였어?”
“…그러게.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그런 이유네.”

그 때는 참 힘든 이유였는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팔자 주름이 깊게 파여진 입 언저리를 손바닥으로 가린 B가 후-길게 숨을 내쉬다 이내 아래에서 위로 아주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25년.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음에도 검정 생머리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전혀 변하지가 않았다. 교복이 아닌 자유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던 그 때도 티셔츠보다는 셔츠를 꼭 여며 입었던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셔츠를 입고는 비싸 보이는 시계의 초침 부분을 손등 쪽이 아닌 아래를 향하게 매고서, 예나 지금이나 표정을 숨기지를 못 한 체.

“그러면…지금…은?”

그 마음도 변하지 못한 체.

“지금은 괜찮아?”

자신의 마음을 또 흔들고 말아버렸다. 참 모질게도 말이다.

2
이번 화 신고 2017-01-10 04:40 | 조회 : 2,006 목록
작가의 말
무관심

수위가 문제가 되어 대처용 글로 교체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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