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미성년도 술먹어도 되는 날

폐가가 되어버린 집.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은 엄연히 살고 있었다. 아마 어림잡아도 족히 10년은 된 집이었다. 그 덕에 창문은 녹슬다 못해 깨진 흔적과 피 도는 낙서들이 한면을 채웠고, 벽 또한 쾌쾌한 곰팡이와 ‘죽어’나 ‘메롱’같은 장난적인 글자로 페인트 스프레이를 뿌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여긴 여전하네’

문득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친구들과 학교를 빠지면서까지 여기로 놀러오곤 했었는데...

나의 중학교 시절이란 네 글자로 줄이자면 ‘파란만장’이었다. 싸움도 걸어보고, 담배도 펴보고, 술도 마셔보고.... 그냥 양아치라면 할 짓은 다 했을 시기였다.
그리고 내가 이 짓을 그만둔 이유, 생각해 보면 내인생을 좌우했던 것은 아마 랑이였을 것이다. 아무리 부정해봐도 없어지지 않는 진실, 내가 싸움을 그만둔 이유는 랑이 때문이란 것이었다.

하두 싸움질을 하다보니 관련 없는 랑이에게 까지 덤벼드는 녀석들이 생겨났었다. 놀라운 건 랑이가 전승무패로 그들을 돌려 보낸다는 것이었지만 랑이의 상처는 날이 갈수록 많아져 갔다. 나는 그 후로 저절로 싸움을 그만두었다. 그 지역에서 불리던 싸움꾼이란 별명이 없어질 때까지. 결코 랑이를 생각해서가 아닌 그저 슬퍼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싫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랑이가 원점인 것을 피할 수 없음이 가슴을 찔렀다.

‘후우......’

오랜만에 펴보는 담배가 씁쓸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서둘러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나와 버렸다. 아직 쌀쌀한 날씨 탓인지 몸이 움츠려 졌다.

차가워. 춥고 차갑다. 아니, 외롭다. 자신에게는 비춰지지 않았던 가족들의 진짜 모습을 보니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내 머리를 헝크러 트렸다.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어느 목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요올~~ 러브씨, 오셨나!”

다들 나간 모양인지 혼자 자리 차지하고 있었건만 닫히지도 않는 문옆에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한태형
내 중등 생활을 더럽게 장식했던 놈. 정말 생각없고 머리에 뇌가 없어서 그런지 매일 사고만 치는 놈이었다. 3년이 흐르니 키는 나보다 당연하다는 듯이 커버렸고 얼굴은 장난기 있는 얼굴 그대로 였다. 크흑... 저 녀석만은 안 크길 원했는데....!

그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앉았다. 그리고 내 어깨는 그녀석의 팔이 올라가 있었다.

“꺼져라”

“호호홍, 우리 러브씨 욕하는 것봥. 겁나 오랜만에 들어보네~”

태형은 여전히 장난스럽게 웃어버리며 나를 꽈악 껴안았다. 이 팔을 뽀사버려야 되려나...? 순간적으로 생기는 생각에 갈등되었다.
죽일까? 팰까?

“사랑해 왔냐?”

내가 태형을 한참이나 째려보는 도중 어두운 문 뒤편에서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았다.그 녀석은 내가 누군지 알아차리기 바쁘게 나에게 다가왔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침내 햇빛이 그얼굴을 비추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남자의 얼굴이 보이자 입고리를 올렸고 이놈또한 미세하게 웃음을 띄었다.

검은 흑발이 오랜만에 비춰지자 그리운 향기가 났다.

유치환.
성격은 어른스럽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싸움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인지 정신이 나가면 지나가는 개한테도 싸움을 거는 녀석이었다. 아무튼 이놈도 정상인은 아니란건 확실했다.
랑이의 얼굴또한 뒤처지지않았지만 어른스러운 면 때문일까 취향을 말하자면 이쪽이었다.

내가 다시 담배를 입에물려고 하자 아직 반도 타지않은 담배는 태형의 손에서 빼앗겨 들어지고 말았다.

“내놔라”
“담배를 끊었다던 러브씨가 다시담배를 피우게 되셨는데요. 그것도 이담배는..내꺼잖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치환씨!”

장난스럽게 기자처럼 현장 속보를 하듯이 담배를 손에 쥔 태형은 치환에게 어울려 달라는 둥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치환은 역시 관심이 없는지 어제 다른 애들이 치우지도 않고 간 탁자를 치우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패싸움을 하러 갔거나 자신들의 스케줄을 마치러 간 모양이었다.

계속 참다가 짜증이 난 나는 태형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으려했다. 그러나 몸이 제법 날렵한 태형은 용케 피해 다녔다. 계속 뛰면서 잡으려 하고 있는데 탁자 위를 말끔히 다 정리한 치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담배 끊었다며 그만펴”

치환의 말이 끝나자 태형은 밉살스럽게 웃고는 담배를 바닥에 던져 발로 밟아 불을 껐다. 저녀석은 여전한 치환의 따까리구만.....우리 클럽에선 항상 머리쓰는 일은 치환이 도맡기 때문에 우리에게 갑을 말하자면 치환이었다.

태형이 “음화핫 나의 승리다!” 하며 웃어보이자 내 혈압은 솟을 대로 솟아서 오히려 구멍이 난마냥 한숨을 쉬곤 쇼파에 도로 뉘었다.

때릴 힘도 없다.......

내행동이 낯선 모양인지 태형은 내 쪽으로 몸을 숫였다.

“우리 러브씨가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쫄병이 됬네ㅋ”

“닥쳐라.안그래도 힘드니까....”

“오랜만에 나가서 한판 뜰까? 저기 한남공원 공사 끝....어?!!야, 너 이마에 상처!!”

아....설명 해주기도 귀찮다.....
내 상처를 본모양인지 태형은 내이마를 살폈다. 꽤 심한 상처였다. 나는 몰려오는 피곤함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태형의 말이 들렸는지 치환은 서랍속에서 소독약과 후시딘, 붕대가 전부인 약상자를 꺼내 들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눈을 감고 잠을 취하는 나.
정말 머릿속이 하얗게 될 때가 오자 이마에 차가운 감촉이 들더니 이내 따가움이 온몸을 감쌌다.

“아, 따가!!”

순간적인 따가움에 몸이 돌아갔으나 치환이 누구인가 우리 클럽에서 일명 유엄마라고 불리는 사나이다. 내 팔을 붙들어 그상태로 소독약을 묻힌 솜으로 이마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아....씁! 따,따가워! 사,살살!!”

내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도 질러 봤으나 치환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이마에 계속 약을 발라댔다. 그리고 그뒤에서 웃고있는 태형이 보이자 “닥쳐라” 라는 위협적인 말을 하곤 눈을 감았다.

드디어 끝났는지 치환은 능숙하게 붕대를 이마에 감쌌다.

“흉지면 못생겼어”

“괜찮지 않아? 우리 러브야는 원래 못생..아야!!”

아까부터 개기는 태형에게 내 주먹이 끝끝내 참지못하고 휘둘러졌다. 태형은 나에게 맞은 곳이 아픈건지 이마를 두손으로 감싸며 끙끙거렸다.

치환은 그런 태형에게 한숨한번 내쉬어주곤 나에게로 눈을 향했다.

“왜 다친거야?”

“전봇대에 부딪혔어”
건성으로 답하는 나의 반응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치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얼버무렸지만 태형이 그순간 입을 열었다.

“딱봐도 맞은거구만 뭘. 누구야? 건원고 놈들? 아님 춘현고?”

“꺼져 이것들아! 말하면 뭐 복수라도 해주게?!!”

“벗겨놓고 사진찍어서 뿌린다음 묵사발 낼건데.”

장난적으로 한 말에 치환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순간 태형과 나는 정적에 흘렀다.

치환이한텐 개기지 말아야겠다....


집과는 전혀 다른 공기.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눈치보여야 하는 사람도 없다. 모두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 뿐. 어째서 몰랐을까. 나에겐 이들이 있다는 것을. 할머니에게서 쩔쩔매며 산 내가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바보가 되어버렸다.

“푸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터지는 웃음에 태형과 치환이 모두 나를 바라봤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내모습이 너무 웃기다.

“우리 러브씨 드디어 미치신건가...?”

“머리를 다쳐서 그런 것 같은데....”

두사람 모두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웃음은 멈춰지질 않았다.

‘사랑해, 너는 쫄병 따위가 아니야. 니가 누군가를 위해서 살 필요는 없어.’

온갖 소외감이 몸을 휘감아도 안보일 뿐이지 나에겐 이들이 있었다.

마침내 웃음이 멈춰지자 나는 아까와 다르게 행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 술좀 먹어야 겠다.”







-다음화 예고-
랑해를 찾아온 랑이.
막장대사를 내뱉는 랑이.
과연 랑해의 선택은?

4
이번 화 신고 2017-06-01 00:37 | 조회 : 3,480 목록
작가의 말
얌얌이보고픔

랑이와 치환 사이에서 쓰다듬 받고있는 랑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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