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탄생일(7)




보랏빛 눈동자가 자신을 덮쳐온다. 그 차가운 손길로 양 볼을 감싸 안은 채, 억지로 입을 벌린다. '데리러 올게-.' '입 벌려.' '다리 잘라 버리기 전에 버둥거리는 거 멈추는 게 좋아.'


징그럽게도 그 살벌한 손이 자신을 덮친다.






싫어. 싫어...



리안은 그 손길에서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그러나 그 손은 어둠속에서 은빛과 함께 자신을 더욱 깊게 잡아당길 뿐이었다.




"헉...!"




리안은 눈을 뜨곤, 크게 위 아래로 심호흡을 했다. 온 몸이 눅눅하게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익숙한 시원한 밤바람이 땀에 젖은 리안의 하얀 머릿결을 훑고 지나갔다. 마인이 인상을 한 번 찌푸리곤 눈을 떴다.






"....리안?"


"아.. 마인. 죄송해요. 깼습니까..?"




마인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리안을 품에 안았다. 자신의 불찰이다. 좀 더 곁에서 지켜봤더라면. 조금 더 빨리 리안을 찾았다면.

처음 봤다.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여유롭던 리안이 그렇게까지 겁에 질린 채 널부러져 있던 것은. 그 이후로 일주일이나 지났건만, 리안은 종종 악몽을 꾸곤 이렇게 일어나곤 했다.




"괜찮은 건가?"


"네, 그냥 악몽을 좀 꿔서..."




리안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마인은 한숨을 내쉬곤 리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꽉 끌어 안았다. 어느덧 피곤했는지 리안의 편해진 숨소리가 새근새근, 심장의 고동에 맞춰 울렸다.





"이번엔, 절대 안 놔준다. 망할 이드."



마인의 눈빛이 차갑고 깊은 심연속으로 내려 앉았다.








***








"으음... 리안."




마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으며 눈을 떴다. 그러나 리안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설마, 설마....!




마인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따듯한 햇살이 어느새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때 메리나가 방 문을 두 번 두드리곤 들어왔다.





"앗, 황제 폐하...!"



메리나는 예상과는 다르게 벌써 일어나 있는 마인을 보곤 깜작 놀라며 허리를 숙였다. 마인은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리안은?"



그러나 메리나는 마인의 눈을 피하며 어색한 말투로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 그으-... 서재에 가셨습니다, 하핫.."


"서재라고?"




마인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시금 침대에 풀썩 주저 앉았다. 메리나가 서둘러 주제를 바꾸려는 듯 총총거리며 다가왔다.


"재상님께서 탄생일 준비로 바쁘시다고, 알아서 회의에 참석하시라고 하세요."



"후..... 그래."





마인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것을 신호로 줄줄이 방으로 시녀들이 옷들을 들고왔다. 마인의 뚱한 표정에, 시녀들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서둘러 가운을 벗기곤 옷을 입혔다.



'착각이 아니야.'




마인은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집어 삼켰다. 리안이 돌아온 일주일 간, 그가 계속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확신에 들고 있었다. 밤에 함께 잘 때를 빼곤 거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왜냐. 왜 피하는 거야.




"..짜증나는군."




마인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시녀들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녀들은 어색한 몸짓으로 서둘러 옷을 입혔다. 시녀들의 목덜미엔 어느덧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부탁해요, 황제껜 제가 ---하는 걸 비밀로 해주세요.'



그녀들은 몇 번이고 당부한 리안의 부탁을 떠올리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덧 제대로 된 제복을 갖춘 마인은 머리를 손질하는 시녀들의 손길을 물리곤 성큼성큼 잔뜩 토라진 듯한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








"후... 아직도 연습이 부족해."


리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검을 고쳐 잡았다. 미차드는 질기다는 듯 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차가운 얼음이 담긴 음료를 들이켰다. 벌써 몇 분이나 저러고 있다. 이미 리안의 등은 땀으로 줄럭 젖어 있었다.



리안은 다시 검을 내지르다가, 또다시 멈추곤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날 이후, 콘들이 사죄의 표시로 비루와 가발과 다양한 종류의 장신구를 사들고 왔었다. 그제야 제대로 된 연습을 하게 되었건만, 이상하게도 비루가 작용하지 않는다.





"어째서지...."




리안은 손가락에 낀, 푸른빛이 나는 반지 모양의 구슬을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자신도 이것을 사용하는 것은 무척이나 오랜만인데다, 웨리아의 사용법은 잊은지 오래다. 그것이 문제인지, 비루는 좀처럼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내일이 탄생일이건만 이대로면 꽤 곤란하다. 누군가 비루 사용법을 제대로 아는 이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리안님-."






리안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늘 그렇듯 옅은 미소를 지어주고 있는 카인이 보였다.




그래. 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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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19 21:59 | 조회 : 3,076 목록
작가의 말
렌테

완결이 점점 가까워져 오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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