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프롤로그


[소설 속 야구는 현실 야구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모든 학교, 사람, 내용 등은 허구입니다.]


*투수(pitcher): 야구에서 내야의 중앙에 위치한 마운드에서 타자에게 공을 던지는 역할을 맡은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수비를 맡은 팀에서 투수의 공을 받아내는 포수(catcher, 캐처)와 호흡을 맞추어 경기를 한다. 야구에서 투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거의 경기의 승패를 가리는 역할이라고 평가한다.



0. 프롤로그


“후하후하”

어느새 추운 겨울이 훌쩍 지나가고 야구하기 좋은 따뜻한 봄이 왔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한국고 정문. 아오 긴장된다. 드디어 도훈이형이 있는 한국고에 입학했다.

오늘은 2월 27일.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쳐서 그런지 약간 눈이 뻑뻑하고, 몸에 한기가 좀 드는 것 같지만 그건 내가 긴장해서 일지도.

20분 동안 학교 정문 앞에서 왼손으로는 캐리어를, 오른손은 심장에 얹고 가만히 서서 심호흡만 내뱉고 있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자,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이다. 백보현 잘해보자!


내 이름은 백보현. 나이는 파릇파릇한 열일곱. 한국중을 졸업하고, 한국고에 왔다. 꿈은 프로야구선수다. 내가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 중학교 1학년 여름까지만 해도 나는 야구보단 축구를 좋아하는 일반 학생이었다. 아버지가 전직 야구선수에 현직 고교야구감독이었지만 나는 야구에 쥐꼬리만큼도 관심이 없어서 야구는 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3학년 3월경에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

개교기념일이라 집에서 할 일 없이 누워서 옆으로 데구르르 구르며 속편하게 빈둥빈둥 거리고 있었는데, 따르릉 집 전화가 울렸다.

처음에는 모르는 번호라 안 받았는데 다섯 번이나 울리길래 짜증나서 받으니 달칵 소리와 함께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냐는 아버지의 호통이 들려왔다. 모르는 번호여서 그랬다는 내 변명에 아버지가 핸드폰을 두고 갔으니 가져다 달라고 얘기했다. 귀찮음이 한껏 담긴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하고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한국고 야구부를 찾아갔다.

“아씨, 어디에 있는 거야.”

버스에서 내린 후, 보이지 않는 한국고 정문을 찾으려고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길을 헤매고 있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톡톡 어깨를 건드렸다.

“저기, 길 잃어버렸어요?”

갑자기 들려오는 듣기 좋은 미성에 퍼뜩 놀라 뒤를 돌아보니 한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나보다 머리하나는 더 큰 키(대략 183이지 않을까 싶었다.), 살짝 마른 나와는 다르게 탄탄한 몸매, 적당히 하얀 피부와 수려한 이목구비, 살살 부는 봄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약간 밝은 갈색머리카락.

방금 TV에 나오는 그 어느 연예인보다 잘생긴 존잘님이 내 앞에 있었다. 뒤에서 후광도 비치는 것 같았다.

“헐, 존잘.”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나는 깜짝 놀라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 그에게 어설프게 웃어주며 어찌해야하나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 결국 이도저도 못하고 당황해서 얼굴이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자 고개를 푹 수그려버렸다.

“풉”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슬그머니 들어 나의 존잘님(?)을 바라보니 그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입을 가리고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생물체가 존재했다니. 나 오늘 계 탄 건가. 아님 이거 꿈인 건가.

내 생애 이상형을 만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어서 손바닥으로 내 따귀를 내려쳤다. 잘생긴 그분의 얼굴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힘 조절을 실패하고 풀스윙으로 내 뺨을 때렸다. 짜악-. 소리가 장난 아니었다.

“악!”

젠장. 겁나게 아픈 걸 보니까 꿈은 아니다.

“…왜 그래요? 괜찮아요?”

많이 아파보였는지 그는 자기가 맞은 것처럼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너무 세게 치는 바람에 새빨갛게 부어오른 내 볼을 그가 조심스레 만져주었다.

윽. 안 돼. 정신 차리자 백보현. 존잘님이야 무려 꿈에서만 보던 내 이상형님이라고. 병신처럼 보이면 안 돼.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 괜찮냐는 물음에 답을 해주기 위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부끄러웠다. 몸을 한껏 웅크리고 수줍어 달아오른 얼굴을 두 손에 파묻었다. 그래도 그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손을 내리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괜탆…아요.”

아씨, 혀 씹었어.

욱신거리는 볼을 무시하고 괜찮은 척하며 눈웃음을 살살 쳤더니 그가 아까의 내 방정맞음을 모른 척하고 매너 좋게 웃었다.

“그런데 어디 가는 거예요? 길 찾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크으 감미로워라. 아 하나님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아…한국고에…….”

한국고에 간다는 내 말에 씨익 웃더니 자기도 가는 길이니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와……진심 나 오늘 내 평생에 운을 다 써먹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고는 왜요? 형 만나러 왔어요?”

아뇨. 그쪽 보러왔어요.

“아니요, 아버지가 한국고에 계셔서 심부름 때문에 가는 거예요.”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해주고, 슬쩍 반달웃음을 지으며 또 한 번 백보현식 살인미소를 보여주었다. 아, 나는 전생에 여우였던 건가.

“아 아버지께서 혹시 한국고 선생님이세요?”

흐흐 고놈 참 들으면 들을수록 목소리가 좋구만. 야구부 감독이면…뭐, 선생님이랑 비슷한 거겠지? 그러고 보니 존잘님께서 입고 있는 상의의 앞에는 Hankook이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유니폼인 것 같은데…. 엑, 설마 야구부?

“아…그게……. 그런데 그쪽은 혹시 야구부세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슬쩍 손가락을 들어 옷을 가리키자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보였다.

“아…. 나 유니폼입고 있었구나. 내가 바보 같았네요. 하하 아, 그쪽이라고 부르지 말고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요. 나는 우도훈이에요.”

어느덧 정문이 보였다. 헤어지기 전에 내 이름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내 이름을 말하려고 하자마자 의아한 기색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훈이 형?”

“어? 도야야! 밖에서 뭐해?”

“형이 안 오니까 그랬지. 다들 기다리고 있어. 청백전 한대.”

힐끗.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도훈이형을 바라보는 짙은 밤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남자. 잘생기긴 했는데, 와… 눈빛보소. 지리겠네. 으으 저런 까칠하고 사나운 스타일은 딱 질색이야. 난 다정한 사람이 좋단 말씀.

“누구?”

“아, 길 잃어버린 꼬마님.”

엑…꼬마라니!! 이래봬도 많이 큰 건데…. ……흑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아줘요 나도 당신이 반할만큼 멋있는 남자로 보이고 싶다고요!

“…노닥거리지 말고 얼른 가자. 경기 시작한다고.”

“네네 동생님. 아, 어…이름을 못 물어봤네요. 이름이 뭐예요?”

사락사락 옷자락이 지나가는 것처럼 부드럽고도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수줍게 내 이름을 말했다.

“보현…백보현예요.”

그는 예쁜 이름이라며 맑게 웃어주었다. 그 미소는 내 심장을 강타하고 지나갔다. 마치 그의 첫인상이 내 마음에 강렬히 새겨졌던 것처럼. 나도 모르게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 위의 옷자락을 오른손으로 꽈악 움켜쥐었다.

“그럼 보현씨, 잘가요. 나는 이만 시합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

뚫어져라 쳐다보며 멍하니 서있는 내게 그는 손을 좌우로 휙휙 흔들어주며 안녕을 고했다.

내 님이여 가지마세요. 크흡. 나의 님(?)은 무심한 남자와 함께 야구장 쪽으로 사라졌다.

“…아씨, 심장 떨려. 용량초과야. 휴우….”

아직도 발광 하는 내 심장을 토닥여 준 후 나도 그들이 가버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물론 내가 우리 도훈님을 따라가는 건 아니고…. 아니, 진짜 아니라니까? 난 우리 존경스러운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휴대폰을 갖고 오라’는 말씀을 받들어야 하기 때문에…. 하하하하……….

왁자지껄한 야구장 쪽으로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걸어갔다. 경기가 시작되었는지 11명의 사람들이 그라운드에 서있었다. 수비팀 9명과 1루에 한 사람, 타자석에 한 사람. 도훈님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며 더그아웃(벤치)를 살펴보았는데 도훈님이 아버지 뒤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버지는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앉아서 선수들의 투구 수나 타격폼, 투구 폼의 지적할 것을 노트에 적고 계신 것 같았다.

“아부지~”

상큼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르며 다가갔다. 물론 나의 도훈님이 아버지 근처에 있으니까 하하.

“왔냐? 뭐하느라 이리 늦었어?”

“처음 와 보는데 길을 잃어서 말이죠. 헤헤 어쨌든 잘 찾아왔잖아요~”

친근한 두 부자의 대화에 도훈님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픽 웃으시더니, 경기나 구경하고 가라고 하셨다.

앗싸! 아부지 나이스~ 나야 뭐, 기회라는 생각으로 잽싸게 아버지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감독님 아드님이세요?”

“어. 말 죽어라 안 들어 쳐 먹는 놈이다.”

“에이 아버지도 참.”

또 궁금한 게 있었는지 입을 열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타이밍 좋게 옆에서 ‘주장! 공수교대예요.’라는 말을 들려왔다. 그는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을 깨닫고 글러브를 챙기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나의 도훈님은 다정히 웃으며 경기 잘 보고 있으라고 말하곤 그라운드로 가볍게 뛰어갔다. 몇 번의 연습투구를 던지고는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처음 보는 도훈님의 투구.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퍼억. 공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시원한 미트소리를 내며 포수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그 후, 2구와 3구도 1구처럼 쭉쭉 뻗으며 포수의 글러브에 정확히 들어갔다. 마치, ‘내가 들어갈 곳은 여기뿐이야!’라고 공이 주장하는 것만 같았다. 보는 사람도 속 시원해지는 속구에 주심은 연달아 스트라이크를 외쳤다. 결국 백팀의 첫 번째 타자는 배트를 휘두르지도 못하고 삼진아웃이 되었다.

깔끔한 투구 폼과 빠른 직구. 그라운드의 그는 내가 아는 그와 달랐다. 다정하고 상냥했던 모습은 온대간대 없었다. 마치 굶주린 사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먹이를 노리는 것 같았다. 그는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 압도되어 타자는 배트를 휘두를 생각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와인드업을 취하고 공을 던지려는 그 순간, 그는 그라운드의 왕이었다. 형형한 눈빛으로 타자를 내리 누르는 강자였다.

“와……아부지. …나 야구배울까?”

“진작에 하라고 해도 질색팔색하며 싫다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는….”

“…아니……. 그냥 도훈이형이 하는 거 보니까 멋있어서.”

“네가? 너 야구는 어려워서 싫다며. 축구 외에는 관심도 없던 놈이 왜이래? 너 뭐 잘못 먹었냐?”

“아우씨!! 나도 마음이 갑자기…어?!…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거지!! …쳇.”

“건방지게 아비 앞에서 혀 차지 마라 이놈아. 뭐, 아비 말 잘 듣는다고 각서 쓰면 못 가르쳐줄 것도 없지.”

……각서?…뭔가 불안한데…. 그래도 도훈님의 곁에 있으려면 도훈님처럼 되려면 그래야겠지? 좋아! 오늘부터 특훈이다. 까짓것 각서 쓰지 뭐. 도훈님 조금만 기다려줘요. 금방 따라갈 테니까.

그게 내 야구의 시작이었다.



▷더그아웃(dug out) : 야구장에 마련된 감독, 선수, 교체선수 등의 대기석. 벤치라고도 부름.
▷투구 수 : 타자를 상대로 해서 던진 공의 합계 수.
▷투구 폼(pitching form) : 투구 동작의 전체적 구도와, 투구 동작에 나타나는 개인적 습성이나 특징. 피칭 폼이라고도 부름.
▷타격 폼(batting form) : 타자가 백스윙 상태에서 스윙을 시동하여 배트로 투구를 때린 다음, 폴로스루를 끝마치기까지 연속 동작의 전체적 모양새. 배팅 폼이라고도 부름.
▷투구 : 야구나 볼링 따위에서, 공을 던짐. 또는 그 공.
▷직구(直球): 야구에서 변화구가 아닌 것을 의미하며, 속구(速球) 또는 패스트볼(Fastball)이라고도 부른다. 야구에서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투구의 구종으로서 다른 구종에 비해 가장 직선에 가깝고 빠르게 날아가는 공이다.
▷삼진아웃(strike out): 타자는 헛스윙, 그냥 보냄, 스리 번트 파울, 하프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과 같은 경우에 삼진으로 아웃이 된다. 스트라이크 아웃과 유사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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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1-27 22:43 | 조회 : 1,400 목록
작가의 말
이하또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이하또가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좀 빠르게 찾아왔죠? 30일날 첫 연재 시작한다고 했지만 그냥 오늘 왔어요~ 앞으로 제 새 작품 '푸른봄배터리' 잘 부탁드립니다! 푸른봄배터리는 기본적으로 주1회 주말연재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자주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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