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1년의 공백-하늘(완)

카르가 돌아온지 4일이 지났다.

"그렇게 좋아?"
"응."

내가 준 팔찌를 어제 부터 계속 하염 없이 보고 있다.

"진짜 행복해."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건 처음이랄까?

"강화 마법으로 왠만하면 안 망가질건 알지만 그래도 손을 못대겠어. 이거 망가지면 나 진짜 울 것 같거든."

어제 아침부터 지금까지 보기만 하고 손도 안댄건 그거 때문이었냐?

"혹시 망가져도 또 만들어 주면 되잖아. 그러니까 마음껏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음... 그래도.."

오늘 처음 보는 카르가 많은 것 같다. 저렇게나 조심스러운 태도라니.

"지금 네 표정이 어떤지 알아?"

그런 카르를 관찰하다가 말을 툭 하고 뱉었다. 그러자 카르는 팔찌에서 눈을 때고 나를 봤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야. 이게 꿈인가? 하는 표정. 그 팔찌가 망가질까봐 못건드는게 아니라 그 꿈에서 깨어날까봐 못건드리겠다는 표정."
"!!!!"

꽤나 놀란 표정. 흐응... 사실이란 건가?

"지금 이거 꿈 아니야. 대체 그 팔찌가 뭐라고 그런 표정까지 짓냐?"

저렇게 좋아하는 카르를 보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안 좋다. 내가 평소에 그렇게 믿음을 못줬나?

"이거 먕가지면 형이 또 만들어 줄거야?"
"당연하지."
"언제든?"
"응."

카르는 어쩐지 확신을 받고 싶어 하는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확신을 깰 만한 행동을 두 번 한것 같은데.. 흠, 그래도 그것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좀 심한데.

고개를 기울이고 눈을 가느다랗게 떠 다시 멍하게 팔찌를 보고있는 카르를 관찰했다.


과거를 되짚어 보면 카르는 처음부터 나를 좋아했다.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떠날까봐 혹은 저를 사랑하지 않을가봐 불안 해 하는건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 과거가 뭘까?'



처음으로 카르의 과거가 궁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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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는 베란다에 기대 여전히 팔찌에 빠져들어 있고 나는 쇼파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면서 있었다. 그러다가 초인종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몇 시간 전에 연락 왔던 택배인것 같다.



노트북을 내려 놓고 일어 서려는데 카르가 베란다에서 훅 들어왔다. 어제를 합쳐서 제일 큰 행동이다.


"카르?"
"형. 내가 받을게."
"네가? 음. 그래."
"형."
"응?"
"코코아 좀 타주라"
"지금?"
"응. 지금."


카르는 코코아를 타러 가지 않으면 문을 열지 않겠다는 태도로 빙긋 웃으면서 서 있다. 그래서 이상함을 느끼며 일단 코코아를 타러 갔다.

내가 주방에 들어서자 그제야 택배를 받으로 갔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네."
"아이구.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저기, 하늘씨는 안계신가요?"


왠지 모를 불길함.


"네가 왜 궁금해."
"....예? 아니, 저기...."


카르의 살기 어린 목소리에 한 숨을 쉬며 포트를 올리고 주방을 나섰다. 그리고 바로 현관으로 직행했다.


"오랜만이네요."
"하하! 오랜만입니다. 저기.... 이거."


이 사람은 오랫동안 내 부탁을 들어 주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단 카르를 뒤로 재쳐두고 내가 나와서 인사를 하고 또 다른 물건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아저씨는 산뜻한 미소를 짓고 다시 돌아갔고 나는 한 숨을 쉬며 문을 닫았다.


"형. 아는 사람이야?"
"응."


카르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가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쇼파에 앉았다.


이상한데. 왜 굳이 멀리있던 네가 받는다고 했을까? 흐응.. 내가 예민한건가?


묘한 느낌에 상념에 젖으려는 찰나 물이 끓었고 주방으로 가서 따뜻한 물을 컵에 던 후 코코아를 탔다. 티스푼으로 휘휘 저으면서 슬쩍 뒤를 돌아봤다.


카르는 여전히 팔찌를 보고 있다.


이번에는 더 넓게 상황을 훑었다. 집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거실. 하지만 주방은 보이지 않는다.


"코코아."


새삼스럽게 집 구조를 훑으면서 카르에게 코코아를 건넸다. 카르는 고맙다고 하며 코코아를 받아들였고 곧 홀짝 마셨다.



집에는 다시 침묵이 내려 앉았다. 그런데 기분 좋은 침묵이 아니라 거슬리는 침묵이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려 또 주문을 했다. 나와 카르가 좋아하는 라면들.

라면을 끝으로 볼 일은 다 봤으므로 인터넷 창을 닫고 노트북도 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옆을 봤는데 현관이 보인다. 그런데 현관 옆에 당연히 있어야 할 테트리스 마냥 쌓인 박스들이 보이지 않는다.


"카르야."
"응."
"네가 박스들 치웠어?"
"응."


이상한데. 진짜 이상한데.


"왜?"


내 물음에 카르는 팔찌에서 눈을 돌렸다. 그러자 나와 카르의 눈이 마주쳤고 그제야 이상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 알았구나 형."


내가 알아챔과 동시에 카르또한 내가 알아챘다는 것을 눈치챘다. 카르의 눈이 잠깐 떨렸다가 착 가라앉았다.


"진짜 눈치 빨라 우리 형."


허탈한 목소리와 함께 축 늘어지는 팔찌를 찬 손.


"카르."
".... 잘못했어."


시무룩한 목소리.


"팔찌."
".... 싫어."
"줘."
"싫어!"


힘 없이 늘어져 있던 카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느세 동공은 길게 찢어져 있고 이빨은 날카롭게 변했다. 아기를 보호하려는 어미처럼 으르렁 거리는 카르.


"줘. 카르."


그러다가 점점 울상으로 변하더니 팔찌를 풀어서 떨리는 손으로 내게 줬다.


"이건 압수."
"그거 줘.. "


카르는 내 소매를 잡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요구 했다. 그렇게도 이 팔찌가 소중할까.


"카르."


단호하게 그를 불렀다. 그러자 흠칫 하면서 손을 때는 카르.


그런 그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 올려 나와 눈을 마주치게 했다.


"어제부터 계속 나 재쳐두고 팔찌에만 정신 팔려 있으니까 이건 압수야."
"....?"


카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나는 불만에 찬 목소리로 팔찌를 흔들었다.


"나도 질투난다 카르야. 이거 준건 난데 왜 얘랑 사랑에 빠진것 처럼 굴고 있어?"


...... 솔직히 이거 진짜 불만이었다고.


"이거 때문에 형이랑 놀아주지도 않고. 이건 이틀동안 압수."


카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내 팔에 채웠다. 그 동안 카르는 멍하니 팔찌의 궤적을 쫓았다.


"어허. 형 봐야지. 어딜 봐."


내 다정한 다그침에 그제야 내게 다시 눈을 돌리는 카르.


이거 진짜 질투나네. 확 일주일 압수 해버릴까?


"형 화 안났어?"
"내가? 내가 왜?"


압수 기간 변경에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카르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의 질문은 정말 이해가 안가는 질문이었다.

화 날 일이 있었나?


아. 알겠다.


"형은. 집착 하고 가둬두는거 싫어하잖아."
"당연히 싫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싫을 뿐일까 집착과 그로인한 감금은 경멸스럽기 까지 한다.


"내가 형을 다른 사람한테 보이기 싫어서 접점 자체를 없앤거 눈치 챘잖아."
"내가 너한테 그러면 넌 싫어?"
"아니."
"응. 나도 그래. 남들이 하는건 싫지만 네가 하는건 괜찮아."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카르 옆에 앉아서 그를 끌어 안았다. 키가 다 컸는데도 나보다 11cm나 작다. 그런데도 역시 성인이라는 걸까. 옛날처럼 품에 쏙 들어와지지 않네


"내가 말했잖아. 너는 괜찮다고. 나를 떠나는것만 아니면 뭐든 괜찮다고 했잖아. 요녀석아."


카르는 침묵을 유지하다가 힘 없이 늘어졌던 팔을 들어 나를 꼭 끌어 안았다. 불안과 안도가 극에 달았던 것일까? 그 감정이 나에게 까지 스며들어 오는 같았다.


"너는 성인식을 치루고 오더니 더 어려져서 왔냐. 키도 조그만한게. 역시 내가 계속 공을 하는게 낫겠어."
"..... 형 뒷구명은 내꺼야. 그리고 내가 형보다 11cm밖에 안작거든?"
"쳇. 안넘어 오네."


카르가 잘게 웃기 시작했다. 기분이 좀 풀렸다는 걸까?


그런 그를 더 꼭 끌어 안았다. 그리고 검정색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네 과거가 뭐길래 이렇게 불안해 하는 걸까?'

눈을 감았다. 분명 넌 성인식을 하러 갔다가 마주치고 싶지 않은 과거와 마주쳤고 그로 인해서 이렇게 불안한 상태가 됐겠지. 과거. 그 과거가 대체 뭘까?




처음 네가 내게 와 준 그 날. 누군가에게 이 아이를 부탁받았다. 매달 천만원이란 거금을 주는 대신 돌봐 달라고. 그러나 천만원을 받을 만큼 돌볼 만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돌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돌보라는 것은 지키라는 것과 같았다. 과거로 부터 너를 지키라는 것.



그러니까 형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게. 그 과거 따위 개나 줘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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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01 17:59 | 조회 : 2,665 목록
작가의 말
뚠뚜니

여러분. 픨이 뙇!! 느껴지지 않습니까? 다음 화예요. 다음화. 다음 화가...! 읍읍!!(포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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