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서장님. 부르셨다고..”


말 끝을 흐리며 회색 머리의 평범한 남학생, ‘나가’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얼굴이 창백하고 식은땀도 흘리는 것을 봐서는 상당히 긴장한 것처럼 보인다.



“아, 나가.”


스푼의 서장 ‘다나’가 책상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나가를 맞이했다.



잘못 들으면 방에서 ‘나가’라는 표현으로 들릴 법도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저따위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진 나가는 서장 앞에서 부동 자세를 취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 과잉진압으로 신고라도 받은 걸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가의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그 ‘다나’가 칭찬을 하려고 부를 일은 아닐 터-사실 나가가 칭찬 받은 일을 할 리가 없기도 하지만- 십중 팔구 다나의 괴력으로 들려진 책상이나 기구들이 엄청난 속도로 나가에게 날아올 것이 뻔했다.




“내가 널 부른 이유는.”


나가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미 염력으로 주변에 베리어를 친
후였다. 나가는 자신의 목숨을 아낄 줄 알았다.


“스푼은 지금 전대미문의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건 나가도 아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엄청나게 바쁘게 일하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꺼렸지만, 요새 나가 너를 보니까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쓸 만한 애 좀 찾아서 데려와라. 학생도 괜찮아.
그렇지만 귀찮다고 아무나 데려오면...


“데..데려오면..?”


다나의 흉흉한 시선이 나가를 향했다. 나가는 배에 힘을 빡 주고, ‘아닙니다!’ 하고 소리질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가는 본인의 목숨이 소중했다.

.


.


.




“...그렇게 된거야.”



설명을 마치고 나가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음료를 홀짝거렸다.


바야흐로 오후 4시, 학교가 끝난 나가는 공식적으로는 스카우트 권유지반, 실상은 카페에서 친구들에게 처지를 한탄하는 중이었다.



“너네 직장말이야. 보험도 되고, 월급도 주고, 대학도 보내준다면서?’”



카멜레온 소년, 사하라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했다.



“응.”



“그럼 나 어떠냐, 특기도 투명화면 쓸만하지 않아? 투명인간이 되서 범죄자를 뙇 하고 잡는거지!”



나가는 손에 얼굴을 묻었다. 저 바보자식이.. 만약 그랬다면 내가 너에게 이미 말을 꺼냈겠지.



“너 몸만 투명해지는 거잖아. 옷은 벗어냐하는 거 아니냐.”



“괜찮아! 돈을 위해서라면 난 얼마든지 스트립쇼 할 수 있어! 어차피 안보이잖아?”



“특기자 중에는 특기를 무효화 시키는 사람도 있다고..”



나가는 폐암열차에 탑승한 임시 선생님, 듄을 떠올리며 말했다.



“...”



사하라의 몸이 굳었다.



“방금 한 말은 취소다..”



그렇게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


.


.


약 2시간 후, 아무런 진전 없는 대화를 마친 나가는 스푼 건물을 향해 힘없이 걸어갔다.



다나에게 명령을 받은지도 벌써 일주일 째, 당연하지만 나가는 그 누구도 스카웃 하지 못했고 이와 비례해서 다나의 짜증은 늘어갔다.



‘나가군.. 슬슬 위험해요.’



오직하면 다나의 비서, 귀능이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을까. 이대로 가면 나가의 미래는 뻔했다.



눈을 감아봐, 뭐가 보이니?
아무것도 안보이는데요?
그게 너 미래야ㅋ



좋아, 이렇게 된 이상 길거리에 있는 아무나 데려가야겠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가는 이렇게 생각하고 바쁘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젠장”




오늘따라 왜이렇게 사람이 없는지. 개미 꽁무니조차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가와 같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공사중인 건물 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귀찮으니까 건드리면 죽여버릴 거야, 하는 포스를 내뿜고 있다는 것이다.


나가의 판단은 빨랐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서장님이다. 서장님을 진정시키는 게 더 급했다.



“저기요!!”



나가의 목소리가 꽤 컸던 모양니다. 여학생이 차가운 눈으로 나가를 쳐다봄과 동시에, 공사중인 인부가 집중력을 잃었다.



인부의 손이 미끄러졌고..



건축 자재들이 여학생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와르르르



-대형사고



..였겠지만, 여기는 세계관 공식 사기캐가 있다. 바다도 가르는 능력인데 고작 저런 철근 정도야 우습지. 나가는 염력을 사용하기 위해 자재를 들어올리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자재를 들어올렸다..?



“귀찮아.”



아니, 들어올리려고 했다. 허나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학생의 손짓과 동시에 자재가 모두 사라져버렸으니까. 들어올릴 게 없으니 특기도 필요가 없었다.



“아아. 그것들은 그냥 보관한거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소녀가 손짓하자 땅바닦에 자재들이 차곡차곡 쌓인 체로 나타났다.


“여기요. 다시 꺼냈어요. 딱히 다친 것도 없고, 귀찮으니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인부의 어리둥절한 눈동자와 나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뒤로 한 체, 여학생은 발걸음을 옮겼다.



“아, 그리고 그쪽은 죄송하지만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여학생은 나가의 부름을 작업정도로 생각한 듯 하다.
고백도 안 했는데 차였으니 평소의 나가는 억울해서 팔짝 뛰었겠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기.! 그게 아니라!”



“안사요. 무신론자입니다.”



“히어로가 되지 않으실래요?!”




미친 놈을 바라보는 듯한 눈길을 듬뿍 받으며, 예정된 죽음을 피한 나가는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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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0-10 22:07 | 조회 : 1,438 목록
작가의 말
눈꽃쿠키

여주이름 추천해주세요! 반응연재입니다(내년 11월에 올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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