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부탁

전국적으로 난리가 난 사태로 인해 민운의 가족들은 간만에 모두 모였다.
그리고 그가 방 안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문 앞에서 화를 내도, 위로를 해도, 그는 나오지 않았다.

3일 째가 돼서도 그는 나오지 않았다.
방 문 앞에 놔둔 음식도 그대로 있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회장은 더는 못 참겠다며, 방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억지로라도 밥은 먹여야 하지 않겠냐, 그래서 들어갔더니 이놈의 자식은 이미 해외로 몰래 도망친 후였다.”


회장은 이야기를 하다 말고 피식 웃었다.


“몰래 갔으면 몰래 다녀올 것이지, 웃기는 게 뭔 줄 아냐?”


그는 가족들 몰래 떠나고 나서, 매일 밤마다 가족에게 안부전화나 문자를 한 것이다.


“내겐 안했지만, 지 형이나 동생에게 나까지도 물었다는 군.”

“걱정돼서요?”

“그래. 민운이 걔는 그 일 이후, 병적일 만큼이나 주위 사람을 챙겼어. 모두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나마 편하게 잠에 들 수 있었지.”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 연우에게 흘리듯 말한 적이 있다.
자신도 그렇다고.

그는 아직까지도 주변 사람들 모두 멀쩡할 걸 알면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한 것이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했다.



“옆에 있으면 더 심각해. 어디 나가려고만 하면 어디 가냐, 같이 가자, 이러고 나갔다 들어오면 어딜 다녀온 거냐, 왜 말도 없이 갔냐……그랬다는 구나.”



연우도 그와 같이 생활하면서 많이 겪어본 일이었다.

처음 공원까지 쫓아온 날도 이 때문이었고,
잠깐 나가는 것도 모두 물어본 이유도,
아줌마가 그에게 아무 말 없이 나가는 일이 없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괜찮아진 것 같더군. 안부 묻는 게 예전에 비해 조금 뜸해졌다고 하니까. 동생과는 아직 매일 전화하고 있는 것 같다만.”



게다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길, 테오와 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며 온갖 기부 활동을 해왔다.
심장병 환자, 에이즈 환자, 고치기 힘든 병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수익의 절반 가까이를 모두 기부에 썼다.
또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을 직접 보게 되면 반드시 도운다고 한다.



회장은 팔짱을 꼈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가 그 놈을 이해하고 생각을 바꾼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나래 기업이다.”

“도련님 회사요?”



“그거, 민운이 그 아이의 꿈을 대신 이뤄 만들어낸 거다.”


“……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거대한 회사가 한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라니.



“자신이 하던 사업도 있기야 하지. 중간에 전통한복도 만들기 시작했던 게 바로 그 때문이야. 걘 원래 할 생각도 없었어.”



그는 여행을 다녀와서 한국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가 한국에 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강 비서 또한 한국으로 왔다.
그는 옆에서 많이 외롭고 슬퍼할 그를 위로해주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지. 어린 나이에 성정체성이 헷갈려서, 철없이 그냥 가볍게 사귀어 본 게 아니라, 서로를 진심으로 생각했었다는 것을…….”


밤을 새며 공부를 하고, 천을 다루고, 미싱을 돌렸다.
잠도 자지 않고 디자인을 하고, 한 회사의 대표로서 역할을 다했다.


“난 못한다. 난 그렇게 못해.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평생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는 있어도, 자신의 꿈과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죽은 이의 꿈을 대신 이루고 그 인생을 대신 사는 건 못하겠다고 99%가 그렇게 말할 거다.”







‘도련님이 그만큼이나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건 알겠어…….’

연우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왜 날 불러낸 거고, 왜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건지 모르겠다…….’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 회장에게 그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들으면서, 그가 자신을 거둬줬던 이유와 그동안 유독 잘해줬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바로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 회장이 자신을 불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회장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회장이 말했다.



“네가 그런 놈을 바꿔 놓았다.”

“……제가요?”


“일주일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병적으로 우리를 걱정하고, 사람을 돕고, 2년 만에 꿈을 대신 이룬 놈을 네가 바꿔 놓았다는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강 비서가 그러더구나. 널 만난 이후로 집이고 회사고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마지못해 웃고, 예의상 웃던 놈이 진심으로 웃기 시작했다고.”


흥분해서 영어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매일 기계처럼 공부만 하고, 일만 하고, 일부러 온갖 직책을 떠맡고, 여유도 쉬는 것도 모르던 애가 이젠 사람처럼 지각도 하고, 쉬고, 실수도 한다고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하더라.”


회장은 너무 급하게 말해서인지 말을 마친 후 숨을 고르고,
이제는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게 다 네 덕분이라는 거다.”


회장은 감사함에 미소를 지었다.


“쉬운 일이 아니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조금 탁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빈 커피잔을 옆으로 살짝 치웠다.


“네가 슬픔을 잊게 하고,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는 거란다.”


연우는 가슴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은 있었어도,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된 적은 없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말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무언가가 울려 퍼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난 내 가족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놈이다. 그래서 이 말, 염치없이 들릴 지도 모르고, 부담스럽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회장은 연우의 손을 잡았다.


“민운은 이제 너 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간곡하게 말했다.



“부디 옆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슬플 때든 행복할 때든 같이 있어 달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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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07 01:13 | 조회 : 2,206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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