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첫만남(1)

- 2015년 10월 2일 금요일


10월에 왠 일인지 예고도 없이 비가 내렸다. 아직 오후 5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늘은 어두웠고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어찌나 비가 쏟아 내리던지, 집 앞의 넓은 마당에는 물웅덩이가 여러 개 생겼고, 빗물 때문에 창문 밖도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한 중년의 여자는 창문 밖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부엌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말했다.

“어머, 계란이 다 떨어졌네. 하필이면 이런 날씨에…….”

그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한 남자가 겉옷을 입으며 2층에서 내려오더니 말했다.

“비 오니까 제가 사올 게요, 아줌마.”



그 남자는 후드 티에 두꺼운 자켓을 입고 큼직한 우산을 쓰고서 집을 나섰다.
마당을 지나, 대문 밖으로 나가서, 슈퍼에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그는 지름길인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몇 분이 지났을까, 골목길의 낮은 계단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계단에 점점 가까워지니, 어떤 사람이 계단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남자는 그 뒷모습을 더 자세히 봤다. 얇은 셔츠 하나만 입고 추위에 덜덜 떠는 것만 같았다.


‘몸집이 작은 것을 보니 어린 아이인가?’


남자는 소년에게 다가가 몸을 낮췄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얼굴이 살짝 야위었고 얼굴이 조금 다친 것 같았다. 게다가 비에 홀딱 젖은 셔츠에 비친 팔뚝에도 크게 멍 자국이 보였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소년은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신경 꺼 달라는 듯이 몸을 더 움츠렸다.

“괜찮아? 다친 것 같은데…….”
“…….”

소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옆의 벽으로 몸을 돌린 채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다.

“가출이라도 한 거야?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텐데, 돌아가는게 어때?”

남자는 소년에게 우산을 기울여줬다. 그의 호의에 소년은 남자의 얼굴을 잠깐 올려다봤다. 하지만 또 홱,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소년의 목소리는 모습과는 다르게 꽤 성숙했다.

“신경 쓰지 말고 갈 길 가세요…….”

소년은 추위를 참으며 말했다. 하지만 소년의 의사와는 다르게 몸은 계속해서 떨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남자는 겉옷을 벗었다.

“…….어떻게 신경을 안써? 자, 이거 입어. 입고있던 거라서 더 따뜻해.”

남자는 살짝 웃으며 자신의 겉옷을 소년의 어깨에 걸쳐줬다.

“……. 저한테 이러실 필요 없어요. 그냥 가세요.”

소년이 겉옷을 다시 주려고 하자, 남자는 소년의 손목을 붙잡고 그냥 입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년은 깜짝 놀라 손을 뒤로 뺐다. 아무래도 몸에 손대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찰나였지만 그 짧은 순간에 소년의 얼굴에 다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한쪽 눈은 핏줄이 터진 듯했고, 입술에도 피가 말라 있었다. 왼쪽 볼은 어딘가에 쓸린 것만 같았고, 팔뚝만이 아니라 빗물에 속이 약간 비친 셔츠 안 소년의 몸도 상처투성이였다.

“어디서 이렇게 다친 거야?일단 상처부터 치료 해야겠는데…….”
“그냥 가세요.”

소년은 까칠하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남자도 그것을 눈치채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도움이라도 요청해. 아니다, 우리 집에 잠깐 올래? 저기 위에 한옥집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집이거든. 상처 치료 해줄게.”

남자는 소년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소년의 싫은 의사는 분명했다.

“싫어요. 그냥 가세요.”
“그래, 뭐.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갈 생각은 없어. 난 그럼 간다?”

남자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소년의 손에 우산을 쥐어 줬다. 그러고 후드 티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소년과 점점 멀어져 갔다.
소년은 그 남자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를 멍하니 보기만 했다. 남자는 골목길을 빠져나오고 슈퍼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와 연락을 취했다.


“이대로 물러설 내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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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09 00:24 | 조회 : 5,465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조금 전개가 느릴 거에요ㅎㅎ....아이의 나이는 대략 7화 정도 후에...? Q. 그렇다면 남자는 몇 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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