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10화

아. 세상이 빙글 빙글 돌기 시작한다.
바닥이 울렁거리고 마약을 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찔한 감각에 정신이 나갔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한성아아아 지진 났나바!"

혀도 꼬이고 발도 꼬여서 넘어질뻔 한걸 한성이가 잡아준다.

"아오 쫌!!!"

승질내는 한성이의 목소리가 골목을 울린다.
이상하다. 오늘은 술 얼마 안마신거 같은데..
아. 아니다. 오늘 누구랑 술을 마셨더라?

"한서아아."

"왜."

"우리 술 왜 마셔떠라~"

"과제 끝나서 동기들이랑 마시러 간거잖아! 아 쫌! 제대로 좀 걸어! 너 더럽게 무거워!!"

맞다. 오늘 일주일간 고생한 조별 과제가 끝나서 동기들끼리 술마시러 갔었다.
길고 길었던 과제에는 탈주자도 있었고 싸움도 있었고 갈아 엎기도 했었다.
그렇게 개고생했던 과제가 오늘 발표로 말끔하게 끝나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상하다아.."

"또 뭐가!"

"이호가 보여."

한참을 한성이에게 지탱해서 걸어가다가 익숙한 신발에 고개를 드니 이호가 보였다.
눈이 뿌해서 잘 안보이길래 눈을 부비작 거리고 다시 보니 역시나 이호였다.

"니가 전화했잖아."

한심하다는 듯이 한성이가 옆에 서서 말한다.

"아! 그랬나!"

싱글벙글 술이 들어가니 세상이 행복해서 달려가서 이호의 품에 안겼다.

"따끈따끈해서 기분조아~"

품안에서 부비작 거리자 살짝 나를 안아준 이호는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큰 손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졸음이 밀려왔다.

"미안해. 쌓인게 많은지 안멈추더라고."

"괜찮아요.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조심해서 가."

"형도 조심해서 가세요."

한성이가 가고 이호는 나를 업어줬다.
여전히 크고 따뜻한 등에 얼굴을 묻고 안전하게 집으로 옮겨졌다.

"우웅..?"

눈을 뜨니 이호가 셔츠를 푸르고 있었다.

"뭐해?"

"옷 갈아입히려구요. 할 수 있으면 형이 해요."

손이 멈췄다. 그대로 이호의 얼굴을 보자 약간 붉어진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술취해서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싫어~ 술먹었는걸. 이호가 해줘."

베시시 웃으며 폭신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형... 그렇게 돌아버리면 못갈아입잖아요..."

당황한 이호의 목소리에 부드러운 베개랑 이별을 하고 다시 몸을 돌렸다.
이호는 다시 손을 들어 셔츠의 단추를 하나 둘 푸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풀러지는 단추를 멍하니 보다가 웃어버렸다.

"왜웃어요?"

"꼭 남자친구 같아서."

"예..?"

"이호는 여자친구 있어?"

내 말에 이호는 손을 멈추고 고민하는가 싶더니 되려 묻는다.

"어때 보이는데요?"

이호의 질문에 나 역시도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인기 많을거 같으니까 있지 않을까?"

내 대답에 이호는 내 볼을 살짝 잡아 늘리더니 말한다.

"인기 없어요."

상체를 살짝 일으키니 머리가 뱅글 뱅글 돌았다.
머리를 살짝 부여잡으니 이호가 걱정스레 손을 뻗어 내 허리를 잡아준다.

"이상하다. 이렇게 자상한데 왜?"

손을 뻗어 양손으로 이호의 양볼을 감쌌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요리도 잘하고 자상하고. 뭐하나 빠진게 없는데. 그치?"

이호가 내 왼쪽 손을 한손으로 잡는다.

"형. 지금 유혹하는거예요?"

아. 웃었다.
진짜 잘생긴 얼굴이다. 고양이 같이 날카로운 눈매로 살짝 눈웃음 지으니까 진짜 이쁘다.

"너 너무 예뻐."

이호가 굳었다.
할말이 많아 보였는데 입을 열지는 않았다.
도톰한 입술이 열리지 않자 오른손 엄지 손가락으로 이호의 입술을 쓰다듬었고 이호가 흠칫 한다.
그러나 저지하진 않아서 그냥 계속 만지작 거렸다.
부드러운 입술이 따뜻한 감촉이 기분이 좋았다.

"키스 해봤어?"

내 질문에 이호는 시선을 내 입술로 옮겼다 다시 눈을 마주치고 말한다.

"글쎄요."

애매한 대답에 괜히 심술을 부려본다.

"그럼 내가 알려줘야겠네. 형이니까."

스스로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자각도 없이 입술을 부딪혔다.
따뜻한 입술이, 놀란 눈이 모두 나를 향해 있다.
입술을 움직여 입을 벌리게 한다음 혀를 밀어넣었다.
입 안을 탐색하듯 천천히 혀를 움직였다. 까슬한 느낌의 혀를 쓸기도 하고 얽기도 하다 입 안 곳곳을 두드리듯 건드렸다.
그러다 문득 장난이 지나쳤다 싶어 떨어졌다.

"음.. 이게 아닌가.."

반응없는 이호를 가만히 보다가 괜한짓을 했다 생각하며 뒤로 쓰러져 자려고 했는데 이호가 내 팔을 잡아 목에 두르게 한 뒤 덮쳐왔다.

"으응..!"

순식간에 혀를 휘감고 주도권을 뺏어간다.
더이상 공간이 없는데 조금의 공간이라도 허락하고 싶지 않다는 듯 끈질길게 밀고 들어온다.

"흐응..! 응! 으으...!"

숨쉬기가 괴로웠지만 그거랑은 다르게 허리는 찌르르했고 몸에 힘은 풀려만 갔다.
이호의 목에 두르고 있던 팔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쓰러졌을 것이다.

"하아..이호..읍..응...!"

조금의 숨 돌릴 시간도 없이 이호는 달려들었다.

"하아... 하아..."

정신이 아득해질것만 같은 기분 속에서 이호는 왼쪽 손으로 내 아랫 입술을 눌러서 입을 벌린다.

"하아..?"

번들거리는 입술을 아까 내가 했던것처럼 매만지던 이호는 풀린 눈에 뜨거운 숨을 뱉어내는 나와 눈을 마주친다.

"형.."

"어..?"

잡아먹힐것만 같았다.
그 눈에 숨쉬는것도 잊어버린듯 멈춰버렸다.

"형..."

애타게 나를 부르던 녀석은 다시 입에 입을 맞추며 나를 뒤로 쓰러트렸다.
정말 가볍게 입술만 부딪히고 떨어진 녀석은 내 눈에 입맞추고 말한다.

"이제 그만 자요."

따뜻하고 포근한 기분에 눈을 감았다.
정신은 아득하니 멀어지고 세상이 깜깜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눈이 부셔서 일어났다.

"집이네.."

어제 어떻게 들어왔더라..?

"이호가..."

업어준거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뒤의 일이 기억이 안난다.

"으아... 또 진상짓한거 아니야...?"

이불에 얼굴을 묻고 있을때 방 안으로 이호가 꿀물을 들고 들어온다.

"속은 좀 괜찮아요?"

"으..응? 어.. 저기 이호야.."

"네."

"나 어제 얌전히 들어왔어..?"

이호는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불안하게만 느껴진다.

'이 진상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른거야!!'

"기억 안나요?"

이호가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오더니 침대에 걸터 앉아 내게 꿀물을 내밀며 말한다.

"어제 내가 좋다고 그랬잖아요."

"뭐..뭐..?"

꿀물을 받아들고 이호가 한말이 제대로 뇌에 입력이 안되서 다시 돌려봤다.

'으아.. 대체 무슨 말을 한거야..!! 아니지.. 형제로서 좋다고 한거겠지...!?'

"그..그럼! 우리 이호 착하고 잘생겼고 그리고.."

문득 쓰다듬어 주던 손이 기억이 났다.

"자상하지."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이호는 시선을 돌린다.

"형.."

그리고는 날 조용히 부르며 말한다.

"정말.. 이번만 봐주는거예요."

"어..어?"

"어디가서 술마실땐 꼭 저한테 말하고 마셔요."

"으..응.."

"해장국 끓였으니까 나와서 드세요."

"어..!? 고..고마워!"

이호가 방을 나가고 꿀물을 마시자 나를 향한 자책이 시작됐다.

'아빠가 재혼하시기 전엔 안이랬는데...'

"아니 이호를 만나고 부터 술버릇이.. 후우... 됐다."

술은 제발 끊자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4
이번 화 신고 2019-12-11 16:15 | 조회 : 1,363 목록
작가의 말
약쟁이

잘부탁드립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