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 바로 눈 앞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카이엘이 절대 떨어지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저기에서 아빠가...’

“괜찮아요?”
어린아이가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에 이상하게 생각할 법도 한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마력이 다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다엠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다엠을 닮아서 마력은 풍부했지만.

마력을 다루는 방법이라던가, 마법을 쓰는 방법을 아무것도 가르쳐 준 게 없는 이런 상황에서 클레아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기력했다.

쓸 수 있는 힘은 있는데. 신체가 불완전해서 힘을 쓸 수 없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클레아! 왜 여기 나와 있는 거냐!"

다엠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클레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빠... 엄마는?”

"네 엄마는 밖으로 마법사들과 함께 나갔다. 너도 따라서 나가!"

"아빠는?"

"난 알아서 나가서 찾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

“...알았어.”

울먹거리는 눈으로 입술을 꽈악 깨물고 대답을 하지 않다가 다엠이 마물에 의해 뒤로 밀리자, 계속 여기에 자신이 남아 있어봤자, 짐만 된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뛰었다.

그런 클레아의 뒷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마물들을 처리하던 둘은 잠깐 쉴 시간이 생기자, 등을 맞대고 주변을 경계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카이엘, 클레아를... 클레아를 잘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클레아의 뒤를 카이엘도 따라갔어야 했겠지만, 다엠에게 오기 전까지만 해도 클레아에게만 집중되던 마물들의 공격이, 다엠에게 도착하자마자 다엠에게 달려들어서 클레아를 따라가지 못하고 다엠이 있는 곳에 남아있는 카이엘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내가 만약,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할 경우에... 네가 이것을 클레아에게 전해줘라. 아마, 일리아도 지금쯤이면 당했겠지...”

쓴 맛이 나는 것 같은 입술을 손등으로 닦은 카이엘은 무릎을 꿇고 다엠이 주는 것을 받았다.

씁쓸한 비소를 지으면서 일리아의 사망을 예감하는 다엠은 괴로워보였지만, 카이엘은 이렇게 된 이상 클레아리스 아가씨라도 지켜야 일리아 마님에게 얼굴을 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카이엘. 클레아를 잘 부탁한다.!"

클레아만은 꼭 지키라는 강한 의지가 담긴 눈으로 쳐다본 다엠은 카이엘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네, 무사하셔야 합니다. 다치면 아가씨가 한동안 안 볼지도 모릅니다."

“그건 안 돼지!”

씨익 웃으면서 없던 힘을 내면서까지 마물들을 베어나가는 다엠을 뒤로 한 채, 카이엘은 발을 옮겼다.

부디,

부디...

아가씨가 벌써 마물들에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시간에 클레아는 벅찬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엄마...?”

저택 입구에 다다르고 나서야 뛰던 걸음을 멈춘 클레아는 저택입구에 있는 웅덩이를 발견했다.

그 웅덩이의 중앙에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는데.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던 클레아는 가까이 갈수록 사람처럼 보이는 그 무언가가 자신이 아는 사람인 것만 같아서. 그 사람 주변에 쓰러져 있는 것들이 다 사람이고, 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인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몸에 들어가는 힘이 점점 풀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계속 걸어갔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몸에 힘을 가득 준채로 계속, 걸었다.

계속, 계속 걸었다.

걸었는데...!

도착한 웅덩이는 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그 가운데 있는 것이 일리아였고, 주변에 있는 것들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왜.

자신의 앞에 벌어져 있는 이 상황이 믿고 싶지 않았다.

왜!

바로 눈앞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러면 안 돼는 거잖아...’

불과 몇 시간 전에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되어있다는 사실에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토악질에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결국 떨려오는 몸을 버티지 못한 다리에 의해서 클레아의 몸은 피에 절은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주저앉은 클레아는 중얼거렸다.

아닐거라고 믿었다.

“아닐 거라고만 믿었는데.”

이미 도망쳤을 거라고. 믿으면서... 평소에 그렇게 자상한 미소를 지어주던 일리아가 살아있을 거라고 믿었던 클레아의 믿음을 배신한 하늘이 원망스러웠고. 그런 일리아를 지키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림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못하고 충격을 받아서 굳어있던 클레아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웨엑-. 끅. 끄윽.”

나오는 것은 없었다.

주변에 널린 마물들의 시체보다는 죽었음에도 피를 여전히 흘리고 있는 일리아의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거짓말 같았다. 장난 같았다. 이 모든 상황이.

“거짓말, 거짓말이잖아. 이게 진짜라고? 말도 안 되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아!!!!!!”

“제발.”

사실은 알고 있었다.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이렇게 헤어지는 건 아니잖아.”

믿고 싶지 않은 나머지, 현실을 부정해봤지만 클레아의 처절한 비명밖에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이렇게 헤어지는 건! 정말 아니잖아,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건데!!”

악을 쓰고 있는 아이의 맑던 두 눈은 초점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흐리멍텅한 시야 사이로 빨간 피로 점칠된 일리야를 보던 클레아는 눈물로 얼룩진 눈가를 손등으로 훑고 두 눈으로 일리아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보면 볼수록 죽어버렸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는 것만 같아서 가슴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지만, 일리아를 향해 천천해 기어가던 클레아는 그 고통을 참아가면서 일리아를 껴안았다.

껴안은 손에 힘을 꽈악 쥐고 고개를 숙인 클레아는 울 힘도 없는데. 계속 나오는 눈물을 놔두었다. 닦을 힘조차 없었다.

남은 힘이라고는 일리아를 필사적으로 껴안을 힘밖에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지킨다고, 지키겠다고 결심했는데...! 어째서...”

그런 클레아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던 마물은 어느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지킨 것도 없었다.

모든 게 싫었다.

짜증났다. 근데 힘이 없었다.

사랑해주던 엄마를 잃었다.

가족을 잃었다.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죽었다.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부들부들 떨고 있던 왼주먹을 펴서 손바닥을 바라본 클레아는 입술을 짓씹었다.

“뭐하고 있는 거야. 진짜. 한심해.”

현실을 직시한 클레아는 마물을 보고 이를 갈았다.

“내가 너무 평화롭게 살았나 봐요. 잠깐 잊고 있었던 걸 다시 확인시켜주다니, 이렇게 슬플 때가 있나.”

현실을 직시해도 비참한 상황은 변하지 않기에, 허탈한 웃음과 동시에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나는 클레아의 시선이 일리아를 잠시 응시했다.

현실을 직시해도 비참한 상황은 변하지 않는 것에 허탈한 웃음과 동시에 비틀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나는 클레아의 시선이 일리아를 잠시 응시했다.

"미안합니다."

어느새 클레아의 눈은 빛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강한 의지를 담긴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은,

끼에에엑-! 끄르르륵-!

마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빠른 속도로 클레아를 치려 날아오는 마물의 다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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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0-12 03:44 | 조회 : 1,296 목록
작가의 말
조그마한 시계

어렸을 때 이렇게 무서운 경험을 해서, 나중에 커서 클레아는 왠만한 상황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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