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 넘어진다고 해서 죽진 않겠지라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체블이 술래인 채로, 체블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체블은 오늘도냐며 열심히 뛰어가는 둘을 보다가 그나마 가까운 클레아를 어떻게 잡아서 의자에 앉혀놨더니, 이브릴을 잡아 데리고 오니 사라져 있는 지금의 상황에 속이 터졌다.

기껏 잡았는데.!

분명히 가만히 있으란 말을 하고 갔는데. 먼저 잡았던 클레아가 없는 이 상황이 열불이 났다.

"악!! 클레아!! 어딨어! 또 숨은거냐!"

"오빠. 오빠."
폭발한 듯 크게 소리치는 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린 이브릴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왜?!"

"클레아 저기 있어."

이브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다름 아닌 나무 위였는데. 어떻게 올라간 것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못 올라갈 것까지야 없다고 쳐도 이브릴을 찾는데 오래 걸리지 않아서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올라간 클레아는 대체 어떤 운동신경을 가진 거냐며, 생각하고 있는 그 때.

어느새 나무 위에서 내려온 클레아가 체블에게 어색하게나마 말을 걸어왔다.

"체블 안녕...? 화났어?"

"오빠라고 부르랬지!"

"언제!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해!"

"아, 근데 오빠 리더시스 알아?"

"리더시스? 설마..."

"리더시스? 당연히 알지~!"

"그럼 벌써 아르티안 공작가에 다녀온거야?"

"응! 우리는 예전에 다녀왔는걸? 거기에 리더시스라는 남자애가 있는데~ 같이 놀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계속 쫓아다니고 있는 중이긴 한데~ 아직 친하지는 않아서 제대로 놀아본 적은 없어! 하지만! 다음에 가게되면 친해질 생각인 걸? 클레아도 같이 놀면 재미있겠다!"

이렇게 매일같이 서로의 저택에 가서 노는 이브릴과 클레아, 그리고 체블이었는데. 다음에 만날 때는 아르티안 공작저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두사람이었다. 물론 아르티안가의 사람에게는 전혀 허락받지 않은 그런 약속이었다.

시간이 흘러, 약속을 한 날로부터 비교적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클레아는 몸살감기로 몇일을 앓아누워서 자연스럽게 거의 방에 갇혀있게 되었는데. 열이 나는 머리 위에 올려놓은 물수건을 손으로 끄집어내렸다. 오늘따라 평소와는 다르게 시끄러운 저택에 창 밖을 내다봤고, 창 밖으로 보이는 처음보는 문양을 달고 있는 마차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1층으로 내려가다가, 마지막 계단 하나가 남았을 때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

몸이 아픈게 맞긴 맞다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들려오는 처음 듣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저기, 괜찮아?"

고개를 들자 보인 것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면서도 소심한 성격인지, 내민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자아이였다. 자신을 당겨서 일으켜 줄 수 있을 것인지도 의심스러운 체격이었다.

"응? 안녕? 반가워. 나는 클레아! 클레아라고 불러줘. 클레아리스 론 카일크루스라고 해!비록 지금은 아파서 이렇긴 한데. 평소에는 완전 튼튼하다고?"

그렇게 말한 클레아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려다가, 조금 전 자신이 말한 것과는 다르게 머리가 핑 도는 게 느껴져서 당황스러웠다.

"어어? 어?..."

"클레아...?"

리더시스는 리더시스대로, 자신의 앞에서 계단이 있는 쪽으로 쓰러지는 클레아를 보고 당황해서 멍하니 입을 벌렸다.

"위, 위험해..!"

아, 진짜 왜 이러지.

몸에 힘은 안 들어가고, 머리는 지끈지끈거리고, 몸상태가 정말 최악이란 것을 깨달은 클레아는 그냥 마음을 편하게 가지기로 했다. 넘어진다고 해서 죽진 않겠지라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다엠이나 카이엘이 들으면 뒤로 넘어갈 소리였다.

"-아가씨!! 기사님!!"

"클레아?"

"아가씨?!!"

시녀 중 누군가가 클레아가 쓰러지는 것을 발견했고 크게 소리쳤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너무 경악한 나머지 해버린 시녀는 그 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후에 말했다. 그 때 아가씨가 다쳤다면 저택은 한동안 싸늘했을거라고 장담했다.

시녀의 목소리는,

오늘도 열심히 수련을 마치고 개운하게 씻고 나온 카이엘의 귀와 아르티안 공작의 안내를 집사에게 맡긴 대공의 귀에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둘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쓰러지고 있는 클레아를 발견하고는 카이엘은 발로 뛰었고, 대공은 마력을 움직였다.

콰앙-
'아가씨!'

파앗-
'클레아!'

대공은 계단 주위의 어느 공간에서 부딪혀도 충격이 없게 마력을 발현시켰고, 카이엘은 쓰러지는 클레아를 낚아채 안아서 그대로 벽에 부딪혔으나 충격은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은거냐! 클레아!"

"...괜찮아요."

그렇게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인 둘은 목적을 이루고 나서야 안도했다.

저 장난꾸러기를 혼자 놔둔 호위기사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며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그 광경을 모두 보고 있던 리더시스는 흠칫 떨었다.

'여기 무서워...!'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리더시스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르티안 공작은 저녁이 되서야 돌아가게 되었고,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
.
.

그리고,

오늘도 리더시스는 자신의 앞에서 웃고 있는 클레아와 이브릴을 보고 흠칫 떨었다.

""안녕! 리더시스!""

자신이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떠들고 있는 둘을 보면서 리더시스는 저번에 쓰러졌던 애가 튼튼해져서 다행인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클레아를 보면서 이브릴이랑 성격이 비슷한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체블은 드물게 리더시스에게

"리더시스라고 했었나, 지금까지는 그래도 이브릴 하나여서 숨어도 안 들켰겠지만... 저둘 사이에 꼈으니..."

"...?!"

이번에도 이브릴이 생떼를 써 같이 왔는데, 클레아의 앞에 있는 리더시스를 발견하고는 '이제 쟤도 고생길이 열렸다며.' 측은한 눈으로 보며 말하는 체블을 발견한 리더시스는 그대로 도망쳤다.

일상이었다.

*

평소처럼 이브릴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침에 갑작스럽게 깨우는 일리아에 의해서 예정과 다르게 클레아는 임벨리스 후작저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언니, 오랜만이야."

"어서와. 네가 클레아구나? 워낙 아기 때봐서 못 알아보겠네."

클레아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이모와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사전에 미리 쌍둥이여서 얼굴이 똑같으니 놀라지 말라고 했던 일리아의 설명이 있어서인지, 눈이 살짝 커지고 말았지만, 클레아는 일리아와 똑같은 얼굴을 한 이모를 경계했다.

구불거리는 붉은 머리카락, 자신의 머리카락 색만큼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이모라는 사람은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꺼림칙했다.

클레아의 그런 기색을 알아챘는지, 이모라는 사람은 눈매를 휘어가면서 클레아에게 말을 걸었지만, 클레아에게 이미 첫인상이 안 좋게 받아진 후여서 경계심만 부추기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런 상태로 대치하다가 눈이 마주치자 클레아는 얼른 일리아의 팔에 더 달라붙었다.

"어머? 클레아, 왜 이러지? 이런 애가 아닌데?"

"엄마랑 얼굴이 같아서 놀란 것 같은데? 천천히 친해져야 할 것 같네. 들어가자."

일리아에게 들어가자고 말하고 등을 돌려 저택으로 들어가는 사네의 뒷모습을 보면서 클레아는 일리아의 팔을 잡은 손을 꾹 쥐었다.

‘가면을 쓴 사람...’

오늘은 잠깐만 얘기만 나누러 온 거였다며, 오래 있지는 않을 거라는 일리아의 말을 들은 클레아는 소파에 앉아서 일리아와 이모가 얘기하는 것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요리는 여전하니?”

“괜찮아졌는걸요. 예전에 클레아가 제가 한 요리를 먹고 다시는 허락 안 받고 외출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까지 해줬는걸요?”

“......”
그 때가 떠오른 클레아는 소름이 돋아서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사색이 된 클레아를 본 사네는 알 것 같다는 듯이 끄덕였다.

“...여전한가보네.”

“아닌데... 늘었는걸요?”

늘었다면서 기분 좋은 듯이 미소를 짓는 일리아를 보며 사네는 안색이 급속도로 창백해졌고, 그런 사네를 보면서 일리아는 평소에는 잘 짓지 않던 울상을 지었다.

‘정말 예전보다는 늘었는데...’

예전에는 다엠조차도 먹지 않으려고 하던 요리가 이제는 다엠이 먹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먹고 쓰러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먹고 며칠을 앓아눕는 경우가 생길지 언정, 며칠 동안 기절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았다.

“아직도 다른 곳을 여행하고 싶은 건 여전하니?”

“당연하죠. 하지만, 아직 클레아가 어리니까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요즘 마물이 잠잠해지긴 했지만,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지만... 아, 요즘 황녀님이 아프셔서 제국의 유명하다는 의사들은 다 황궁으로 불려갔다던데.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아니, 아직은.”

“그런가요. 그럼-”

일리아의 물음에 난감하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하는 사네를 보면서 일리아가 함부로 할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다른 주제로 바꿨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언제쯤 갈 수 있을지 생각하던 클레아는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탁-
“......지루했어.”

“필요한 것이 있으신가요, 아가씨?”

“아, 아니요. 방이 답답해서 그냥 나온 것뿐이에요.”

“그러십니까? 안내해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대공가의 저택보다는 작지만, 더 오래된 저택을 돌아다니던 클레아는 정원 구석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저게 뭐지?”

반짝이는 물체 가까이로 간 클레아는 눈을 반짝였다.

반짝인다고 생각했는데. 반사되어서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반짝인다고 생각했던 것은 매끈하게 생긴 불투명한 하얀 돌이었다.

클레아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바닥 위에 있는 돌은 햇빛에 계속 노출되어 있어서 그런지 따뜻했다. 평범한 돌처럼 보이긴 하지만, 여긴 임벨리스 후작저였다. 마음대로 가져가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아가씨.”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중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클레아는 고개를 돌렸다.

“집사아저씨!”

“무슨 일이십니까.”

“이거! 가져가도 돼요?”

클레아의 물음에 돌을 받아서 한참을 들여다보던 집사는 물었다.

“그냥 돌 아닌가요?”

“네!”

“보관되어 있던 것은 아니지요?”

“네!”

“그럼 가져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클레아의 계속된 대답에, 가져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린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와아-! 아, 근데 여기는 왜 찾아왔어요?”

“아, 이제 돌아가실 때가 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클레아는 하얀 돌을 손에 꼭 쥐고, 일리아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
.
.

“안녕히 계세요!”

“언니, 다음에 봐.”

“그래, 다음에는 황실연회인가?”

“그럴걸? 이만 가볼게.”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가득하지만, 모른척하던 사네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클레아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니?”

“그게...”
클레아가 주저하는 기색이 보이자, 사네는 줄 것이 있었다며 집사에게 무언가를 받고 클레아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조심하렴.”

사네의 말과 함께 클레아의 손에 무언가가 쥐어졌지만, 그것을 확인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다그닥-다그닥-

“엄마, 엄마! 이모는 왜 여태 본 적이 없던 거예요?”

저택으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한 클레아의 질문에 일리아는 고민하는 듯, 짧은 침묵 끝에 대답했다.

“그건 말이야. 클레아가 준비가 안 됐을까봐. 그런거야.”

“그게 무슨 말이예요?”

“나중에 클레아가 조금만, 조금만 더 크면 알려줄게?”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말하는 일리아에 할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클레아는 대답했다.

“네에~ 나중에 물어보면 꼭 말해줘야 돼요?”

“공주님, 오늘 안 피곤했어?”

“응! 아직 멀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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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0-12 02:43 | 조회 : 1,238 목록
작가의 말
조그마한 시계

기존에 보셨던 분들은, 갈아 엎었다는 걸 잘 아시겠죠...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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