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리의 비밀 (5)

(이번 편엔 자극적인 묘사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하엘아, 내 말 좀 들어봐. 응?”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하엘이의 손을 잡았다.

“놔.”

하엘이는 차가운 말투로 내 손을 뿌리쳤다. 하엘이의 표정은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눈에는 경멸스럽다는 눈빛과 입꼬리는 금방 이라도 울 듯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하엘이 마저 떠나게 하기에는 내가 너무 약했다. 이런 약아빠진 정신 상태로는 아이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누구라도 하나 털어 놓을 상대가 필요했고, 아마 하엘이는 거기에 이용 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렇게라도 하엘이를 잡아야지.

"하엘아."

나는 무릎을 꿇었다. 하엘이는 살짝 당황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노려봤다.

"...뭐하는 거야, 다른 애들이 쳐다 보잖아. 일어나."

하엘이는 주변을 살피며 날 재촉했다. 여기가 아니라면 하엘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할 것만 같다. 하엘이를 설득 시키질 못할 거 같다.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온 세상의 중력이 나에게 쏠리기라도 하듯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하엘아, 미안해... 근데... 나 좀 도와주라..."
"뭘."

하엘이는 단답으로 내게 답했다. 뭘... 이라니..?

"네가 그동안 거짓말 치고 다닌 거 애들한테 대신 해명해 달라고?"
"아, 아니..."
"그럼 뭔데."

하엘이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 가정폭력 당하고 있어. 그것 좀... 제발 도와줘."
"..."

하엘이는 날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리야, 나 네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 지 모르겠어. 어떡하지, 나? 너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주겠어. 너 지금 잠깐 날 붙잡으려고 이것도 거짓말 치는 거 아니야? 나 좀 의심스러워."
"뭐? 아, 아냐. 진짜 이건 정말이야. 내가 이런 거 가지고 거짓말 치겠어..?"
"그러니까! 왜 거짓말 쳤냐고!"
"..."

이렇게까지 과민반응 할 일인가..?

"너, 이거 과민반응 아니야?"
"뭐?"
"내가 이런 거짓말 쳐서 너한테 피해 간 게 있어? 너도 사실 내 외면만 보고 좋아했던 거 아니야? 겉으로 보기엔 돈 많아 보이고 집도 잘 사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허, 어이가 없네. 난 나한테 직접 다가와 준 네 모습 때문에 널 좋아한거야. 내가 초등학교 때 되게 역겨운 친구가 하나 있었다? 자기 집안 사정 속이고 부자인 척 해서 애들 돈 뜯고 친구도 그런 식으로 사귀었어. 근데 말이야... 그 정도까진 봐줄 만 했는데... 그 다음부턴 자기 입지를 사용해서 애들을 괴롭히고 다니더라? 애들을 공개적으로 따 시킬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학교폭력을 저질렀어. 그 피해자 중 하나가 나였다고!"

하엘이는 얼굴이 빨개져 내게 따박따박 소리질렀다. 울화에 찬 목소리가 간절해보였다.

"근데 말이야... 웃긴 거 하나 알려줄까..? 나... 너한테서 걔가 겹쳐 보여."

하엘이는 미소라고 하기엔 애매한 경멸과 슬픔이 섞인 미소를 내게 지어보였다. 하엘이의 손 끝은 덜덜 떨려왔고, 그 모습에 날 대입하는 내 이기적인 모습을 보자 나 마저 내가 역겨워졌다.

"...*발... 흐윽..."

결국 하엘이와 나, 둘 다 울음을 터져버렸다. 우는 하엘이의 모습을 보자 하엘이와 친한 아이들 서너명이 하엘이를 부축해 데려갔다. 하엘이의 등 뒤엔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등을 돌려 내 뒤를 보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하..."

내가 이런 짓거리 까지 하고 다녔는데 내 뒤엔 아무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읍..."

역겨워서 구토가 올라오려 한다. 나도 내 모습이 역겨워 보이는 날이 올 줄이야.

*

"다녀왔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다. 아무도 없나?

"엄마? 아빠? 오빠도 없어?"

짝!

"오, 오빠..."
"...세리야. 너 지금 ㅈ됐더라?"
"...아, 아버지. 도와..."

퍽!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묵직하고 차가운 감각은 골프채다. 아버지의... 골프채.

"아, 아버지. 왜, 왜..."
"시혁아, 아빠 대신에 네가 잘 할 수 있지? 애 버릇 좀 제대로 고쳐 놔라."
"네, 아버지."

믿었던 어머니마저 아버지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울음을 참는 듯이 입가에 손을 대고 날 바라보셨다. 저 손으로 오빠를 말리셔야죠.

살려주세요.

둔탁한 철 소리가 내 머리를 강타했다.

"꺄악!!! 오, 오빠. 죄송해요... 사, 사, 살려주세요. 제발..."
"세리야, 이제 시작이야. 네 ㅈ같은 버릇 고치려면 한참 남았어."

오빠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명치를 발로 찼다. 구역질이 올라오다 겨우겨우 삼켰다. 여기서 구역질을 했다가는 절대 이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골프채가 내 머리, 어깨, 등, 허리, 다리를 강타했다. 뼈가 하나 하나 부러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아아... 살려, 주, 세요. 아, 아파..."

오빠는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면서 속삭였다.

"세리야, 이렇게 처맞는 건 누구 때문이다?"
"..."
"말 안 해?"
"흐... 흐윽..."

짝!

오빠는 사정 없이 내 뺨을 쳤다.

"자, 다시 한 번 물어보자. 누구 때문이다?"
"...저 때문에..."
"옳지, 잘 알고 있네."
"..."
"세리야, 제발 좀 사리고 다녀. 너 때문에 아버지한테 피해 가잖아? 알겠지?"
"...네."
"그래, 들어가 봐. 푹 자고~"
"..."
"대답."
"네, 아, 안, 녕히 주무세요."
"그래~"

철컥.

방에 들어오자 마자 로프를 꺼냈다. 로프를 천장에 매달았다. 단단히 묶인 로프는 끊어질 것 같진 않았다. 숨 쉴 때 마다 들어오는 익숙한 가족같지도 않은 사람들의 냄새가 역겨웠다.

"우윽! 우웨엑..."

결국 구토를 했다. 입에 맴도는 쌉사름한 맛이 지금 상황보단 훨씬 달콤했다.

의자를 밟고 올라섰다. 처음 해봤다면 정말 무서웠겠지만 벌써 4번째 시도다. 이래 봬도 경력직 아닌가. 익숙한 폼으로 로프를 목에 걸었다. 허벅지에 보이는 피멍들이 장미처럼 보였다. 아, 정신도 어떻게 됐나 보다.

로프에 목을 매달았다.

"커흑! 크읍... 켁! 케헥!"

목이 졸려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무섭다.

죽음이란 게 눈 앞에 다가오니까 너무 무섭다.

무서워.

쿵!

어? 절대 끊어지지 않을 거 같았던 로프가 끊어졌다.

"허억! 헉! 하아... 흐아...."

숨을 몰아쉬자 비로소 다시 살았다는 느낌이 생생해졌다. 그리고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두려움이 밀려왔다. 학교는 어떻게 다니지. 집에도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데. 어떡하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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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1-09 23:14 | 조회 : 314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