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

아버지의 뒤에는 항상 앳된 얼굴의 어린 놈 하나가 서 있고는 했다. 뒷세계에서 꽤 주름 잡는 조직을 이끄는 아버지였기에 경호원이 뒤를 따르는 것은 이상할 것 없었지만, 어느새부터 아버지의 뒤에 바짝 붙어선 어린 놈은 낯설기 그지 없었다.

무엇보다 그 녀석이 아버지를 보는 시선이 어찌나 열렬하던지 우연히 아버지와 마주치는 날에는 짝사랑하는 상대를 보듯하는 녀석의 시선이 종일 머릿속을 맴돌아 불쾌하고는 했다.

그 때문에 나는 괜히 그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하는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녀석의 일에 관해서는 대놓고 아버지에게 맘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내거나 녀석이 보는 앞에서 심술을 부리고는 했다.

그러나 왠만해서는 내 편을 들던 아버지는 내가 그리 대놓고 싫은 티를 냈음에도 녀석을 내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내 기분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몇 살인데요?"
"연호 말이냐?"
"뭐……."

소파에 삐딱하게 앉아 아니꼬운 눈으로 아버지 뒤에 선 연호라는 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녀석은 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은 변화없는 얼굴로 아버지의 뒷모습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에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왠만하면 그냥 아저씨들 쓰는 게 낫지 않아요? 어린 놈보다는."
"……."

소파 등에 털썩 몸을 기대면서 평소에는 내지 않는 큰소리로 말했으나 역시 연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반응을 한 것은 오히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아버지였다.

"왠만한 놈들보다 낫으니 쓰는 것 아니겠냐."
"…뭐…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다고."
"평소에 신경 쓰지도 않던 놈이 갑자기 왜 그래?"
"그냥요. 아버지 안위가 걱정 되어서 그러는 거죠, 뭐."

살짝 한숨을 내쉰 아버지가 담배를 입에 물자 녀석은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꺼내 공손이 내밀었다. 누가 봐도 만족이 가득한 얼굴로 아버지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는 녀석을 보자니 이번에도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울컥 속에서 치솟았다.

그러나 인상을 찡그리는 날 보며 아버지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아니, 아버지……!"
"네가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은 알겠다만 말이다. 나름 아끼는 녀석이라 그만 신경 거두는 게 좋겠다."

'아끼는 녀석'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순간 으득, 이가 갈렸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녀석이 아버지에게 보이는 충애도 아버지가 녀석에게 보내는 애정도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때문에 괜히 내 입에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럼 저 주세요."

그리고 내 말이 나온 순간 여태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연호 녀석이 분명하게 어깨를 움찔하며 반응해 왔다. 처음보는 그의 반응에 내 안에서 묘한 승리감이 퍼져왔다. 덕분에 나는 더욱 강경하게 아버지를 향해 다시금 입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 저 달라고요."
"야, 아들아."
"요즘 안 그래도 학교에 경호원 한 명 둘 필요가 있다 싶었거든요. 자꾸 누가 쳐다보는 것 같고."
"하아……."

누가봐도 거짓이 분명한 변명에 아버지가 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녀석은 아버지의 뒤에서 나와 아버지의 눈치를 번갈아 보면서 입술을 축이고 있었다. 혀를 빼내 살짝 입술을 핥아내는 모습에서 나는 그가 초조해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입에서 완전한 거절의 말이 나오기 전에 급하게 손짓까지 해가며 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예 주시는 게 좀 그러시다면 졸업할 때까지만 빌려주시죠. 몇 개월 남지도 않았는데… 명색이 수험생인데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서 그래요."
"……."
"예? 아버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아버지는 본래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왠만해서는 들어주며 오냐오냐 나를 키우셨다. 그러니 내가 간만에 이리 대놓고 간청하는 것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묘한 자신감에 씩 입꼬리를 올리자 순간 나와 눈이 맞은 연호 녀석이 대놓고 기분 나쁘다는 듯 지긋하게 미간을 구겼다. 그 모습에 어쭈, 하는 마음과 함께 속에서 오히려 오기가 돋았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알겠다고 답할 것으로 생각한 아버지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버지."

다시금 그를 부르자 아버지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일단… 생각 좀 해보마."
"…보스!"

아버지의 입에서 작지만 긍정을 뜻하는 답이 나오자 그제까지 아무 말 없이 있던 연호가 낮게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그는 곧 잘근 입술을 씹으며 바로 입을 닫아냈다.

그러나 초조함을 견딜 수 없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연호가 결국, 다시 아버지에게로 입을 열었다.

"보스… 저 싫습니다."
"하?"

자신이 한 짓거리의 복수라도 하는 것인지 대놓고 제 앞에서 정확하게 싫다고 말하는 연호를 보며 기찬 웃음을 흘렸으나 연호는 내게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제겐 보스뿐입니다."
"연호야… 진정하고. 이따가 얘기하자."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농담으로 들으시겠지만 요즘 시선이 느껴진다는 거 정말이긴 한데요? 게다가 제 또래에 실력도 출중한 경호원이라고 하니… 학교에 데려가기 딱이지 않습니까."

간절하게 아버지를 바라보며 애걸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척 팔짱을 끼고 아버지에게 당당히 입을 열었다. 내가 이만큼 당당히 입을 놀릴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당장 상황을 벗어나기 위하여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 정말 고심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연호도 아는지 내게 눈총을 날리는 것도 잊고 초조하게 아버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심하던 아버지가 내게로 고개를 들며 엄지로 뒤에 선 연호를 가리켰다.

"이 녀석 네 생각보다 괜찮은 성격이 아닌데."
"실력이 좋다면서요."
"그렇다 한들 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경호원 갈아치운 게 한두 번이냐? 그리고… 대놓고 이 녀석이 싫단 티를 그리 냈지 않냐."
"하지만……."
"어쨌든 생각은 해 볼테니 오늘은 이만 하고 가라."

아버지의 입에서 이번에는 부정을 의미하는 답이 나오자 녀석의 얼굴에 눈에 띄게 화색이 돌았다. 그가 은근히 베알 꼴렸지만, 짧게 혀를 찬 나는 벌떡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연호 녀석을 싫어하는 것은 사실이었고 싫어하는 녀석과 종일 붙어 있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연호 녀석이 표정 없는 로보트는 아니었다는 사실과 그를 조금은 심기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성공하였다는 점 덕에 기분이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 한 번 들어 올리며 아버지에게 인사를 대신했다.

"예, 오늘은 이만 가보죠."

그리고 그후로 아버지에게서 따로 언질이 없었으며 아버지의 일이 바빠진 덕에 아버지는 물론 녀석을 볼일이 사라져 나는 그 일을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이 다시 내 눈앞에 나온 것은 머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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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4-05 01:55 | 조회 : 2,71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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