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투쟁과 평화 (1)

"귀족들은! 물러가라!"

시민들의 소리침이 저택 벽을 뚫어 내게 전해졌다. 윽, 시끄러워…

“아으… 이게 뭔 소리야..?“

간신히 피곤한 몸을 이끌어 커튼을 열어 재끼자 더러운 옷을 입은 평민들이 깃발을 들고 알베르 남작의 저택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까지 열고 그들이 하는 짓을 관람했다. 그들은 기괴한 모습으로 깃발을 흔들었다.

"으... 더러운 것들... 시끄러..."
"아, 공녀님! 듣지 마세요!"
"됐어, 이건 들어봐야 할 거 같네. 아, 헬린. 얼음 넣은 물 한 잔만 가져다 줘."
"네, 같이 드실 다과도 가져올까요?"
"응, 그래주면 고맙지."
"네, 공녀님!"

헬린은 아직 어린 하녀다. 겨우 16살이랬나? 아무튼... 하는 행동이나 모습만 보면 완전 아기인데... 입은 무겁고 일처리도 잘한단 말이야? 웬만한 다른 하녀들보다 훨씬 애가 빠릿빠릿하고... 그래서 그런지 좀 더 애정이 많이 가는 아이다.

"헬린, 같이 다과를 먹지 않으련?"
"저, 정말요? 제가 공녀님과요?"
"그래, 같이 수다라도 떨자꾸나."
"네, 네!!"

헬린은 애써 신나는 마음을 숨기는 듯이 방정 맞게 의자에 앉았다. 그 모습 마저 너무나 귀여웠다. 헬린은... 내가 유일하게 이 저택에서 신용하는 사람이다.

"자, 이 쿠키 한 번 먹어보렴."
"아! 이걸 제가 받아 먹어도 될까요?"

내가 헬린에게 직접 쿠키를 집어 입에 가져다주자 헬린은 당황하며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였다. 헬린은 부끄러워 하며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쿠키를 한 입 베어먹었다.

"어때? 맛있니?"
"네! 정말요! 정말 달콤하고... 약간 쓴 거 같긴 한데... 아무튼 초콜릿의 쌉싸름함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그렇니? 그 쓴 맛이라는 게, 내 생각엔 머리카락 맛 같은데?"
"네?"

헬린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자, 헬린은 미소를 방긋 지으며 내게 감사 인사를 했다.

"으아... 부끄러워요... 그래도 감사해요!"
"푸흐... 정말 귀엽다니까."

헬린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헬린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글쎄, 제인이 공녀님은 마카롱을 더 좋아한다 해서 마카롱을 담았는데 알고 보니 거짓말을 친 거더라고요!"
"그래? 내가 제인을 좀 혼내줄까?"
"아뇨! 아니에요. 제인이 공녀님이 절 아끼는 게 질투나서 그랬다고 사과했어요."
"그런 사과 만으로도 화가 풀리는 거니?"
"네, 정말... 진심 어린 사과였거든요."

헬린은 정말 마음이 여린 아이다. 형태가 둥글고 모난 곳이 없다. 너무 완벽하고 너무 빛이 나는 존재라고 해야 할까?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완벽 이라는 단어를 갈망한다. 완벽이란 모난 곳이 없는 둥근 모습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망가지고 해진 모습이 완벽하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모습이 세상 모든 사를 겪어보고 해쳐나갈 능력을 가진 완벽이라 할 수 있다. 아니, 그동안 그렇게 믿어왔고 배워왔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분명 너무 둥글고 모난 곳도 없는데...

나는 망가지고 해져서 엉망진창인데...

이 아이가 완벽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워 보인다.

"어째서일까..?"
"네?"
"제인이 너에게 그냥 입에 발린 말로 사과한 걸 수도 있지 않아?"
"..."

헬린의 표정은 방긋 웃고 있었지만 눈은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실수한걸까...

"...저, 헬린."
"에이~ 설마요~ 제인이 절 아무리 싫어한다 해도 그러겠어요?"
"...그치, 내가 너무 앞서갔네."
"아니에요! 저... 걱정되어서 하신 말씀이잖아요! 공녀님이 절 걱정해주신다니... 전 너무 영광인걸요?"
"그래."

헬린은 하기로 했던 말이 드디어 떠올랐는지 갑자기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아! 할 말이 기억났어요!"
"오, 그래. 무슨 말이니?"
"저... 공녀님. 다른 사람들이 공녀님이 잔인하고 영악하며 냉혈하다 해도 저는 공녀님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공녀님의 진짜 모습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하는 비겁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에요. 저는 공녀님을 믿어요."
"..."
"어린 나이에 높은 직위에 올라가셔서 저택의 일을 혼자서 처리하고 계시니 많은 부담이 되었던 거겠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얕보이지 않는 방법은 자신이 결코 무르지 만은 않은 사람이란 걸 보여줘야 하는 거니까요! 공녀님의 상황...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좀 이해가 된다 해야 하나... 공감 된다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요! 저는 공녀님을 잘 알고 믿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헬린... 이 기특한 것..."

헬린을 품에 안고 꼭 끌어 안았다. 헬린은 베시시 웃으며 내 품에서 미소 지었다.

"헬린, 내가 믿는 사람은 너뿐이야. 그걸 잘 알고 있으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너 만은 꼭 보호해주마. 내가 약속할게."
"저도 공녀님을 최우선적으로 보좌할 거에요!"
"그래, 약속."
"히히, 약속!"

헬린과 엮인 새끼 손가락에서 헬린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쿵, 쿵, 쿵.

절대 멈추치 않을 것 같은 거센 심장 박동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내가 이 아이를 놓지 못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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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1-30 16:58 | 조회 : 352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