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전염병?

한동안 비가 내려 햇빛을 보지 못한 날이 오래다. 낡은 의자에 앉아 한 손엔 책을, 한 손엔 차를 들고 있는 일도 지겨워졌다.
분명 오늘은 그녀와 함께 나들이를 가기로 했었다.
오늘은 비가 그칠 줄 알고...
하지만 괜한 기대는 하지 말라는 건지 오늘도 어김없이 굵은 비가 유리를 두드렸다. 그녀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서신을 보낸 지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돌아오는 서신은 없었다. 분명 그녀의 저택에 있는 하녀 하나가 가져갔다 하지 않았나?
"하..."
결국 그녀의 저택에 다녀오기로 했다.
걸어서 얼마 걸리지 않는 나무가 우거진 숲 안, 그녀의 저택이 존재했다.
2층 창문까지 다다른 장미 넝쿨이 그녀의 방 창문을 가리고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갑자기 드는 무력함에 돌아가려던 그때, 그녀의 저택 뒷마당에서 하녀 둘 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불쌍한 에밀리아 공녀님..."
"그러게 말이야, 아밀론 공작님은 찾아오시지도 않고..."
"그 분께선 우리 공녀님께서 병에 걸리셨다는 건 알기나 하실까?"
"모르실 거야, 그 분이야... 워낙 바쁘시니까.."
''병?''
순간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병이라니, 어제까지만 해도 내게 서신을 써주던 아이였단 말이다... 4장을 빼곡히 채워 내게 서신을 보낸 아이란 말이다...
떨리는 두 손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저택 안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어쩔 수 없이 뒷마당의 하녀들에게 말을 걸었다.
"..."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헉! 아밀론 공작님! 아, 안녕하십니까..? 그... 뒷마당엔 무슨 일로..."
"에밀리아가 병에 걸렸다고?"
"아... 네, 그, 그렇습니다. 죄, 죄, 죄송합니다..."
"정말이냐?"
"네..."
"...당장 날 에밀리아에게로 데려가라. 당장."
하녀를 따라 들어온 방, 침대엔...
"하아... 허... 에, 에밀리아!"
그녀가 죽은 사람 마냥 창백해져 있는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것이냐, 언제부터!"
"어제, 어제 늦은 밤부터... 였습니다."
하녀들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고, 동공은 작아진 채로 눈알을 한 곳 에다 두지 못했다.
거짓말이다.
"다시 말해보아라. 거짓을 내게 이르지 말고."
"..."
"어서 말하거라."
"..."
"어서 말하라고 했지 않았나?"
입을 끝까지 다물고 있던 하녀 하나가 입을 열었다.
"사실... 어제 아침부터 입니다..."
그녀가 내게 서신을 보낸 건 정오였다. 그때도 이리 아팠었을터, 이리 괴로웠을터...
그 서신이 이제 마지막인 것이냐?
에밀리아의 입에선 피가 굳어 입을 막고 있었다.
급히 맥을 집어보았지만, 너무나 여렸다. 마치 죽기 직전의 사람처럼 잡히지 않을 정도로 여렸다. 금방이라도 내 곁을 떠날 것처럼.
"미안하다, 에밀리아..."
그녀의 사랑스러웠던 푸른 눈을, 아름다운 고동색의 머리카락을, 따스한 손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살려보고 싶지만... 허나, 그것이 에밀리아를 더 헤칠까 무서웠다. 그녀의 숨이 멈췄다가 다시 쉬고 멈췄다가 쉬고 멈췄다가... 멈췄다가... 더 이상... 더 이상은 그녀의 가슴도 올라오지 않고 그녀의 손에도 힘이 풀려 침대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녀의 손이 점점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얼마 시간이 흐르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녀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가 않는다. 이렇게 날 두고 떠나는 건가... 함께 노년을 보내기로 하지 않았더냐... 그녀의 손에도 나의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24살이란 가장 아름다울 때 생을 장미넝쿨과 함께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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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2-13 22:26 | 조회 : 905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