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끝에 드리운 칼날

봄은 둥그렇게 둘러앉은 이들과 어울려 술을 몇 잔 걸친 상태였다. 새내기의 1년이 지나고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었다. 그리 달라진 것은 없었다.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여전히 친구들과의 관계도 완만했고, 영주와의 관계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여전히 밖에선 친하게 어울릴 수 없다는 정도. 그래도 괜찮았다. 같이 있을 때는 영주는 가끔 심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 마음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조금은 민망할 정도였다. 잔잔히 흘러가는 구름 아래 일상을 이어오고 있었다.
“봄~ 벌써 취했어? 아까 채워진 잔이 아직도 반 남았냐?”
새내기 엠티의 밤이 무르익어가는 시간이었다. 열 두 시를 훌쩍 넘긴 초침 아래로 몇몇 사람들은 취해서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다. 현진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서 갈색 병을 들고 봄에게 다가왔다.
“너야말로 완전히 취했네. 괜찮은 거야?”
“완전 괜찮지~! 이 정도로 난 안 취해.”
혀가 댕강 잘린 데다 눈은 반쯤 풀린 것이 누가 보아도 취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같이 있던 우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진인 어디 갔어? 얘 좀 챙기라고 하니까.”
“우진이 지금 다른 방에 가서 놀러 갔어. 나쁜 놈 나 버리고 갔어!”
현진은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더니 앞뒤로 휘청거렸다. 봄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데리고 방에 눕히기로 마음먹었다.
“완전 취해버렸네. 너 안 되겠다. 가서 자자.”
“아아- 싫어~ 안 취했어.~”
봄은 그녀가 안고 있는 갈색 맥주병을 빼앗으려 했지만, 갑자기 어디서 힘이 샘솟았는지 그녀의 손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결국, 버둥거리다 현진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녀의 머리가 장판바닥에 퍽 소리내며 떨어졌다. 쎄게 박았을 텐데, 그녀는 히히 웃기만 했다.
“어휴 진상.”
봄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았다.
현진의 두 발을 양손으로 붙잡고 방 거실 바로 옆 방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 문턱에 살짝 부딪혀서 아플 법도 한데, 현진은 언제 잠이 든 것인지 미동이 없었다. 순간 방금전 머리가 부딪힌 것에 지금 정신을 잃은 것인가 싶어 그녀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다행히 규칙적인 바람이 손끝에 닿았다. 휴, 하고 한숨섞인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를 이불 위에 겨우 눕힌 뒤 이불을 덮어주었다.
“오빠 술 더 안 마셔요?”
“응. 난 이제 그만하려고.”
어쩌다 같이 앉게 된 1학년 김민지라는 여자는 아쉬운 듯 봄을 쳐다보았다.
“에이. 조금 더 같이 마셔요. 우리 게임 다시 하려고 하는데.”
“미안. 재밌게 놀아.”
봄은 자신의 팔짱을 잡고 흔드는 그녀에게 곤란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 찬찬히 내린 뒤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방 복도에 나가니 방문은 줄줄이 열려 있었다. 조용한 곳도 있었고, 어떤 방은 아직도 술 게임이 한창인지 사람들의 말소리, 웃음소리가 시끄럽게 뒤섞였다.
봄은 바지 앞춤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전화번호에 뜬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음으로 연결됩니다.”
“…자나?”
영주는 일찍 잠이 든 것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보고 싶은데.
어쩔 수 없나 생각하고 봄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휴대폰을 화면을 껐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뜬 달 아래 산책하다 봄은 쌀쌀하게 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바로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살짝씩 물들어가는 봄기운에 연한 새싹이 올라오는 때라 그런지 아직 밤은 추웠다.
“아~! 영주 형! 벌칙!”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는 가운데 봄은 익숙한 이름에 돌아보았다. 배정된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익숙한 목소리였다. 무르익은 분위기에 한껏 텐션이 올라간 우진의 목소리였다. 봄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열린 방안에 흘러나오는 조명이 발치에 가까워질수록 환호와 같은 소리는 커졌다.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던 얼굴엔 조금씩 핏기가 가셨다.
분명히 걸으면서 술이 깼을 터인데, 과음한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미쳤다! 형! 너무 오래 한 거 아니에요?”
남녀 옆에 선 우진의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이렇게 씨씨 탄생하는 거야?”
“영주! 이 새끼 새내기를 벌써부터!”
영주는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여자애를 감싸듯 소리쳤다.
“아!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냥 벌칙으로 한 거잖아.”
“벌칙으로 한 거면서. 볼 뽀뽄데 왜 입술에다가 했데?”
우진은 킥킥 웃으며 가자미눈을 하고서 영주를 쳐다보았다. 영주가 무어라 답하기 전에 그에게 거의 안겨있다 싶은 여자애가 입을 떼었다.
“전... 벌칙으로 한 거 아닌데요?”
“어?”
영주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순간 떠올랐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꺅꺅 소리를 질렀다.
그 방의 신발장 앞에 서 있던 봄을 알아차린 것은 우진이었다.
“어! 김스프링! 너 아직 안잤냐? 너도 이리 와! 같이 놀자!”
“….”
봄은 천근같이 무겁게 느꼈던 발을 그때야 뗄 수 있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무리의 중심에 도착하니 마찬가지로 얼굴에 핏기가 가신 영주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직도 안 자고 놀고 있었냐?”
봄은 영주와 여자 사이로 가서 억지로 그 틈에 앉으며 물었다. 갑자기 밀려난 여자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인들을 힐끔거렸다. 영주는 얼굴을 굳힌 채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어색해진 상황에 주변 사람들도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 중 유일하게 태연함을 유지한 봄은 조용해진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조용해? 게임하던 거 아니야?”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서 있던 우진은 자리에 앉으며 다시 분위기를 띄우려 애썼다. 어리둥절해 하던 사람들도 곧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따가운 시선이 바로 옆에서 날아오긴 했지만 봄은 웃으며 그 시선을 무시했다.

“영주형 또 벌칙이야? 이 정도면 그냥 벌칙 받으려고 게임 하는 거 아니야?”
우진은 짓궂은 얼굴을 한 채 말했다. 영주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웃기만 했다.
“이번 벌칙은 그럼 내가 주면 되는 건가?”
봄은 방금 비운 종이컵을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김봄! 이거 형 마시게 하자! 내가 특별히 제작한 폭탄주!”
우진은 한 그릇 가득 담긴 술을 내밀며 말했다. 하지만 봄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애를 흘끔 보았다가 영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전에 하던 벌칙 재밌어 보이던데? 이번엔 키스하는 거 어때?”
“우오오!”
큰 호응 소리가 방안을 시끄럽게 울려댔다.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애는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혼란 속 영주는 소리 없이 입으로 왜 그러냐 물어왔다. 봄은 당장 저 잘난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며 다음 말을 내뱉었다.
“똑같은 사람이랑 하면 재미없으니까. 이번엔 다른 사람이랑 하는 거지.”
"와 김스프링 순수한척 깨끗한 척 하더니! 뭐야 갑자기 너! 누구랑 시키려고 그래?"
"글쎄..."
봄은 주변인들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따갑게 시선을 보내오던 바로 옆 여자애는 눈을 반짝이며 봄을 바라보았다.
"흠..."
"김봄 이런거 뜸들이면 재미없다!"
"그래! 얼른 말해!"
주변인들은 얼른 말하라며 봄이 입을 떼기만을 기다렸다. 영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무슨 키스야."
"왜 뽀뽀도 했는데. 키스라고 못할 건 뭐야?"
봄은 코웃음치며 그말을 받아쳤다.
"...그건."
"둘러보니까 구경했을 때 영 볼만한 사람은 없네. 그냥 나로 해야겠다."
"어...?"
"벌칙으로 나한테 키스하라고."
"김봄! 너 취했냐?! 미쳤다!"
우진은 웃음을 빵터트렸다. 난리난 가운데 영주만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뭐야. 싫어."
"왜 싫어? 벌칙으로 뽀뽀도 했는데. 키스는 왜 싫어? 아 키스가 아니라 그냥 내가 싫은 거야?"
"..."
"..."
불꽃처럼 타오르던 분위기는 순간 물 한 바가지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봄이가. 많이 취했나 보다.”
다들 무슨 일인지 몰라 눈만 깜빡이고 있을 때 영주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봄을 데리고 나가려는 듯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봄은 금방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말을 이었다.
“왜? 싫은데? 이유를 얘기해봐."
"봄아 너 많이 취했어. 바람좀 쐬러 가자. 응?"
"맨날 하던 거잖아. 어제도 했고. 그저께도 했던 거잖아. 지난 1년 동안 잘했으면서 갑자기 왜 피해?”
“너… 무슨…”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듯 영주는 당혹감에 입만 벙긋거렸다.
“벌칙으로 입 맞추는 건 하면서 왜 남자친구한테 하는 건 못하겠는 건데? 하자니까?"
봄은 그의 멱살을 잡고 끌어 잡아당겼다.
무방비한 상태에 놓여있던 영주는 힘없이 딸려왔고 그의 입술이 닿았다. 살짝 닿자마자 불에 덴 것처럼 놀라 영주는 뒤로 자빠졌다. 그리고 화난 듯 성난 목소리가 날아왔다.
“너 뭐하는 짓이야!”
“뭐가? 내꺼한테 뽀뽀한 게 화낼 일이야?"
피가 거꾸로 샘솟는 느낌이었다. 양손이 벌벌 떨렸고, 눈에는 새빨간 핏줄이 돋아났다.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아지자 옆에 있던 사람들은 봄을 차차 말리기 시작했다.
“오빠… 게이에요?”
조금 전 영주와 입맞춤으로 얼굴을 붉히던 여자는 여전히 바닥에 앉아있던 영주에게 말했다. 영주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정말로 자기는 억울하다는 듯이.
“무슨 기분 나쁜 소리야! 쟤가 미친 소리 하는 거지…!”
그말을 듣자마자 봄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끊어졌다. 끓어오르던 분노는 이미 끓는 점을 한참을 넘어간 상태였다. 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영주의 멱살을 잡고 이번엔 주먹을 날려주었다. 어어 소리를 내며 당황하던 사람들은 봄을 뜯어말렸다. 사람들 덕분에 봄에게서 떨어진 영주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고통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년이랑 뽀뽀는 잘만 했으면서 왜 나는! 이제껏 나는!"
울분처럼 토해내던 말은 곧 끊겼다. 고개가 옆으로 확 돌아갔다. 왼쪽 뺨이 홧홧 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팠다. 처음 칼에 손가락이 베였을 때도 이만큼 아프고 쓰라렸던가.
낮과 밤에 부는 바람이 심하게 다른. 초봄이었다.


“저 오빠가 그때 그…?”
“쉿…”
수업을 듣기 위해 올라탄 엘리베이터 안 학생들의 목소리였다. 자기 딴에는 조용히 말하는 듯했으나 고요한 적막에 작은 목소리는 생생했다. 봄은 검은색 이어폰을 귀에 욱여넣었다.
“봄~ 과제는 얼마나 해왔냐?”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현진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봄은 귀에 끼워두었던 이어폰을 빼고 주머니에 대충 넣으며 대답했다.
“예시로 3가지 정도 가져오고 페이지 수는 총 12페이지 정도? 너는?”
“헉 너 그렇게 많이 해왔어? 난 너의 반 정도… 너 요즘 맨날 술도 마시러 나오지 않더니 집에 박혀서 과제만 했냐?”
“2학년이잖아.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너 왜 이렇게 부지런해. 그 부지런함 나한테 반만 좀 줘라.”
“넌 요즘 왜 이렇게 술자리 많이 가? 공부는 안하냐? 곧 중간고사 시즌인데.”
“….큼큼.”
“모른 척하지 말고. 공부는 하는 거냐?”
“아, 오늘 학식 맛있는 거더라.”
“말 돌리는 것 봐라.”
봄은 태연하게 다른 길로 돌리는 현진을 보며 픽 웃었다.
유일한 사람이었다. 쓰나미의 소금물같이 퍼져나가는 소문에 젖어들지 않는 유일한.
1년 채 되지 않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연애가 끝을 맞이했다. 헤어지자는 말은 없었다.
애초에 만난 적 없는 것처럼. 처음 좋아한다고 고백한 밤이 하룻밤의 신기루처럼 사라진 나날이었다. 하늘위로 떠오른 해, 바람에 따라 흘러가는 구름. 돌아가는 시침. 모든 것이 유유자적 자기 길을 가는데, 혼자 같은 곳에 말라 쓰러질 때까지 서 있었다.

‘오늘 저녁도 술자리?’
‘ㅇㅇ오늘은 곱창 먹으러 왔다~! 너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ㅜㅜ 오랜만에 우진이도 같이 왔단 말이야.‘
‘ㅋㅋㅋ 학교 앞 곱창집?’
‘응 ㅋㅋㅋ 얼른 우진이랑 너랑 풀면 예전처럼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닐 텐데…’
‘ㅋㅋㅋㅋ…재밌게 놀아.’
열 시가 넘어가는 시각. 현진과 나누던 문자를 끄고 휴대폰 화면을 끄니 음울한 얼굴이 비쳐 보였다.
아.
봄은 휴대폰 화면을 책상 위로 덮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진과는 딱히 싸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날 이후로 어쩐지 어색해져서 말을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색한 기운에 못 이겨 봄이 먼저 자리를 피했더니 우진도 이후로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봄은 노트북 화면을 덮고 의자 뒤로 몸을 젖혔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니 새하얀 형광등 빛이 눈을 내리때렸다. 곧 눈을 감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곧 결심한 듯 봄은 의자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우진과 현진이 있는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십분 정도 걸으니 큰 도로변 건너 학교 정문이 보였다.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술집이라 가는 데까지 그리 긴 시간이 들진 않았다. 질끈 묶은 운동화를 신은 발을 한걸음 내딛으니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시끄러운 말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왔다. 봄은 숨을 삼키고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바쁘게 움직이는 점원은 봄을 지나쳐갔다. 고개를 둘러 가게 안을 보니 두 친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가게 안쪽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곳에 도착하니 익숙한 신발 한 켤레가 놓여있었다. 현진의 운동화였다. 그 옆엔 모르는 신발들이 줄줄이 늘여져 있었다. 여섯 일곱 명 정도 되는 것 같은 양이었다.
연락하고 올걸. 그랬나.
봄은 문앞에 서서 조금 망설였다.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크게 어렵지 않던 그였지만 이후로 조금 힘들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을 알고 있었다. 괜히, 떨리는 손을 물기 뭍은 걸 털어내는 것처럼 털어냈다. 그리고 큼큼 목까지 가다듬고 문을 열려는 순간 제일 듣고 싶지 않던 목소리가 방문 틈 사이로 새어나왔다.
“봄이랑 진짜 그런 거 아니었다니까.”
영주였다. 이어지는 목소리도 아는 이었다. 조금 전까지 문자를 나누던 사람.
“진짜 아니에요?”
“근데 엠티 때 진짜 갑자기 그 난리는 왜 친거래요?”
“그러니까 내 말이. 아~ 난 자고 있어서 그거 못 봤잖아.”
“그걸 봐서 뭐하게? 난 겁나 놀랐다고. 갑자기 애가 미친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니까…”
우진과 현진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려왔다.
“여튼… 진짜 아니니까. 이제 묻지 마.”
“그래~ 이제 형한테 봄이 관련된 거 그만 물어라. 안 그래도 이상한 소문 난 거 때문에 머리 아파하던데.”
“아- 그 소문…”
봄은 뒷얘기까진 차마 듣지 못하고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허억…”
잠깐 뛴 것 뿐인데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뛰었다. 목 끝에 비릿한 피 맛이 올라왔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방금 얘기를 한 사람이 정말 우진과 현진이었을까?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그들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계속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하다 못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속으로 아니라고. 아니라고 외쳐대니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거의 주저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순간 시야가 흐릿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봄은 몇 달간 누르지 않았던. 몇 번이나 지우고를 반복했던 번호를 눌렀다.
뚜르르- 신호음 소리가 몇 번 울렸다. 몇 초 동안 계속 울려대던 신호음은 결국 끊어지나 했는데, 통화연결이 되었다. 하지만 휴대폰 너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드문드문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소음만이 들릴 뿐이었다.
“…어디야.”
봄은 달달 떨리는 입술을 떼었다.
“…그건 왜 묻는데.”
“학교 정문 앞. 곱창집이야? 옆에는 누구 있어. 현진이랑… 우진이 있어?”
“…맞는데. 갑자기 전화 와서는 지금 뭐하자는 거야?”
냉정해진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아.
정말이었구나. 정말 그 두 사람의 목소리였구나. 봄은 휴대폰을 붙잡은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하자는 건데. 지금 전화해서.”
봄이 아무말도 하지 않자 딱딱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봄은 불규칙적으로 나오는 호흡을 겨우 가다듬고 다시 입을 떼었다.
“…지금 만나.”
“뭐?”
“그 가게 주변이니까 만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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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12 23:58 | 조회 : 767 목록
작가의 말
최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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