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 (完)

"와아아아아아아아!"

관중들이 외치는 환호와 동시에 다시 태세를 갖춘 두 대의 마차가 동시에 줄을 맞춰 출발하기 시작한다. 원래의 의식을 거행할 장소는 이곳이 아니기에 자리를 옮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출발한 마차에는 이 축제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각각 타고 있었다. 그들을 향한 거대한 울림은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수백 명의 기사도 전율이 돋을 정도였다.

"다스 에이나 폴로 폐하 만세!"
"용사님, 저희 <유메니티>에 어서 오세요!"

각각 이 나라를 대표하는 자와 세계의 위협에서부터 민중을 구하는 자들에 대한 그들의 호의가 명확하게 들린다. 두 사람도 그들의 호의에 대답이라도 하듯, 주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들의 곁에서 보좌해주는 조연 정도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나온다.

"일리아나 님! 너무 아름다워요!"
"데클렌 씨, 오늘도 멋진 근육이구먼."
"저희 쪽도 좀 봐주세요, 위트니 님!"
"켈럽 님, 부디 신의 축복이 있기를!"

앞의 마차에서는 용사 일행의 이름을, 그리고 뒤의 마차에서는 후방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두 여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와아아아, 제 1왕녀님! 사랑해요!!"
"어어, 저기. 제 2왕녀님도 계셔! 이번에 나오시는 거 처음 아니야?"

(...저번에도 나왔거든.)

한 대중의 말이 그녀의 귀에 날카롭게 꽂힌다. 매년 듣는 말이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그녀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인 듯하다. 정작 그녀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원치 않았지만.

(매번 이 축제에 참석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자주 대중들과 소통을 하는 언니 쪽을 더 기억하는 거네. 1년에 한 번 얼굴만 비추는 나를 기억해달라는 게 오히려 더 무리려나.)

힐끔, 반대편의 기자들 쪽을 살펴본다.
전국에서 온 그들은 서로가 더 좋은 그림을 담기 위하여 몸을 밀치는 등의 과열된 경쟁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정보를 더 좋게 하려고 저렇게까지 하다니, 쓸데없다.

(위에서 보니 여러모로 시끄럽네. 거기에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고.)

"제 1왕녀님! 여기 좀 봐주세요! 이쪽을 향해 한 번만 웃어보세요!"
"저기.... 저쪽의 제 2왕녀님도-"
"그쪽보다는 이쪽이 먼저야! 저, 제 1왕녀님. 부디 이쪽으로 한 번만 미소를-"

그 장본인이 들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지 크게 떠드는 기자단. 아무래도 그녀보다는 그녀의 언니 쪽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더 좋기에 하는 행동이겠지만, 그래도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물론 그녀도 자신의 혈육보다는 더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사실 자체만은 오히려 그녀가 더 뼈저리게 알고 있다.

(...내가 언니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다른 자가 뭐라 해도 나 자신이 용납 못 해.)

힐끔, 뒤를 돌아보며 그녀의 뒤에 앉아 있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았다.

관중들을 향한 미소를 억지로라도 지어야 할 뿐만이 아니라 얼굴조차 마음껏 돌리지 못하므로 눈곁질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윤기가 흐르는 그녀의 아름다운 분홍빛 머리카락과 미소를 지은 듯, 안 지은 듯한 미소만큼은 확실히 보인다. 어색한 그녀의 미소와는 아주 달랐다.

(몇 년 전에 겨우 익숙해진 나와는 달리, 여전히 언니는 표정관리가 남달라. 여전히 표정 연기를 잘한다니까.)

예전부터 대중들을 향한 그녀의 표정은 저 미소로, 항상 똑같았다. 그녀가 웃는 표정은 다이아도 많이 봐왔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단 한 번도 진심의 미소를 지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시간 전의 일이다.

많은 시간을 함께해온 그녀조차 눈치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겉으로는 아주 완벽한 미소를 어쩌다가 한 번 보게 될 관중들로서는 알아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언니를 뛰어넘어야 해.)

그러나 다이아의 목표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처음은 F반이라는 어긋난 반으로 시작하였지만, 노리고 있는 건 그녀가 가진 지위인 A반 1위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주위의 어떤 적들과 장애물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었다. 역시 제일 주시해야 할 자들은 위협적인 유망주인 7각성일 터.

(만약 그들 중 언니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는 이가 존재한다면....)

지금의 그녀가 그랬듯, 아마 그럴 리는 없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적어도 언니 바로 아래까지의 실력은 되겠지.)

-무심코 자신이 실력을 파악할 수가 없는 자가 있을지 고민이 되는 그녀였다.


★★★


"어, 쟤가 제 1왕녀인가."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두 대의 마차가 이 환영식의 중요 장소가 되는 광장 중앙 부분 쪽으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이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용사 일행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되는 희귀한 상황이 되었다. 특히나 맨 앞에서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는 용사의 뒤에 있는 자들의 얼굴은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셈인데.

"그리고 저기에 있는 드레스를 입은 처음 본 여성이 이번에 지난이 구한 새로운 용사 후보인가? 이제 곧 의식을 치르고 전국에 용사라고 널리 퍼지겠군."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나온 용사는 이상하네.
우리가 분명 용사들을 오직 <웨포스트>에서만 탄생하게 설정했는데, 어째서 <웨포스트>가 아닌 여기 <유메니티>에서 발견되었는지 심히 의심이 가는데.

"저번에는 흑월의 동선과 <그랜드 스쿨>에 대한 걱정으로 가볍게 넘어갔던 내용이지만, 이것도 좀 이상하군. 아무래도 여기에 대해서도 알아낼 필요가 있어 보여."

가장 생각할 수 있는 오류라면 아무래도 '세계의 규칙'이 어긋났을 때의 일이겠지만, 문제는 그런 일이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에 의문이 든다. 저번에 지난이 말한 세계의 불만이 많아진 이유와 관련이 있는 건가?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둘의 공통점이 이상 현상이라는 데에는 같으니까. 그것도 포함해서 로딘에게 한 번 조사를 시켜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녀석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중요한 일이니만큼.)

아무래도 <단지로우스>의 수호자의 담당 구역이 그런 만큼, 그 녀석은 해야 할 일이 많을 테고. 그렇게 되면 믿을 수 있으면서도 유능한 다른 정보원을 구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그가 인정한 로딘이다.

"큭, 벌써 로딘 녀석이 내게 쏟아놓을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구먼. 완전히 그 녀석의 습성을 알아버렸어."

너의 임무가 쌓이는 건 나로서도 미안한 일이지만, 나도 지금은 놀고 있는 게 아니니까. 이건 엄연한 업무다, 로딘.

뭐, 업무 이야기는 어찌 됐건 나도 이 축제의 분위기는 잘 즐기는 중이다. 이 나라의 정상과 용사들이 만나 의식을 거행하고, 축전이 끝나면 거기서부터 온 국민이 즐기면 될 뿐이다.

"그나저나 제 2왕녀인 다이아 님은 아무래도 이런 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듯하군. 저 반대편에 있는 제 1왕녀랑은 다르게."

혹여나 주위에 열성적인 그녀들의 팬이 있을까 말을 조심스럽게 바꾼다. 이 나라 왕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학교에는 안 왔던 거였구나.

저 멀리 보이는 분홍색의 머리카락과 웃는 미소 외에는 잘 안 보이는 위치에 있기에 얼굴은 볼 수가 없지만, 다이아와는 달리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중이므로 그녀보다는 잘 해내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또 저 녀석의 성격상 활발한 미소로 대중들을 대한다는 것은 무리일 테니까. 내가 지금껏 봐온 그녀의 행동은 거의 다 싸우는 것밖에 없었고."

원인을 따지자면 거의 다 그녀가 피해자이기는 했지. 한 모험가의 억지스러운 보상에 재-현의 일방적인 시비. 그러나 그 현상을 그녀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저 봐. 저기 기자들을 보면서 자신도 알게 모르게 인상이 약간 찌그러졌잖아. 뭔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처럼 퍼포먼스에 집중도 잘 못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역시 저 녀석의 성격상 나랑은 잘 맞을 것 같지가 않군."

거기에 계속 힐끔 제 1왕녀를 쳐다보는 행위를 알게 모르게 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는 관중들은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어.

(여기서부터는 추측이지만, 아무래도 다이아 왕녀는 <그랜드 스쿨>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거기에 재-현과의 대화를 통해 언니를 향한 약간의 존경심이 있달까. 아마 자신의 등급을 신경 쓰는 것이겠지.)

그 마음에 만약 그녀를 힐끔 쳐다보는 것이라면 얼추 들어맞기는 하다. 뭐,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만큼, 나는 확신하지 않겠지만.

그러던 사이, 드디어 두 마차가 어떠한 지점에 도착해 천천히 멈춰섰다. 모두에게 손을 흔들며 퍼포먼스를 하던 두 사람이 천천히 가운데에 건설된 제단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제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통해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의 뒤에는 수많은 관중과 용사 일행, 왕녀들이 서로 한 지점을 쳐다보며 의식에 집중한다. 두 일행을 이곳까지 이끌어주었던 마차는 서서히 다른 쪽으로 빠져주었다.

"오오! 드디어 시작하는구먼!"
"이번에도 평화롭게 잘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위의 관중들이 저마다 희망의 말을 뱉으며 그 행사를 보고 있었다.
그래,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기쁨으로 가득한 곳이지, 절망과 배신이 가득한 골치 아픈 곳이 아니란 말이다. 무엇보다 뒤처리가 거의 필요 없고.

(두 수호자의 성격도 그렇고 담당 지역도 그렇고. 하, 완전히 반대구만.)

곧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끝에 도착할 무렵, 뒤의 멋진 옷들로 치장을 한 용사 일행과는 달리 용사는 갑옷과 검을 짓고 온통 무장된 모습으로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가진 성검을 쓰는 만큼, 저들과 같은 의상으로는 무리일 테니까.

"자, 준비되었는가."
"그렇습니다, 폐하! 곧바로 하도록 하죠!"

곧장 왕의 앞에서 자신이 가진 성검을 뽑는 용사.

용사라고는 해도 자국의 왕 앞에서 무기를 꺼내는 것을 용인하는 왕의 그릇도 참으로 큰 것 같다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물론 뒤의 용사 일행들은 무기가 없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안전 대책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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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알지 못할 마법을 주창한 용사는 자신이 들고 있는 성검을 들고는 제단에 있는 검의 대좌를 향해 검을 끼워 넣었다. 파악, 하는 소리와 함께 마법에 감긴 성검이 능숙하게 대좌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성검이 빛나더니 제단 위에 있던 자들뿐만이 아닌 밑에 있던 조력자들, 더욱이 밑에 있는 관중들까지도 생생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의 기둥이 위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빛이 전 사방으로 퍼진다.


-파아아아....


"오오, 이것이 바로 신에 선택받은 용사님의 신의 기적?"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먼. 정확히 1년 만이야!"

매년 하는 행사니, 성인들에게는 이미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 마치 주변의 아이와 같이 눈을 빛낸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구먼.

(...그와 더불어 나의 마력이 조금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네. 뭐, 정말 극소량이니 신경 쓸 것도 없겠지만.)

밤에 날아다니는 반딧불과 같이 아직도 공중에서 머물러 다니는 빛의 입자. 아름답게 호를 그리며 바닥에 떨어져 사라지는 그것은, 마치 오늘이라는 날을 축복하는 것처럼 풍요롭고 아주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휴우...."

용사는 대좌에 꽂힌 성검을 가볍게 빼 들곤, 다시 자신의 검집으로 넣었다. 그저 오늘도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듯한, 별 의미가 없는 표정이다.

(...저런 표정도 짓는 건가.)

주위에 있던 용사 일행들과 지난, 그리고 몇몇 인물들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이 모든 것이 정치적인 행위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고, 몇십 번을 보다 보니 사람들이 느끼는 감흥도 잊어버린 거겠지.

그러나 왕으로서 다스 에이나 폴로는 그러한 것들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드러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을 터다. 대중들을 위한 정치적인 퍼포먼스라고 해도 그는 힘차게, 여기서 선언해야 한다.

"들어라! 이것이 바로 여기의 용사 일행들의 힘이다! 거기에 우리 <유메니티>가 인류를 위한 용사 일행에 대한 일조를 아끼지 않겠다! 마왕 따위는 두렵지 않다. 우리 <유메니티>와 여러 나라가 있는 한!"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단순한, 그러나 지도자의 흔들리지 않은 심지의 강함을 직접 목격한 많은 이들의 환호가 이어진다. 곧이어 울려 퍼지는 환호에 새로 이곳의 조연이 된 한 명의 여성이 당황할 정도의 큰 울림이었다.

계속 외쳐대는 외침 속에서 다음 얘기를 하기 위해 다스 에이나 폴로가 주먹을 쥔 손을 위로 올린다. 그러자 곧바로 대중들은 조용해졌다. 그건 완전히 그들을 휘어잡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아, 그러나 다들 진정해라. 아직 짐의 말은 끝나지 않았으니. 그것보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소식이 있다. 오늘, 이곳에서 새로운 용사 일행이 나타난다."
"-?!"
"설마! 아직 <웨포스트>에서 그런 정보를 얻은 적이 없는데!"

믿기지 않는다는 등, 몇몇 인원들이 더욱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몇몇 소식 덕분에 저번보다 더 많은 기자단이 모여 있다. 그런데 그런 특종을 아무렇지도 않게 뿌리는 그의 태도가 더 놀랍다.

또 그런 고급 정보를 얻었다고 해도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당당히 말할 만한 얘기는 아니기에 또 기자단들이 혼란을 겪고 있었다. 평소에도 다스 에이나 폴로가 얼마나 인품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소곤거림과 침묵의 혼합에 다스 에이나 폴로는 띄워져 있던 분위기를 다시 진정시키려는 듯이 낮은 음성으로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흥분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아마 그 누구도 나의 말을 믿지 못하는 듯한 눈치군. 그거야 당연하겠지. 나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으니까. 용사들의 나라라 불리는 <웨포스트>에도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내가 말했으니까 말이다."
"소, 송구합니다만, 그렇습니다, 폐하...."

기자단 중 한 사람의 대답이 이어지자,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을 이어간다.

"그러나 용사가 탄생했다는 것에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말보다는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더 빠르겠지. 자, 소개하겠다, 새로운 용사 후보인 이니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용사 일행이 아닌데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한 여인이 떨면서 나오고 있다. 표정은 포커페이스지만, 몸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하긴, 평범한 평민 혹은 귀족이라고 해도 이러한 자리에서 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까. 오히려 차분한 얼굴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칭찬해줄 가치가 있다.

"저 처자가 바로...."
"이번에 탄생한 새로운 용사님...?"

기자들도 반신반의한 상태로 제단을 향해 올라가는 이니라 불린 여성을 보고 우선 내용을 쓰기 시작한다. 아마도 전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나도 로딘에게서 들은 정보로 그녀가 용사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정말 강해 보이지는 않는군. 평범하디 평범한 평민 소녀야.)

주위의 시민들도 이러는데, 과연 전투에 몸을 담근 모험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평가와 시선이 그녀에게 날아가는 와중에도 이니는 묵묵히 제단을 향해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선 왕의 말에 따라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게 된다.

그러나 한낱 평민이었던 자가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그것도 이런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크게 한마디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실제로 그녀를 향한 기자들의 조사하는 듯한 눈초리에 얼어붙은 듯 표정이 굳었다.

(본래 자신의 성격이 이런 것에 활발한 사람이라도 떨릴 정도의 많은 관중이다. 나보고 하라고 하면 부담감에 죽을 것 같아.)

"자아,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게. 아직 말도 꺼내지 못해 이렇게 얼었잖나. 부디 따뜻한 박수로 그녀를 맞이해주는 것이 좋겠군. 그게 아니면 타이밍을 잡기 위해 카운트 다운이라도 해볼까?"
"-?!!?!?!!??!"

보다 못한 다스 에이나 폴로가 호응을 위해 구조선을 내려주지만, 오히려 그런 방법이 더 그녀에게 부담이 갈 텐데. 호의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저건.

문득 옆의 용사 후보가 놀란 나머지 왕을 째려보는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이겠지? 평범한 한 사람의 평민이 그런 배짱이 있을 리가 없다. 그와 한 번이라도 이야기를 나눠본 자가 아니라면야 말이야.

"모두, 그녀에게 용기와 격려를 해주게나. 자아, 관중들이 셋을 세면 크게 자신의 이름과 포부를 밝히는 거다."
"어.... 폐ㅎ-"
"-자, 하나!"

그녀의 동의도 없이 멋대로 수를 세는 왕. 아마도 시간을 아끼기 위함이겠지만 상당히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에는 이니의 부담감을 빼면은 상당히 좋은 작전이기는 하다.

""""두울!"""
"저, 폐하! 저어, 폐하?"

그녀의 억울한 한이 맺힌 목소리가 바로 뒤의 노인에게 꽂히지만, 이미 흥분해버린 관중들과 들떠있는 왕의 닫혀버린 귀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황하는 모습이 심히 귀엽군.

(어디, 나도 같이 한 번 해볼까.)

이런 행사에서는 다른 자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괜히 관심받고 싶어 조금씩 튀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셋!"

자. 과연, 그녀가 뱉을 첫 마디는 뭘까-

"가라."

모두가 주목하는 그 순간, 내 귀에 꽂힌 불길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많은 것을 잃어버려 거의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도 위태위태한 누군가와 닮은 목소리.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내가 그 목소리를 잡아낸 이유도 그것과 매우 닮아서였을까?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내가 불길함을 느끼고 목소리가 들린 위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사방에서 건물이 폭발하는 소리와 동시에 여러 날카로운 파편들이 튀어나오면서 수많은 그림자와 무기를 든 자들이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상황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로딘이 분명 흑월이 이곳으로 닥쳐온다고 했었지.... 설마, 지금이 그때인 건가?"

흑월 담당의 정보원인 로딘에 들은 바에 따르면, 이곳으로 오는 것은 확정적이라지만, 분명 시간대는 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왕의 경비대와 기사 단장, 거기에 용사들까지 있는 지금 습격을 한다고?

"아무래도 나의 예상보다도 더 막 나가는 놈들이구만.... 흑월!"
"-왕을 죽여라!"
"아주 찢어발겨 버리자!"

몰려오는 검은 인파 속에 나는 지난의 표정이 아주 잠깐이지만 썩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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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3-28 16:17 | 조회 : 841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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