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감각 (2)

"흠흠, 그 옷도 무척 잘 어울리십니다."

노년의 집사가 메이드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보며 말한 첫 마디. 아름다운 그녀와 어울리는 순백의 드레스였지만, 정작 착용한 그녀의 반응을 보면 어색한 듯이 미소를 짓는 것이 많이 불편해 보인다.

"어이쿠, 그 옷도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그럼 곧바로 다른 옷을 준비하도록...."
"아뇨, 아뇨! 그, 그게 아니라 저에게 이런 과분한 옷은...."

한 사람의 미녀가 메이드를 시켜 다른 옷을 준비하라는 집사의 말에 당황하며 재빨리 손을 흔들며 거부 반응을 보인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접수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생활을 하게 되는 데에는 아직도 익숙지 않다.

(우우.... 도대체 이게 뭐냐고.... 그때 길드 마스터가 주신 그 편지 하나로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어떻게든 조금씩 적응은 해나가려고 노력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모든 습관을 하루아침에 버리기는 쉽지 않은 듯했다.

"만약에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무엇이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준비할 수 있는 물품이라면 저희들이 전부 준비하도록 할 테니까요."
"네, 네. 호의는 고맙습니다만.... 이걸로 괜찮으니까요...."

자신과 같은 한낱 평민이 왕가의 인물들과 몇몇 귀족, 기사와 같이 높은 계급의 인원들만 들어올 수 있다는 왕궁에 들어오다니 그것만으로도 황송할 지경이다. 그것도 메이드와 집사와 같이 일하는 상황이 아닌 귀족급의 대우를 받는다니.

사실 이것 자체가 그녀로서는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기에 당황하는 것은 필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니. 거기에 자신이 지금 착용한 옷도 모두 얼마나 고가의 물품들일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더욱더 그녀를 공포심으로 물들였다.

(이, 이거 하나를 더럽히게 된다면 얼마나 일을 해야할지.... 우우....)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련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옷을 치우는 집사와 아름다운 외모의 메이드가 그녀를 보조함으로써 오히려 그녀의 불안과 부담을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이니 님의 드레스는 그걸로 하시는 건가요?"
"아, 네. 다른 것들도 좋긴 하지만, 이것도 매우 멋진 드레스라서요...."
"그렇죠, 마치 전부 이니 님을 위해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딱 어울리는 아름다운 드레스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이해하는 집사와 용모를 칭찬하는 메이드였지만 실은, 이 말을 들은 이니의 속마음은 이랬다.

(사실, 이런 드레스를 입어본 경험이 한 번도 없어서 솔직히 뭐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요!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이런 거에 관심을 둘 걸 그랬어....)

그러나 땅을 치고 후회해도 이제는 뒤늦은 이야기.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대로 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이 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더라도.

귀족들이 사교 파티를 열었을 때 입는 드레스를 한낱 평민인 그녀는 입어본 적이 전혀 없다. 이 사항은 모든 평민 여성들에게도 적용되는 얘기로, 당연한 계급 사회의 현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므로 어울리지 않는 귀족의 옷을 입은 그녀로서는 많이 불편할 수밖에.

(끄응, 몸에 꽉 껴서 어떤 면에서는 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거기에 잘못하다가는 밟아서 넘어질 것 같아.)

애초에 이런 의상을 입어볼 일이 평생 없을 줄 알았던 그녀였기에 평소의 복장과 비교하면 불편함은 그 배가 되는 기분이 된다. 물론 이런 기분을 눈앞의 두 사람에게는 죽어도 말할 수가 없다.

"그러면 이제 의상 준비도 다 되었으니, 곧바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용사님 일행도 방금 이 왕궁에 오셨다는 소식이 왔으니 아마 만나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니 님께서도 그분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가질 필요성이 있으시니까요."
"요.... 용사님과 만남...!"
"예, 왜냐하면 이니 님도 이제부터는 용사님의 파티에 들어가게 될 분이시니까요. 모두 친절하신 분이니, 안심하셔도 될 겁니다."
"아, 예.... 그건 아는데요...."

이니 자신은 용사와의 만남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사실에 온몸이 떨렸다. 그건 바로-

(-맞다! 나, 이제부터 용사님과 함께 가게 되는 거지?!)

이제부터 그들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과 동시에 여러 모험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패닉이 일어났다. 단순히 아는 사이에 불과한 것이 아닌, 이제부터 계속 같이 다녀야 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아직 대중들은 이니 님이 새로운 용사로 발탁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늘 용사 환영식에서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 용사라는 사실이 밝히게 될 겁니다. 조금 후에 다른 용사님들과 같이 공식적인 동료로서 행차하시게 될 예정입니다."
"....."

집사의 말로부터 정말로 자신이 용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째서 신께서는 이런 중요한 운명을 자신에게로 맡긴 것일까.

"그래도 저희로서도 새로운 기분이 드는군요. 여태까지 용사님은 <웨포스트>에서만 각성했던 관계로 저희 <유메니티>에서 이런 귀하신 분이 탄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로써 이 나라의 중요성도 상승한 것 같군요."
"그건.... 좋은 일인 건가요?"

그녀의 옆을 걸어가고 있는 노년의 집사가 웃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되묻는다. 이니로서는 그런 나라 간의 관계나 정치적인 요소에 대한 정보에는 전무했기 때문에 웃어야 할지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요! 이니 님의 고향이시며 저희의 고향인 이곳 <유메니티>에 용사님이 탄생했다는 말은 그만큼 앞으로도 더 많은 용사님이 이곳에 각성하시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니까요! 그만큼 다른 나라에서도 <유메니티>를 신경 쓰게 될 테고 나라가 더욱 안정해질 거라는 말이 되는 거라 마찬가지라 할 수가 있죠!"

이니는 열정적으로 말하는 집사의 모습을 보며, 문득 3일 전의 기사 단장의 말을 떠올린다. 공통점으로는 두 사람 모두 이 나라에 대한 예찬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

(두 분은 정말 이 나라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시구나.)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항상 이 나라를 위해 일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니, 용사라는 위치만큼 그 어떤 이들도 높게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는 위치가 되었다.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평민 출신인 그녀가 껴안기에는 약간 버거운지 계속된 긴장감에 포커페이스마저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그나저나 오늘이 지나면 더는 이 나라가 이니 님께 폐를 끼쳐 드리지 않겠군요."
"-?"

그런 위기 속 난데없이 시작된 집사의 그 말에 이니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며칠 전의 사건 말입니다. 이 나라에도 아직 그런 어두운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 그리고 더욱더 경비를 강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그 불행한 사건 말입니다."
"-아."

순간 칠흑의 망토를 입은 세 사람이 든 단검과 쫓아오는 장면이 주마등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흘러갔다. 현재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용사의 정신이라는 패시브적인 효과도 지니고 있었지만, 한때의 강렬했던 그 일이 일으킨 나비효과가 지금을 만든 만큼, 잊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그, 저기.... 그...."
"아! 죄, 죄송합니다. 이니 님. 제가 말하려는 것이 용사님께는 큰 트라우마가 되었을 수도 있겠군요. 다시 한번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딱, 딱히 저도 아무 데도 다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까요!"

순간 말실수를 한 것처럼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는 집사의 말에 이니는 진심으로 당황한 나머지 포커페이스조차 무너진 상태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손을 휘적거리고 있다.

"...용사님의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희로서도 어떻게 그들이 저희조차 알아채지 못한 용사님의 탄생을 그들이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그들을 체포하기 위한 광역 수사에 나섰으니 걱정하시진 않으셔도 될 겁니다."
"....."

그런, 자신에게 왜 이렇게까지 일을 해주느냐고 물어볼 찰나의 이니였지만, 이 일은 딱히 그녀의 신분 때문만이 아닌 다수의 시민을 구하기 위한 방어 정책이기도 했다. 잠시 착각한 자신이 순간 부끄러워져서 말을 잇지 못한다.

(벌써 자신이 윗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거냐, 나...!)

"이니 님을 놓친 그들로서도 현재 상황에서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만큼, 수사하고 있다는 말로도 충분한 견제가 되겠죠. 그렇지만 그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더라도 오늘 이니 님께서는 용사님들과 <웨포스트>로 이동할 예정이시니 괜찮습니다. 호위에도 기사 단장이 나올 예정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복도를 걸어가는 와중에도 그녀를 안심시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한 노년의 집사였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그녀는 며칠 전의 기사 단장과 걸어갈 때처럼 정신이 다른 데로 가있는 상태였다. 그때는 폐하와의 알현으로 인한 긴장감 때문이었다면, 이번에는 뭔가 싱숭생숭한 그런 기분이 그녀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까.

한순간에 바뀌어버린 주변 환경과 주위의 사람들. 그런 와중에 또 타인과의 강제적인 모험을 떠나야 한다. 물론 집사의 말대로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리고 처음으로 발탁된 <유메니티> 출신 용사로서 해야 할 임무는 이해하지만 아무래도, 라는 꼬리표가 그녀의 머릿속을 떠도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용사라는 직책이 생겼다고, 다른 사람들과는 내가 다르다고 한순간이라도 생각한 내가 밉다. 그리고 항상 바뀐 적 없던 내 거주지인 여기 <유메니티>를 떠나다니.... 조금 마음이 그렇네.)

거기에 용사의 마음이라는 패시브적인 능력 덕분인지 평소의 이니와는 다르게 냉철하게 판단하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 일에 어느 정도 거부감이 있는 평소의 그녀와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용사의 이니가 합쳐진 덕분인지 약간 혼란스러운 기분에 휩싸인다.

"....."

집사가 힐끔 그녀의 표정을 몰래 바라보았다.
옆의 소녀는 자신의 표정에 약간의 금이 가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치고 있는 듯했다. 이미 몇 번씩이나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온 집사였기에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사항들이 눈에 선명히 보이는 듯이 알아챌 수 있었다.

(...조금만 충고를 해두는 것이 좋을까요.)

"이니 님, 너무 혼자서 많은 것을 짊어지고 계신 것으로 보이는군요. 제가 보기에는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자신의 고민거리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적이 거의 없으신 거로 보이시는데요, 맞죠?"
"...!"

옆의 소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 들킨 사소한 움직임만으로도 그는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삶의 경험에서 얻은 간파 능력이랄까.

문득 눈앞의 소녀와의 성격은 정반대지만 자신이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는 특성이 그녀와 닯은 한 명의 왕녀를 생각하는 집사. 그런 위태위태한 상황을 헤쳐나가려는 두 사람의 상황이 마치 한 사람처럼 겹쳐지며 그는 본래의 계획과는 다르게 그녀에게 말을 걸게 된 것이다.

"압니다, 알아. 저도 이니 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일이 무슨 일인지 안단 말입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당황하시고 계시다는 것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오게 될 역할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그, 저...! 그, 그게 아니라...."

결국은 포커페이스가 깨져버린 채 집사를 향해 큰소리를 내는 이니. 그러나 바로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는 바로 집사를 향해 사과한다.

"아.... 죄, 죄송합니다. 여태까지 계속 저를 도와주신 폐하의 집사분께 무슨 결례를...."
"아뇨, 신경 쓰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충고해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너무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혼자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을 때는 남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고요."

그러면서 그는 뒤에서 두 사람을 따라오고 있던 아까 전의 메이드를 가리켰다. 너무나도 기척이 없어서 이니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어느새, 이런 곳까지...."
"흠, 포인트는 그게 아니지만 말이죠. 어쨌든 저와 얘기를 해보셔도 좋고, 만약 저와의 대화가 불편하시다면 그녀에게 상담을 청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희도 이니 님의 대화를 들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미소지으며 그의 말에 긍정하듯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메이드. 그런 그들의 호의에 이니는 내심 더욱 당황할 뿐이었지만 집사가 그런 예민한 포인트를 놓칠 리가 없다.

"뭐, 저희 두 사람에게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예를 들어서 설명한 것뿐입니다. 아직까지 이니 님과 저희에게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얘기할 정도의 사이가 형성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이니 님이 생각하시는 믿음직한 분이 계신다면, 그분께는 한 번 상담을 요청해도 되지 않을까요?"
"믿음직한 분이라면...."

그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던 그녀는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는지 순식간에 얼굴을 붉히고는 페이스를 완전히 무너트렸다. 이 반응으로 보아 그녀에게도 누군가 믿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이 상태라면 아무래도 안심이군요. 이니 님의 정신이 어느 정도 멀쩡하셔서. 저희 <유메니티> 출신의 용사님을 저쪽 <웨포스트>의 꾐에 넘어가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죠.)

집사는 내심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목적 없는 친절을 타인에게 베풀지는 않는 법. 혹여나 이 나라의 명성을 더럽힐까 했지만, 그런 존재로는 보이지 않으니 안심이 되었다. 물론 그녀가 고민하는 것에 대한 충고도 진심이기는 했지만, 타산적인 생각이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최근 들어 용사 파티의 내부에도 무슨 일이 있다는 소문도 있고, 아무래도 무언가 의심스러운 점도 많으니까요. 과연 그녀가 이 나라의 내부 정보를 말할 수 있을래도 없고, 여러모로 이 정도면 합격점입니다.)

타인에게서 자신의 비밀을 감추는 법은 숙지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타인의 비밀을 알아채는 법은 몰랐던 그녀. 이니는 그런 집사의 속내도 모른 채, 그저 집사가 이끄는 데로 갈 뿐이었다.

"자, 드디어 다 왔습니다. 부디 이번 기회에 다른 분들과 친해지기를 바라면서 저는 여기까지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예? 이 안으로 집사님께서는 들어가시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용사님의 일행 중 몇 분은 타국의 집사인 제가 들어오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의 진정한 속내를 깨닫지 못한 그녀를, 집사는 <웨포스트> 출신의 용사와 <유메니티> 출신의 용사인 이니와의 만남이 이루어질 면회실로 안내할 뿐이었다. 이 앞에서는 그가 해준 충고를 바탕으로 움직여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갖는다.

집사는 굳어있는 그녀를 대신하여 면회실의 문을 열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


"이건, 생각보다 괜찮은데...?"

기숙사 안의 내 방을 찾아 들어가 보면, 예상외로 모든 시설이 내가 살기에 충분하게 되어있었다. 틀림없이 나는 스스로의 등급에 따른 차별 대우를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편에 속하는 것 같다.

스스로 공부도 가능한 책상과 <플러스토어>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괜찮은 침대.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크게 이 두 가지 정도였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나는 만족한다. 창고 수준이 아니라서 참으로 다행이군.

"그래, 평소의 생활에서도 눈치가 보이는데 의식주까지 그러면 어떻게 살겠어. 차라리 그럴 바에야 다른 학교로 가는 게 낫지."

이 종이에 쓰여 있는 바에 따르면 음식도 전부 무료로 제공된다고 하고, 이렇게 교복도 무료로 주었으니 의식주만큼은 학생들 사이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낡은 것 같은 F반의 교실도 청소하면 금방 깨끗해질 것 같기도 하고.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학교가 아직은 다른 반과 비교해서 우리 반에 차별을 준 행위는 없지. 정말 박 선생의 말대로 귀족과 평민 사이의 차별뿐만이 아닌, 반에 따른 차별도 없는 건가?"

반에 따른, 그리고 순위에 따른 불편한 시선들이 종종 보이기는 하지만, 그건 시스템상의 영향일 테고. 그렇게 따진다면 이 학교는 사실 우리를 공평하게 대하고 있다는 건가.

(...아니, 아직 확신은 좋지 않아. 나는 이 학교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상태이니까.)

우선 여러 번의 조사를 통해 이 학교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최우선이다. 만약 가지고 있는 단편적인 정보를 그대로 믿어버린다면, 그 사실이 전부 거짓이 되어버렸을 때의 절망은 더더욱 커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어느 정도의 의심은 필요하겠지.

시간을 확인한다. 이제 곧 15분이 다 되어간다. 슬슬 교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 5분 정도라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테니 여유가 있군. 이렇게 급박한 경험은 그리 많이 겪어보지 못할 일이니 무언가 신선하다.

"...오랜만이네. 이렇게 자의로 무언가를 하지 않고 누군가의 말에 움직인다는 일이...."

...어쩐지 그리운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책임감을 느껴 자의로서 무슨 일을 한다는 말은 듣기에는 좋아 보일지 몰라도 그게 몇백 년간이나 지속한다면 그건 외톨이라는 사실이 된다는 것을 언제부터 알아챘을까.

부하들도 내 말에는 웬만하면 간섭하지 않으니, 나로서는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즉, 실수가 없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것이다.

"비록 약간 냉철해 보이고 이상한 이 학교의 선생이기는 하지만...."

게다가 이 <그랜드 스쿨>의 시험관이라니 믿을 수 없기는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이런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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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3-28 16:13 | 조회 : 75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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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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