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조짐 (2)

그 소식은 모든 수호자에게 알려졌다.

지난은 주인의 명령을 받들어, 그분의 결정을 알린다. 수호자들의 반응은 각각 달랐으며 모두 그들의 주인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다.

.......

지난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오자마자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직접 제안하여 그의 주인이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움직인 게 아닌가. 설마 주인께서 직접 나설 줄은 몰랐고, 지금 계속 생각해 봐도 좋은 일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만약 이 사건을 계기로 또다시 불순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 또한 존재한다. 실제로 문제가 늘어난 걸 봐도 <테라피아>의 상황이 바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주인은 절대로 아무 생각도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


지난보다 더 오래 살아왔던 만큼, 그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택을 해왔다. 실제로도 깊은 고심 끝에 선택한 것들은 나중에 어느 정도의 이득을 가져왔을 정도.

(손해를 봤을 때도 전부 수습이 가능한 정도였고, 그 실수로 나라 하나가 멸망한 적은 아직 없지만···.)

물론 중요한 안건은 수호자를 모두 모아 의논하여 결정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괜찮은 판단이었다. 그런데도 이러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겠지.

어찌 됐건 이건 그의 주인께서 직접 결정하신 일. 이견은 있을 수 없다. 지난은 자신의 불안감을 떨쳐내었다.

"그건 그렇고 그 녀석들, 반응이 참 다양했었지."

문득, 조금 전 자신과 같은 지위에 있는 수호자들에게 명령을 전달했을 때의 반응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수호자들은 주인을 보조해 주고, 세계의 중요한 안건들을 맡은 매우 명예로운 직급. 주요 임무는 상황 보고 및 세계의 안건을 결정지을 중요한 회의 참석이다.

(그 수인 녀석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군. 각 종족마다 개성이 다르다 보니까 정말 질리지 않아.)

그리고 또 하나의 가장 큰 특징은 전부 다 같은 종족이 아니라는 점. 말하자면 각 종족의 대표 같은 것이다.

이러한 방식 덕분에 그들은 회의 때도 어느 한쪽에만 이익이 치우치지 않게 모두가 평등하게 나눠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이 반발할 테니까.

"뭐, 연락도 오랜만에 했으니···.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수호자들이 모두 모일지도 모르겠군."

곧 [세계의 수호자]들이 호출 받겠지.

직접 명령받은 수호자들은 그야말로 흥분 상태. 각자 그분을 모실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준비가 끝나면 이후의 예정을 위해 모두 모여서 토의할 가능성이 크다.

"뭐, 오늘은 푹 쉬자. 내일부터는 준비로 바쁠 테니까."


★★★


지난이 돌아간 후,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이동한다.
밖에는 인조 건조물을 받쳐주는 커다란 기둥이 있는 넓은 복도. 그곳을 지나며,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문고리를 잡으려던 손을 멈춘다. 이건 분명 그녀의 의견 표명일 테지.

그 여성은 순백의 날개를 등에 달고 있었으며, 머리 위에는 황금빛의 고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곳 <천계>를 담당하는 수호자인 그녀의 이름은 세라 피아.

원래 내게는 따로 내 보조를 맡은 집사가 있었지만, 지금의 그는 출장을 떠났으므로 실질적으로 나를 보조해주는 역할을 하는 건 그녀다.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 거지?"

분명 지난을 시켜 모두에게 전해달라고 명령했으니 내용 자체는 알고 있을 터. 그건 이곳에 있는 그녀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그녀가 어째서 나를 불렀을까?

"방금 전, 그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시는 것인지요?"

지금 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 보자면, 나의 본심을 직접 듣고 싶은 건가. 그게 아니면 내가 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걸까.

그녀는 나를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실제로 그녀는 내가 대충 예상했던 질문을 꺼냈다.

"아무래도 홀로 가시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역시나, 과보호.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세라 피아. 그 이유는 그곳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기인한 불안이겠지, 아마.

그녀는 이곳, <천계>에서만 오랫동안 생활했으므로 나와 같이 <테라피아>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한다. 오로지 보고서로만 그곳의 상황을 유추하고 있는 것뿐.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맡은 장소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네.)

다시 생각해보면 어떻게 지금까지 이 노동을 해왔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렇게 속으로 평화로운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녀가 헛기침했다. 빨리 대답해야겠군.

"걱정하지 마. 미뤄두었던 업무를 재개하는 일이니까. 어차피 한 번쯤은 갈 생각이었어."
"그렇다면 저도 같이 가는 것이···."
"아니, 너는 나 대신에 이곳을 맡아야지. 어차피 몇 번씩 돌아올 테니까."

그녀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나도 잘 안다.

모든 수호자들에게 지옥이라 여겨지는 '그 사건'을 계기로 나에 대한 과보호가 시작되었지. 그때는 나에게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상처만 난 기억으로 남았고.

전에 있던 불행한 과거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 얼굴에 나타난 듯, 세라 피아는 황급히 추가로 발언했다.

"부디 그런 표정은 그만두어 주십시오. 저는 주인이신 위대한 존재의 명령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모든 수호자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겁니다."
"그래···. 표정으로 드러난 것 같아서 미안하다. 그러면 내가 그곳에 가는 것에 이의는 없는 거지?"
"물론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수긍했네.
내 예상으로는 몇 가지의 요구 사항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건 없던 것 같다.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시는 거니까요. 제가 따로 부탁드릴 사항은 없습니다."
"으응···! 그렇지! 업무 때문이니까!"

거의 대부분이 휴가를 위해서라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조금 두려워졌다.

"어, 어쨌든! 부탁할 것이 있어. 내가 <테라피아>를 순찰할 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줬으면 좋겠는데."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준비를 위해 돌아간다.
나 또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역시 위대한 존재라는 건 여전히 어려운 역할이군.

방에 들어온 나는 일단 눕는다. 오늘의 일은 방금 그게 마지막이니까. 이미 밖은 어두운 밤이 되었겠지.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능력자일 뿐인데···."

미처 모두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홀로 중얼거린다. 이러한 무능한 주인이라도 그들은 나를 믿고 따라온다. 내가 더 잘해야 하는데.

머리를 흔들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언제까지 고민해봐야 좌절할 뿐. 일단 수호자들에게는 준비가 끝난 다음에 간다고 했지만, 막상 가려니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드네. 하지만 기대감이 더 크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
위험한 세계에서의 고독.
일상으로부터의 해방.

거기서 여러가지 일이 벌어진다는 건 확실할 테지. 자꾸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기쁘다. 그녀의 준비가 끝나면 곧바로라도 가야겠군.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사건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펴봐야겠지."


.......

세라 피아는 그녀의 주인이 걱정되었다.

아까도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여쭤봤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보였다. 긍정적인 그분이 표정으로 훤히 드러낼 만큼, 그 사건에 대한 상처가 심하다는 뜻.

-그날 이후로 주인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더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이 상황 조사를 철저히 하고, 보고서를 훑어보는 등 주인의 쉬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물론 그녀가 물어볼 때면 항상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하였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으실까.

그녀는 <테라피아>의 위험도를 매우 높게 보고 있었다. 사건이 해결되었더라도 경계심이 낮춰지지 않을 정도로 큰 영향을 주었던 곳이니까.

하지만 방금 주인의 눈빛을 보았을 때는 이미 결심이 선 것으로 보이니, 이제는 말릴 수 없다.

(아마 괜찮겠지만, 그래도 조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부디 그때와 같은 일은···.)


★★★


"헉, 헉···."

얼마나 더 뛰었을까.

일단 뒷거리의 복잡한 길을 이용하여 그녀는 몸을 어둠 속으로 숨겼다. 어차피 마을로 돌아가 봤자 경비병이 없는 그곳에서는 체력 싸움이 될 뿐이니.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어둠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이 아무런 장애도 없이 그녀를 맹렬히 추격한다. 움직임을 보면 역시 암살자로서의 훈련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어째서 나를 쫓아오는 거지···?)

최근 시민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한다는 소문을 떠올리는 이니. 아마 지금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그들은 납치가 목적이 아닌 '처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 단검을 들고 쫓아온 것을 봐도 그건 확실했으므로 그녀는 납치의 가능성을 지웠다.

다른 한 가지는 경비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매료> 마법에 걸렸나 생각될 정도로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평범하게 살다가 갑작스레 벌어질만한 일은 아니다. 무언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크겠지.

어쨌든 이러한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달려야만 한다. 모든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

"이봐, 멈춰. 달 아래에서의 술래잡기는 이제 여기까지만 하자고? 슬슬 지겹거든."

갑작스럽게 그녀의 앞을 검은 망토의 남성이 막아섰다. 뒤를 돌아보자 똑같은 차림을 한 다른 자가 뒷길을 막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어느새 따라잡혔다. 말 그대로 그녀는 앞뒤로 포위당한 상태.

"···원하시는 것이 뭐죠?"
"응?"

우선 그녀는 대화로 시간을 벌기로 하였다. 교섭이 가능하기를 바라면서 일단 대화를 시도해 본다.

"뭐야, 왜 이렇게 침착한 거야. 이럴 때는 울면서 살려달라고 말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만해라. 그분이 그렇게까지 경계하던 자야. 이 정도 배짱은 있어야 당연하지."

뒤에서 기분 나쁜 듯이 그렇게 대꾸하자 앞에 있던 남성이 그를 제지하기 시작한다.
그분이라는 자가 그들을 시켜 그녀를 없애려고 한 자인가. 게다가 경계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대략 추측이 가능한 영역에서 이 사건을 일으킬만한 인물은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까지 자신을 노리는 걸까.

"네가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받아들일 일은 없을 테니 포기해. 딱히 너한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빨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좋을 거다."
"뭐, 지금 죽나 나중에 죽나 그 차이지만. 아니, 그것보다 너 왜 이렇게 빠른 거야? 하아, 엄청 힘들어 죽겠네."

뒤의 남성이 그렇게 덧붙이며 단검을 들었다.

아마 그들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겠지. 그들의 눈빛에는 거짓이 없었으며 정말로 그렇게 행동할 생각인 것 같았다. 즉, 그녀를 죽이려고 하는 것.

또한, 그들에게서 나온 그분이라는 존재가 이런 일을 꾸민 듯하다. '그분'이라고 존칭을 쓰는 것을 보아하니 의뢰가 아닌 명령일 가능성이 크겠지.

이러한 일을 꾸민 것이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 게다가 알 수 없는 현상을 일으킨 것으로 보아 아마도 매우 거대한 무언가에 찍혔다는 것을 눈치챘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절망을 맛보았다.

그들과의 대화와 눈빛을 통해 교섭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미래는 그냥 무가치하게 살해당할 뿐. 그런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할 수 있는 행동은 그녀가 믿는 존재를 떠올리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뿐.

자신은 사후에도 행복하리라고 믿는 마음으로 눈을 감는다. 그들도 그런 행동을 보고는 천천히 걸어왔다.
아마도 운명을 받아들였으리라 생각한 것이 틀림없을 테고, 실제로도 그녀는 운명을 받아들였으니까.

(아,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사실···.)

이제 남은 것은 단순한 작업. 단지 마지막으로 마음속의 한 가지 미련을 속삭인다. 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지만, 이제는 때가 됐다.

각오를 다지는 그녀에게 단검이 들이닥쳤으며, 곧 그녀의 눈앞은 깜깜한 것으로 덮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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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16 22:10 | 조회 : 74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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