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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는 자신이 '도지하'가 아님을 의심받는다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시스템 창의 친절한 안내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일까...

눈 앞에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장소, 알 수없는 시스템 창, 다른 사람의 몸,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있는 '도지훈'.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소설 속 악역, 도지하가 됐고 앞에 서있는 그가 소설 속에 나오는 도지하의 형이라니...
설상가상으로 자칫 잘못하다가는 황천길을 걸을 수 있다니...

혼란의 연속 속에서 도하는 정신줄을 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곧이어 떠오르는 창을 보고 도하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도지하'의 이상행동에 '도지훈'의 의심 수치가 올라갑니다.」

「'도지훈'의 의심 수치: 25%」

그런데... 만약 자신을 아리야로 지칭한 시스템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래서 내가 죽음에 이르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면...

도하는 등골이 싸늘해졌다.

의아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그가 아까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도지하의 이상행동에 '도지훈'의 의심 수치가 올라갑니다.」

「'도지훈'의 의심수치: 55%」

미친!!

도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치에 화들짝 놀랐다. 죽기 직전의 순간,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는 말을 입증시키듯 도하의 뇌가 최고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머리속에 새겨져있던 글귀들이 빠르게 빠르게 넘어갔다. 지하와 지훈의 관계에 대한 많은 정보들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앞서 시스템 창에서 보았듯, 도지훈은 도지하의 형이었다. 피는 이어지지 않은 형제인데,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쁨받는 지하를 질투해 짖궂은 장난만 치며 괴롭히던 유년시절이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망가뜨리거나, 친구들을 잔뜩 데려와 괴롭히거나, 심지어 놀러가자고 해놓고 그곳에 버려두고 오는 일이 그의 업적이었다. 어린시절의 치기일 수 있었지만 지하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형,형 하며 순진하게 졸졸따라오던 지하의 모습이 망가진 건 순식간이었다. 지훈이 의도치는 않았지만 지하를 위험에 빠뜨렸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 지하를 보며 지훈은 지하에게 죄책감을 가지게된다.

지하는 그 이후부터 지훈을 끔찍히 싫어하게 되고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한다. 지훈은 죄책감에 지하에게 끔찍이도 잘하게 되서 지하가 하는 말을 무조건 적으로 들어주게되는데... 이것이 지하와 지훈의 비극의 서막이였다.

여주를 좋아하게된 지하가 남주와 여주를 떼어놓기위해 수작을 부릴때 지훈이 도와주게 되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문제!

괴롭힌 장본인인 지하가 남주와 여주를 떼어놓으려다 끔찍한 엔딩을 맞게됬다. 그럼 옆에서 이를 열심히 도와준 지훈은 어떻게 됬을까?

당연 같은 나락엔딩이지...


도하는 속으로 버둥버둥 아우성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아니... 왜 주인공도 엑스트라도 아닌 악역인거야...

게다가 스토리도 엇나가면 안되지, 캐릭터 성격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바로 황천길 행이지... 그냥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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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했다. 그냥 지하처럼 성질만 드러워보이면 되는 건가...


지하가 슬쩍 눈을 흘기며 낮게 으르렁 거렸다.

"시끄러워, 죽고싶어?"

의아해 하던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풀렸다.

아니... 이게 된다고...?

그의 얼굴에 잠깐 씁쓸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지훈은 언제 시무룩해 했냐는 듯 웃는 낮짝으로, 들고왔던 죽그릇을 탁자에 내려 놓았다.

"그래그래, 기가 살아있는 거 보니 이제 다 나았나보네."

지훈은 다정하게 웃으며 지하의 이마에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지하는 녹을 것같은 지훈의 미소에 흠칫 몸을 떨다 재빠르게 손을 쳐냈다.

탁 쳐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민망할 법도한데 지훈은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을 내친 도하가 더 민망해졌다.

아무리 겉모습이 지하여도 알맹이는 도하였다. 그는 사람에게 무척 물러서 도와달라면 거절하기 힘들어했고 이렇게 먼저 내쳐본것적 또한 한번도 없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처음인 것이다.

도하는 이 민망하고도 뻘쭘한 상황에 재빨리 화장실로 대피하기로 했다. 도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훈을 지나쳤다.

지훈은 약간 고개를 숙였고, 입을 뻐끔 거리며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조금 쉰 목소리가 도하에게 내리꽂혔다.

"내가 아무리... 미워도... 죽은 꼭 먹어줘... 약도 꼭 챙겨먹고,"

도하는 고개를 열렬히 끄덕이며 고맙다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도지훈의 의심 수치를 더 끌어 올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침묵을 고수하며 화장실에 들어섰다.

문을 닫고 나자마자 도하는 몸에 힘이 풀려 즈르륵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어떻게든 도지하가 할 법한 행동을 필사적으로 배끼긴했는데 안들켜서 다행이다...

「첫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보상으로 '도지훈'과 관련된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시스템 창의 맨 오른쪽 위, 상자모양이 그려진 곳에 숫자 1이 떴다. 도하는 잠깐 망설이다 '그것'을 눌렀다. 그러자 여러개로 칸칸이 나뉘어져 있는 빈 공간 중 한 곳에 카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을 누르니 설명창이 떴다.


「'도지하'의 생일 카드

-'도지하'의 생일마다 '도지훈'이 직접 쓴 카드들

-'도지훈' 몰래 '도지하'가 모아둔 카드들」

「효과: 의심 수치를 10%내려줌

호감도를 20% 올려줌」


사용법이 없잖아... 사용법이...

도하는 한숨을 깊이 내쉬며, 필사적으로 도도한척을 했던 연기가 떠올라 머리를 두 손으로 거칠게 휘저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일이야...

「구독자 한명이 탈주했습니다.」

「소설 칭호 '존노잼'을 얻었습니다. 좀 더 노력하십시오.」

있는 구멍 없는 구멍 다 막아놓고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애초에 난 선택권이 없잖아!

「현 구독자 수: 0」

도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 뒤로 몇 주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었고, 강제로 지하 행세를 하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않하면 죽이겠다고 협박장이 날아오는데...

처음엔 좀 겁을 먹었었다. 스토리에서 엇나가면 안된다는 메세지 때문이었다. 엇나가면 안된다는 소리는 소설에서 지하가 저질렀던 악행을 고대로 저질러야한다는 소리다. 그럼 당연한 수순으로 응징을 받겠지...

그런데...

이상한건 요즘 너무 한가하다. 너무 한가해서 지루할 정도였다. 지하행세만 잘하면 아무 문제없는 평범한 일상이 몇주째 반복됬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가고, 학교끝나면 친히 데리러 오는 지훈에게 떽떽 거리다가 못이기는 척 차에 타고, 같이 저녁을 먹은 다음 씻고 잠에든다.

매일 이 패턴의 반복이었다.

이렇게만 잘 지낸다면 나쁘지 않을 것같다고 아주 잠깐 생각했었다. 아주 잠깐 동안!

곰곰히 생각해보건데 아직 악역이 등장하는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소설 초반이기 때문에 악역이 등장하지도 못한 시점.

도하가 눈을 뜬 시점이 고1 입학식이니까. 주인공을 만나기까지...

미쳤네, 얼마 안남았어...

도하는 끙끙 앓으며 괴로워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지훈의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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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9-03 13:57 | 조회 : 1,33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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