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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낯선 풍경이 보였다. 나의 초라하던 한칸짜리 방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에 10배 더 커보이는 방만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여긴 어디지...?

킹사이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도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이마에 얹어놓은 물수건이 철퍽 떨어졌다.

깔끔히 정리되어있는 방, 딱 봐도 값좀 나가보이는 물건들...
평소에 비싸서 살 엄두도 못내던 것들이 방에 아무렇지 않게 장식되어 있었다. 친구 중에도 이렇게 큰 방을 가지고 있을만한 인물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디인가..

도하는 끙 앓으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분명 어제...
읽다 만 소설을 새벽 늦게까지보다가...
내 방에서 잠이 들었지...
분명 술같은건 안마셨는데...
그럼 난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도하가 다급히 침대에서 벗어나자 허공에 반짝이며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화들짝 놀라 옆에 세워져있던 야구방망이를 들어올렸으나, 그것(시스템창)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허공에 떠있을 뿐이었다.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몇 십초가 지나갔다. 도하는 시스템창에서 멀찍이 떨어진채 야구 방망이로 그것(시스템 창)을 툭툭 쳤다. 시스템 창 사이로 야구 방망이가 쑥 통과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한 도하가 황급히 야구 방망이를 빼냈다. 그러고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자 야구 방망이를 슬며시 내렸다. 그리고 시스템창을 이리저리 훑어보기 시작했다.

시스템 창 위에는

'시스템 연결중'

'로딩중'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문구가 차례대로 뜨더니 이어

'안녕하세요. 당신을 도와줄 도우미, 「아리야」입니다. 당신은 지금부터 '짐승같은 그'의 서브남주, 도지하가 되어 스토리를 진행합니다.'

에...?

'스토리가 엇나가거나 다른 인물들이 당신의 정체를 의심하게 된다면 페널티가 부과되니 주의해주십시오.'

"무슨..."

'궁금한 점은 물을 수 없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

그 문장을 마지막으로 시스템 창이 깜빡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방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조심스런 목소리가 방문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지하야, 몸은 좀 괜찮아..?"

도하는 혼란 가득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방 밖의 남자가 말한 '지하야'라는 한마디가 방금 전 보았던 시스템 창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지금부터 '짐승같은 그'의 서브남주, 도지하가 되어 스토리를 진행합니다'

짐승...같은,, 그...

도지하....

"지하야?"

미친... 뭐가 어떻게 된거야

어제 읽었던 로맨스 소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짐승같은 그'는 그다지 인지도 높은 작품은 아니었다. 인터넷 속을 떠돌아다니는 흔하디 흔한 로맨스 소설중 하나였지. 그래서 처음엔 도하도 이게 있는지 조차 몰랐던 작품이기도 했다. 친구가 권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설마 이 작품이 그 절친한 친구의 작품인지 도하가 알았더라면 그 앞에서 대놓고 팩폭을 날리는 짓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눈치 밥말아먹은 도하는 기어이 절친의 눈물을 보고야 말았다.

그래... 이건 벌이다.

입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벌.


도하는 소설 속에서 도지하가 남주와 여주를 갈라 놓으려다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다 끔찍한 엔딩을 맞는 모습이 떠올랐다.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무심코 든 고개가 바로 앞에 놓여있는 컴퓨터 모니터로 향했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몸이 비쳤다. 도하는 무의식으로 허리를 숙였다. 퇴폐미와 섹시함이 섞인 반반한 얼굴이 검은 창에 반사됬다. 도하의 얼굴이 아닌 낯선이의 얼굴이었다.

벌이 틀림없었다.

도하는 안절부절거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밖에서는 한참 답이 없는 지하에게 큰 일이 생긴줄 안 것인지 남자가 거침없이 문을 열어제꼈다.

"지하야! 괜찮아?"

도하와 남자는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람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도하와 그런 그를 바라보는 남자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남자는 식은땀에 절어 새하얗게 질려있는 도하의 모습에 미간을 약하게 구겼다.

"악몽.. 꿨구나..."

남자의 서늘한 손이 지하의 머리쪽으로 향하다 허공에서 멈췄다. 손은 빠르게 거두어졌다.

"몸은 괜찮은거지? 아프면 담당 주치의 부를게"

"아..아뇨!아뇨! 괜찮아요!"

도하는 말을 하고나서야 자신의 실수를 감지한 것 마냥 몸을 흠칫 굳혔다. 도하를 바라보고 있던 지훈 또한 마찬가지로 몸이 굳었다.

도하의 눈동자에 시스템창이 들어왔다.




「<도지훈>


-'지연'의 길드장

-도지하의 형

-쓸 수 있는 능력: 그림자

-(열수있는 레벨이 아닙니다(자물쇠))」


이어서 경고 문구가 따라붙었다.

「'도지하'는 '도지훈'에게 높임말을 쓰지 않습니다. 촌스러운 억양 또한 쓰지 않습니다」

「'도지하'의 이상행동에 '도지훈'의 의심 수치가 올라갑니다.」

「'도지훈' 의심 수치: 10%」

「'도지훈'의 의심 수치가 100%에 수렴하면 도지하는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주의해주십시오.」

「축하합니다. 구독자 수가 1올라갑니다.」

이... 뭔...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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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8-24 20:45 | 조회 : 1,686 목록
작가의 말
에코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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