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첫사랑을 게이바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너 그냥 착간한 거 아니야?"

내 나름대로 좋아하는 사람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린 선택이었다. 적어도 이 선택은 우리가 조금 어색해지더라도.. 친구로 남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착각이었다는 것을 얼마가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제아를 너무 우습게 봤다. 제아는 내가 재우의 고백을 모른 척한 그 날 이후로, 내가 조금이라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말로 나를 묶어서 제 옆에 두었다. 그 '협박'이 자기 자신도 괴롭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처음에 말했던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녀의 마음대로 계속 연장이 되었다. 제아의 요구대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그녀에게만 웃어주며 언제나 손을 꼭 잡아주면서 좋은 남자친구인척 연기를 했다.

그 누구도, 우리가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상처입히는 관계라는 것을 예상 못했을 것이다.

"한 달이라고 했잖아. 언제까지 이짓거리를 해야되는 건데!"

"너, 나하고 헤어지면 다시 재우랑 만날꺼잖아. 난 그 꼴을 보고 있기가 싫어. 내가 질릴때 까지야. 이 짓거리. "

매일,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되짚어 보았다. 내가 제아의 마음을 눈치챘으면서도 모른 척한 순간부터..? 모른척 하면서 무신경하게 굴어서.. ? 그러면서도 재우에게 마음이 있는 걸 감추지 못했기 때문에...?

재우는 제아와 나에게서 멀어졌다. 처음에는 커플사이에 눈치 없이 끼면 안된다며 웃으면서 떨어졌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런 말을 하는 빈도는 적어졌다. 그리고 아예 대화를 하는 시간도 없어졌다.

다시 시간이 되돌아간 것 같았다. 재우는 나와 제아를 모른 척 했다. 그리고 그는 학기 초반처럼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으며 혼자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하루하루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저 그늘을 만들려고 그랬던 게 아닌데. 그의 얼굴이 어두워질 수록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그와 가까워 지는 건 어려웠지만 멀어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그와 멀어졌지만 반대로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은 조금이라도 식을 줄을 몰랐다. 그가 나를 피할수록 더 애가 닳았고 보고 싶었다. 다시 예전처럼 마주보며 웃고 떠들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너의 마음을 부정했던 건 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2학년이 끝나고 3학년 초겨울이 되는 시간동안 나는 제아와 누구도 모르는 싸움을 계속 이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제아는 점점 지쳐갔다. 제아와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더 힘들었던 건 재우가 3학년이 되고, 반이 완전 갈라서면서 나를 완전히 피한다는 것이었다.

"재우!"

제아가 옆에 없을 때를 노려서 그의 반에 찾아가서 인사를 했지만 재우는 피했다. 그리고 복도에 마주칠 때도 제아가 없을 때 인사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이러는 것도 이해가 되긴 했지만.. 이 상황도 반복되니, 바보같이 서운함이 몰려왔다.

'나 때문이잖아.. 저러는 것도..어쩔 수 없는 거지...'

재우를 이해했지만 이 상황도 반복되니 견디기는데 한계가 찾아왔다. 서운함을 미움으로 바뀌게 한 순간은 3학년 여름날 이었다.

운동장에 재우네반 애들이 전부 체육복을 입고 50m달리기 기록을 재고 있었다. 재우는 아직 자기 차례가 안되었는지, 반 애들하고 한 곳에 다같이 앉아있었다. 3학년이 되고 나서 재우는 이전과 다르게 친구도 몇 사귀었는지 한 3명정도의 애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 중에 유독 재우에게 달라붙는 놈이 하나 있었는데, 재우는 그 놈과 아주 친해보였다. 내가 조금만 손 대도 깜짝 깜짝 놀랐으면서, 그 놈이 막 확, 지 멋대로 안아재껴도 웃으면서 그를 받아주는 모습이 너무 꼴보기 싫었다. 이 날도 그는 재우 옆에 딱 붙어서 뭐라 지껄이는지, 재우는 웃으면서 그의 말을 맞받아치고 있었다.

'내가 인사하는 건 다 무시했으면서...다른 사람하고는 잘만 웃네.'

꽉 쥐고 있던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질투라기엔 너무 강렬했고 분노라기엔 그의 웃는 얼굴을 보니 그늘이 졌던 때보단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화가 나는 이 묘한 괴리감은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후로 나도 재우를 봐도 모른 척 지나갔다. 나만 붙잡고 있는 관계가 얼마나 아픈 건지 처음알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제아도 이런 기분으로 내 옆에 있던 걸까, 그래서 그렇게 절박하게 나를 붙잡고 1년이 넘도록 싸우면서까지 옆에 두고 싶었나. 하고 생각했다.

조금 이해가 되더라도 제아와 관계는 이미 회복 불가능이다. 화해를 하기엔 서로 너무 많은 상처를 줬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3학년 초겨울, 오랜만에 집에 혼자가는 길에 재우를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다. 마침 버스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재우의 얼굴을 제대로 봤었다. 재우는 정류장에 앉아서 이어폰을 꼽은 채 흥얼거리며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인사도 제대로 안한지 너무 오래되서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몰랐다. 미우면서도, 또 너무 좋아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재우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아,안녕..."

너무 놀라서 말도 더듬으면서 바보처럼 인사했다. 제멋대로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도 잠시, 추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더워지던 마음은 그의 차가운 표정이 나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도 처음엔 당황한건지 눈을 크게 뜨며 날 바라봤지만, 금방 다시 얼굴을 굳히고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로 무시할 것 까진 없잖아.'

좋아하는 마음 속 숨어있던 미움이 다시 튀어나왔다.

"그렇게 무시할 것 까진 없잖아."

인사 다음에 건낸 말은, 조금 툴툴 거리고 싶은 마음에 괜히 발치에 던져 본 조약돌이었다. 나 좀 봐달라고, 그냥..인사라도 받아달라고.

재우는 끼고 있던 이어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뺐다.

"대화할 사이는 아니니까."

"그냥 인사정도는 할 수 있잖아."

"무슨 대화? 이미 끝난 관계인데."

'끝난 관계'라는 말은 화살처럼 날아와 내 심장에 꽂혔다. 너무 아파서 심장이 아렸다. 그리고 조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게, 끝난 관계인데."

내가 들어도 잔뜩 화가 난 듯한 목소리에 재우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리고 그는 쥐고 있던 이어폰을 만지작 거리며 땅만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옆에 가서 털썩, 앉았다.

"다른 친구 사겼으니까, 이전 친구는 이제 필요 없다는 건가."

"뭐...?"

땅만 보고 있던 재우가 나를 바라봤지만 이번엔 내가 그의 눈을 피했다.

"보니까, 한 명이랑 맨날 딱 붙어있던데. 그 남자애랑 사귀어?"

"..."

"그래서 이제 나랑은 눈도 안마주치고 아는 척도 안하는 건가. 전에 좋아했던 사람인거 현재 남친한테 들키기 싫어서? 그런거면 이해가 되네."

"..."

'윤겸, 너 미쳤어? 이런 말이나 하려고 지금까지 참아왔던 거 아니잖아.'

이성적으로는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아는데, 멈출 수 없었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한 번 부서진 감정의 댐은 안에 있던 게 다 쏟아져 나올 때까지, 텅 비어버릴 때까지 멈출 줄을 몰랐다. 나는 그에게 가장 아플만한 말을 골라서 던졌다. 후회할 줄 알면서도 이 공격이 나에게 다시 돌아올 걸 알면서도.

나는 제아가 고백했을 때나, 지금이나 발전한게 하나 없이 어리석었다.

"너..."

재우의 떨리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웅웅 거리는 것 같았다. 피가 거꾸로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

"너가 먼저, 멀어지란 듯 굴었잖아. 너가..먼저..! 그랬으면서... 내 마음 다 알면서도 모른 척 이기적으로 굴어놓고....너가 어떻게..."

꽉 쥐고 있던 양손이 덜덜 떨렸다. 당장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자물쇠 걸어놓은 사물함마냥 열리지 않았다.

재우는 벌떡, 일어나서 걸어갔다. 그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빠르게 뛰는 내 심장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나는 다급하게 일어나서 빠르게 걸어가는 그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는 차갑게 내 손을 뿌리쳤다.

"...."

그의 얼굴은 아픔에 얼룩져 있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고, 입술을 얼마나 세게 물은건지 이와 입술 사이로 빨간피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다신 말 걸지마."

"재,"

"진짜,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그 말을 뒤로 하고 재우는 나를 떠나갔다. 붙잡을 수 없었다.

다 끝났다. 다 끝나버렸어.

이 날 이후로 나는 몇번이고 사과하려고 했지만.. 차라리 그가 계속 화를내고 욕이라도 박아줬다면 그랬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는 나와 마주칠 때 마다 정말 아무 감정이 없는 눈으로 슥, 보고는 지나갔다. 진짜...모르는 사람처럼.

"재우야."

"왜?"

"쟤가 너 계속 쳐다보는데?친구야?"

"아니."

모든 걸 다 포기 하고 싶었다. 그냥 머리를 땅에 몇번이나 들이박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너무 아파서, 너무 슬퍼서 이전에 힘들었던 거랑은 비교도 안되게 괴로워서 혼자있을 때 마다 눈물이 계속 나왔다.

제멋대로 비워냈던 감정의 댐에는 아무것도 남지 못하고 텅 비어버렸다.

뭐 때문에 지금까지 힘들어했던 걸까, 뭘 위해서? 재우를 위해서? 결국 재우를 상처 입힌 건 나잖아.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다....

재우와 완전히 관계가 박살이 난 이후 학교에 가서도 아무것도 안하고 계속 엎드려 있었다. 모든 일이 다 무기력해져서 그냥 아침에 눈 뜨는 것도 힘들었다.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긴 한지, 날만 새우던 제아가 걱정스럽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야, 너 요즘 무슨 일 있어...?"

"..."

"야.."

"건들이지마, 짜증나니까."

"..."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계속 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아는 계속 나를 걱정하는 것처럼 굴었다. 화가 나다가도 이제 다 끝인데, 화내서 뭐하나 싶어서 그냥 무시했다.

말만 나오면 상처를 주기 바빴던 우리의 관계는, 3학년 2학기 막바지에 아무도 남지 않은 교실에서 끝이 났다. 일방적으로 시작되었던 거짓 관계는 제아의 일방적인 통보로 끝이 났다.

"이제 그만할까..?"

나에게 독기를 내뿜으며, "생각잘해"라고 경고하던 여자애는 어디가고 나만큼이나 힘이 빠진 우울한 사람이 있었다. 정말 갑작스러운 이별통보였다. 그리고 그 말을 하던 제아의 눈에서는 나에게 고백했던 그 날처럼 눈물이 고여 있었다.

"..."

끝나면 아주 속 시원하고 통쾌할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지금 울고 있는 여자애에게 일말의 정도 남아있진 않지만 과거의 여자애에겐 미안함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그동안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너 마음 모른 척 했던 거 미안했어?'

"그렇게 붙잡고 지독하게 굴더니. 드디어 질렸나?"

그냥,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독하게 매달렸으면서 갑자기 이빨빠진 호랑이처럼 구는 게 의아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아쉬워?"

"아니."

제아는 우울한 얼굴로 힘 없이 피식, 소리내어 웃었다.

"...이런 말 하면 너가 제일 어이없겠지만."

"..."

"..힘들어서."

".."

"그리고...너가 믿을진 모르겠지만. 후회하고 있어."

"뭐..?"

갑자기 고해성사라니, 이건 진짜 예상못한 대답이었다.

"처음에는 화나서 그랬어. 그래서 너네 절대 내 눈앞에서 붙어있지 못하게하고 싶어서 그랬어."

".."

"근데..진짜 나도 어이 없는 거 아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 만큼은 우리가 진짜 사귀는 것처럼 행동했잖아. 연기라는 거 아는데... 좋았어."

"..."

" 진짜로 사귀는 거 같아서 너무 좋았어.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 마다 너무 힘들었어."

제아는 그 날, 저녁처럼 고개를 푹 숙인채 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냥..이제 그만하고 싶어..."

"야."

"...왜..?"

'짜증나게 피해자인 척 하지마.'라는 말을 해줄까, 하다가도 그녀의 우울한 눈을 보고 있자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 얘기 들었다던 그 여자애는 어떻게 되는 건데?"

"그건..걱정하지마..그 말은 그냥 핑계였어."

"...."

"걘...어차피 말하고 다닐 만한 그런 애가 아니였어. 너희 둘에 대한 이야기도 나한테 붙잡혀서 겨우 말해줬던 거였고."

"하..."

"...미안해."

"사과하지마."

"..."

"사과해도 받아주지 않을 거니까, 사과하지 말라고."

"..."

나는 제아를 내버려두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 그녀의 말에 분노가 끓어오르다가도 차갑게 식었다. 그냥, 기분이 복잡했다. 정말 복잡한 기분이었다. 화가 나는 건지, 허탈한 건지.

'이제와서.... 다 무슨 소용이야.'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허한 마음 속에 갇혀 몇년을 그렇게 지냈다. 그와 만나기 전 4년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갈 수록 기억은 희미해지는 게 정상일 텐데, 마지막 그의 얼굴이 나 때문에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 나를 괴롭혔다.

울고 있던 그의 모습이 악몽으로 다가와서 나는 잠도 잘 못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후회 다음으로 내게 온 것은 지독한 그리움이었다.

다른 사람도 첫사랑에 이렇게 죽을 듯이 목을 매는 건가. 관심도 없던 미술에 조금씩 흥미를 갖기 시작했던 것은 재우의 영향이었다. 재우가 눈을 빛내며 그리던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냥 시작했던 미술이었다. 자연스럽게 진로도 미대로 정했다.

이 정도면 집착이라고 말하던 친구도 있었다. 난 왜 4년 동안 재우를 한 순간도 잊지 못하고 지독하게 그리워했을까.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그나마 상태가 조금 나아졌다. 피 터지게 바빠서 그런건지, 가끔 며칠씩 잠 못자서 쓰러지는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할게 많아서 그전보단 재우의 생각이 덜 났다.

그런데.. 세상은 참 좁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재우를 다시 만났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의 권유로 가게된 게이바에서.

대학교에서 만난 레즈비언 친구 '최민아'는 활발한 여자였다. 남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오지랖 넓은 그녀의 성격 덕에 나는 대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둘이서 어쩌다 술을 같이 마신 날, 그 때 서로의 첫사랑 이야기를 하게 되서 '재우'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랬어."

잊지못하고 찌질거리는 내가 민아는 안쓰러웠는지 원래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라며 데려간 곳이 그 게이바였다.


그런 곳에 대한 것은 소문으로만 들어봤기에 약간 두려웠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냥 평범하게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칵테일바였다. 이 날, 송영주를 처음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부터 멀리서 딱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진짜 저런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생각했다. 멀리서도 뚜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얼굴과 키도 180은 그냥 넘어보였다. 진짜 멀리서 봤는데도 혼자 고화질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냥 미친듯이 잘생긴 사람이었다.

호감의 시선이 아니라도 그냥 너무 신기해서 계속 보게 되는 그런 미친 비주얼의 얼굴의 소유자가 송영주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네요."

'조각이 말을 하네....'

나는 이상하게 얼어붙어서 아무 말 없이 버벅거리고 있을 때 민아는 내 어깨를 툭 치며 깔깔 웃었다.

"오빠 처음 보는 사람은 봐봐. 이렇게 얼어버린다니까! 큭큭.. 영주오빠 진짜
잘생겼지?"

"아..안녕하세요. 진짜 잘생기셨네요."

"고마워요. 민아가 새 친구 데려온다길래, 누굴까 궁금했는데, 잘생긴 친구 데려왔네."

다비드상의 정석 같은 사람이 나보고 잘생겼다고 하니 괜히 민망해졌다.

머쓱하게 칵테일 두잔을 주문하고 바 앞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구경했다. 칵테일 두 잔은 금방 나왔고, 영주는 자연스럽게 우리와 대화를 주고 받았다. 영주는 잘생긴 얼굴 만큼이나 말도 엄청 잘했다. 대화를 끌어내는 기술이 얼마나 능숙한지 나는 술을 몇잔 더 시키면서 '재우'에 대한 이야기도 어쩌다보니 하게 되었다.

"4년동안 아직도 계속 생각했다니, 그것도 대단하네요. 한 번 연락이라도 해보지!"

"절...대 못해요. 전화 안받을꺼에요...게다가, 받더라도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에이,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단...하고나서 후회하는 게 낫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만..."

"그래, 그래! 한 번 연락해보라니까!"

영주와 민아는 나에게 다시 연락해보라고 권유했지만 무서웠다. 이후로 문자 한 통 보내본 적이 없었다. 4년이나 지난 일이니 전화번호도 바꿨을지도 모른다. 지우지 않은 재우의 번호가 적힌 휴대폰 화면만 뚫어져라보다가 한숨만 푹 쉬었다.

그 순간, 가게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소리를 내었다. 별 생각 없이 뒤로 돌아봤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안경도 끼지 않고, 앞머리로 시원하게 넘긴데다, 머리는 밝은 탈색머리의 화려한 남자가 가게로 얼굴을 내밀었다. 모든 부분이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그가 '박재우'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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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20 00:07 | 조회 : 1,071 목록
작가의 말
최올랑

조금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으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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