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맑은 물에 피가 섞여서(3)

비몽사몽해서 눈을 떴을 때, 윤은 이미 가람에게 들쳐업혀져 있었다.

“흐아아악! 뭔데! 야!”

깜짝 놀라서 팔을 마구잡이로 내저었다. 가람이 중심을 잃고 살짝 휘청거리자, 윤의 몸이 잠시 앞으로 쏠렸다.

가람은 얼굴을 찌푸렸다.

“좀 닥쳐”

“어..?”

차가운 한마디에 정신이 훅 들었다. 그래, 내가 왜 얘한테 업혀져 있고, 왜 여기는 밖이고, 왜 가람이네 집이 부서져 있지?

하하, 개꿈이구나.

*

무슨... 하루라도 쉬지 않는 조직이야?

그날 밤도 빠짐없이 찾아온 위험에, 가람은 또다시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능적이였다.

“윤은 건들지 마.”

가람이 이를 악 문채 주먹을 쥐었다.

탕-

“...미친 놈들이..”

귀를 스치고 지나간 총알이 윤이 잠든 방문을 때렸다. 귓불을 타고 피가 주륵 흘러내렸지만, 자신의 상황 따위 가람은 신경 쓸 수 없었다.

곧장 윤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참은 채, 그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윤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보면, 방문을 뚫고 나간 총알을 맞은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가람은 제대로 빡쳤다.

탕-
탕 탕

가람의 겨냥한 총이 몇 발 더 날아왔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몸을 숙여 피하고는, 이를 토대로 삼아 서랍에 숨겨둔 총을 꺼내들었다.

살육의 밤이였다.

총알이 날아온 순서대로, 반대된 총알이 날아가 머리를 정통으로 맞혔다.

총 없는 안전한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도, 그 총을 보급해준 것은 나라에서였다.

‘뼛속까지 썩어 문드러졌군.’

가람이 생각하며 마지막 한명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상대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도망가면 쏠 생각이였고, 이대로 있어도 쏠 생각이였다.

이걸 알고 있는 마지막 총잡이는 손을 들어올리고 항복을 외쳐보였다.

그러나, 그 항복 선언에 가람은 총을 쐈다.

윤을 건드리다니, 안 그래도 요즘 서먹해져서 이야기도 자주 못했는데. 기분이 더러웠는데 괜히 더 더러워졌다.

그제야 느껴져 오는 귀의 고통에 더더욱.

“역시 대단해. ‘괴물’의 능력자.”

“...한 방 먹었군.”

윤의 방문 앞에 선 한 아이가 보였다. 양갈래로 묶어내린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올정도로 길었다. 눈을 빛내던 아이가 가람의 손에 들린 총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렇게 가녀린 소녀를 쏠 건 아니지, 오빠?”

“안 쏴. 그리고 오빠같은 징그러운 소리는 때려치워라.”

쏠 수가 없지. 아무런 이유없이 윤의 방문 앞을 지키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분명 다른 수작을 부려놨을 것이였다.

게다가 저 아이는 바림. 조직의 최연소이자 수석 연구원이였다. 절반 쯔음 새하얗게 세어버린 그녀의 머리카락은 더욱 신비한 느낌을 강조했다.

“거래를 하지 않을래?”

“내가 왜.”

“해야 할 수 밖에 없을텐데.”

바림은 싱긋 웃으며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다. 사탕껍질을 바닥에 그대로 버려두고는 알만 입안에 집어넣었다.

껍질을 꾹 밟는, 마치 마른 나뭇잎이 뭉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

가람이 입술을 꽉 물었다.

“그래,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자.”

“좋아.”

바림은 꺼림직할 정도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윤의 방문으로부터 가람에게 조금씩 발을 땠다.

“윤의 머리카락 한 올을 원해.”

그녀가 계속 한발씩 다가오며 나긋하게 속삭였다. 가람의 앞까지 도달하자, 그녀가 메모지 한 장을 내밀었다.

“그건?”

가람의 물음에, 바림이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말했다.

“우리 조직의 본부 위치가 적혀 있어. 이곳으로 와.”

“흐음..?”

가람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얼떨떨해서는 메모를 받았다. 그러자 바림은 눈을 반쯤 감은 채로 팔을 벌렸다.

“그런데 말이야. 위치까지나 알려주는데 대가가 없으면 심심하잖아?”

“뭐?”

“어서 윤이라는 아이, 데리고 도망가는게 좋을거야. 최대한 여기서 벗어나서 말이야.”

“...도와주는 건가?”

“실험체들은 소중하거든.”

반쯤 미쳐버린 꼬맹이가 소중하다는 소릴 나불거리다니. 불쌍하군.

가람은 바림을 잠시 응시했다. 마치 그 안을 꾀뚫어보는 금빛 눈동자에, 바림은 살짝 움찔하고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남이 보기에는 순진한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 그녀에게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쌓아올린 벽이였다.

“...여기서 보지.”

가람이 한숨을 짧게 내쉬고 메모를 흔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바림을 스쳐지나갔다.

바림은 자신을 지나가버린 가람을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소파에 들어눕든 앉았다. 그때 만큼은 미소 짓지 않았다.

*

아슬아슬하게 윤을 업었을 때 공격이 날아왔다. 문으로 피할 시간조차 없었기에 그대로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는 바림의 진득한 시선이 느껴졌다. 윤은 흔들리는 몸에, 총소리에도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흐아아악! 뭔데! 야!”

무너지는 가람의 집을 등뒤로 쳐다보며 그는 놀랐는지 소리를 질러댔다. 그 때문에, 가람의 몸이 앞으로 쏠리며 윤이 엎어질 뻔 했다.

적어도 지금은, 그의 어리광을 들어줄 시간이 없었다.

“좀 닥쳐”

사납게 내뱉은 말이 벙 쪘는지 잠시 말이 없던 윤이 무겁게 꺼낸 말은,

“어...?”

그저 물음표에 불과한 말이였다.

가람은 심하게 말한 것에 대해 조금은 후회하며 나름 정신을 차린 것 같은 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네 생각에 안전한 곳 없어?”

그가 다급하게 말을 꺼내고는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윤의 능력을 요구하는 말, 조직이랑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윤은 어리석게도 착해서, 그 입을 열었다.

“공중 공격이니까 우리도 공중으로 가서 해치우거나, 아예 그 녀석들 본부에 쳐들어가서 선두를 치거나, 아니면 그냥 여기서 죽거나.”

다른 방법도 있는데 둘 중에 한명이 죽을지도 몰라서 말을 못 꺼내겠네.

그 말을 이은 윤이 휘청거렸다. 겨우 호전되었던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 몸이 서서히 싸늘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기분에, 가람은 우선 그의 치료를 우선으로 하여 병원 쪽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민간인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직의 규칙 덕분에 더 이상 공중 공격을 퍼붓지는 않았다. 그러나 병원 밖을 둘러싸고 있겠지.

가람은 입술을 곱씹으며 윤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쳇”

이런 상황이라도, 귀찮지는 않아.

한참을 달리고 있는 자신만큼이나 힘들게 숨을 몰아쉬는 그를 달래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평소의 웃음만큼은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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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5-12 09:12 | 조회 : 1,042 목록
작가의 말
하젤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저는 글러먹은 작가입니다...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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